[ The little cracks they escalated / 넓게 퍼진 작은 균열들  

Before you knew it was too late / 모르는 사이 너무 늦어버려서... ] 


영화 ONCE에 나오는 노래 중 한 가사의 일부분이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그들도 모르게 벌어지는 틈을 잘 묘사한 부분인데

우리는 비록 동성친구 사이지만, 비슷하게 해당이 되는 것 같아 생각이 났다.


유사성에 대한 신기함으로 좋은 감정을 가지며 만났던 너와의 만남 뒤에는

너와 다름의 균열을 자각하는 아픈 시간 또한 공존했던 것 같다.

마음이 아팠다는게 아니고, 너를 워낙 안다고 자부하다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네가 내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일 때 

그것이 적잖은 당황스러움과 상처 따위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학창 시절부터, 너도 그렇고, 서로가 닮았다는걸 인정하면서도,

너무 똑같이 닮아지기를 경계하는, 그 감정은, 

서로를 서로 그대로 놓아두는 무관심의 방법으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그건 우리가 반이 갈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여실히 나타났다.

예를 들어 네가 교실에서 늘상 정신없이 잔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도

그래서 반 아이들에게 너 모르게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때도

나는 화는 나고 답답했지만, 네 반에 찾아가 너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깨우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 널 사랑하거나 아끼지는 않았고, 

그 정도로는 너와 친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밝힌다.


너는 나와의 거리를 '질투'로 두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 너를 질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너는 내게도 털어놓았듯이 나를 질투했던 적이 많았다.

남자놈이 뭔 질투를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예를들어 같은 반이었을 시절, 어느 설문조사에서 내가 1등을 달리자

나의 이름을 지우고 다른 아이의 이름을 호명했던 너부터 시작해서

(훗날 네가 다 고백한 일들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여학생 까지도 가로채 같이 좋아했다든지,

학교 운동장에서 솔직히 나에게 질투가 난다고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서로 잠시 등을 돌렸던 그 날까지.


그럼에도 너를 내가 좋아했던 이유는, 네가 학창시절에는, 매너가 좀 있었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듣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야자 시간을 땡까고 너와 서너시간 대화를 한 날에는 

불만과 걱정거리가 가득했던 내 마음속에도 희망 같은 것이 몇 알 떨어져 있곤 했었다.

항상 긍정적이고, 무모하리만치 낙천적인 너의 영향을 조금 받았던 탓 아니겠느냐.

현실에 가까웠던 나와, 아직 꿈 속에서 살고 있던 너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그렇게 교감이 되었던 것 같다.

너도 나의 파악에 느렸고, 나도 너의 파악에 쉽지 않았다.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아쉬운 것은 너의 그 무거움이다.

나는 아직 네게 다가갈 때 무거움과 진중함으로 옷을 입는데 (혹자는 '배려'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너는 그 무거움이 많이 소실되었다. 예전의 너에 비하면 거의 모조리 소실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제 만났을 때 

내가 말할 때마다 나의 말을 단숨에 끊고 다른 주제로 이어갔던 네 행동들(생각이 날 것이다. 횟수가 많았으니까.) 사이에 숨어있던 너의 표정을 보았다.

알고 있었음에도 교묘한 웃음을 스쳐보이고 너의 주제를 이어갔던 네 마음속에서는

글쎄, 나를 이겼다는 정복감이 들었을지, 막다른 쾌감이 들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은 적어도 무리들 중에서는 나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행동을 서스럼없이 일삼았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학창시절 때의 질투감을 아직도 끌고오는 것이 너라면, 그것도 나는 너와 연을 달리할 이유가 된다.

다 큰 놈이 뭐하는 짓인가 묻고도 싶지만, 더 중요한건, 

그런 같잖은 것들로 네 자존감을 올리는 레이스에 나는 더 이상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뭐 그것 뿐이겠는가. 너에게 작별을 고하는 이유가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이겠는가.

단순히 너의 매너없음이나 싸가지에 등을 돌렸을 나였다면 진작에 등을 돌렸을 나였겠으나,

더 중요한 이유는 내 스스로 느낀 어떤 자각에 있었다.


너와의 대화에서 더는 흥미를 못 찾겠다.


스피노자라는 사람은 사람과의 만남을 good과 bad로 양분해 바라보라고 했다.

만나면 기분이 좋은 경우, 그리고 만나면 기분이 안 좋은 경우다.

그리고 만나면 기분이 안 좋은 경우의 관계들을 정리하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했더니 삶이 꽤 행복해졌고 안정이 되었거든. 

그래서 너도 그러한 정리의 한 케이스가 되지 않을까 한다.


너와의 몇 번의 만남 이후로 나는 늘 Bad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표면적인 이유를 굳이 찾자면 너의 그 무례함이나 

지나치게 솔직한 행동 등등인데, 내가 그것 따위에 쉽게 마음을 상하거나

관계를 정리할 정도의 멘탈은 아니라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그러니 더 큰 균열은 바로 너와 나의 서로 다른 철학의 차이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늘 대화의 말미에 마음이 아름답게 차올랐던 지난 학창시절과는 다르게,

이제 너와의 대화를 끝마치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고

덤으로 너의 그 행동들 때문에 벌레씹은 기분을 선물로 받는다.

추구하는 철학이 다르니, 행동양식도 다르게 나올 것이고

그런 것들이 부딪침의 원인이 되고 

종국적으로는 만남 후에 느껴지는 찝찝함의 원흉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하길 친구는 근본적으로 서로 친구의 불행한 모습을 보기를 좋아한다 했더라. 

맞는 말 같았어도 우리는 아닐 줄 알았다.

적어도 우리는 아닐 줄 알았는데, 

글쎄 너 스스로의 과분한 솔직함의 모습으로

그걸 조금씩 증명해 나가는 것 같아 

나는 씁쓸했던 것 같다.


내가 너와 연을 정리하기 전,

너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표현은 너무나 웃긴 표현 같고

(우리가 무슨 왕과 신하의 관계도 아니고. 우리는 친구였는데.)

내 스스로 너를 떠나기 전에 몇 번의 점검을 조금 했었던 것 같다.

내게는 참 소중했었고 가치 있었던 친구 중 한 명이었으니

이렇게 쉽게 내 인생에서 정리해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판단미스와 착오일 가능성도 있겠으니 말이다.


그러나 몇 번의 횟수를 끝으로 너는 나에게 확실한 정리를 시켜주었다.

너는 기억을 절대로 못하겠지만, 과도하게 솔직했던 지하철에서의 네 말들을 시작으로

나는 천천히 끝을 보기 시작했고 여기에까지 이른 것 같다.


떠나기 전에 글쎄, 충고라고 하기에도 우습고, 그저 내가 느꼈던 느낌에 근거해서, 네게 일부러 하지 않았던 말을 조금이나마 써 보자면,


첫번째로 너무 솔직한 인간관계는 네게 독이 될 것이다. 

물론,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결국에는 자기와 닮은 사람들이 곁에 모인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 둘 가지치기가 되는 것이지. 

너의 관점으로 보면 나도 그 가지 중 하나가 아니겠니. 


그런데 네가 나에게 말하길 너는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착한 사람은 타인에게 쉽게 접근하진 않는 사람이거든.

타인을 쉽게 정의내리거나 평가하지도 않고, 속단하지도 않지.

다 쓸데없고 한마디로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소리야.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그러한 사람들이 네 주변에서 쏙쏙 빠져나가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지금껏 네가 걸어온 삶이나 네 주변을 채우기 시작하는 인간관계를 보더라도 말이다.


물론 네가 좋다면야 더할나위 없이 퍼펙트지.

그러한 관계들 속에서 자라는 사람들도 있을테니까.

그래도 너가 이상형을 말할 때나 좋은 사람의 기준을 말할 때

'착함'을 자주 들먹이길래 

뭔가 핀트는 맞지 않는 것 같아 한 번 얘기해 보았다.  

너의 가감없는 솔직함들은 너에게는 잠깐의 청량감과 자유를 주겠으나 

그만큼 곁 사람들은 충격이나 당혹감 등으로 폭격을 맞을 수 있다는걸 알아두었으면 참 좋겠는데.

아쉽구나.


두번째로 부모님 고생 그만 시켜드려라.

나도 나이지만, 너도 동기들 중 나 못지 않게 이십대 초반을 낭비한 놈 아니겠니.

나는 네가 이제는 현실을 좀 보았으면 좋겠다.

너는 나보다 머리도 월등히 좋고 해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 온 것 같다.

그게 독이 되어 너를 붙잡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번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진부한 말이지만 현명하게 판단을 잘 해라. 

학교에서 네가 누렸던 자유들, 

수업 시간들을 잠으로 보냈다든지, 

하루종일 스포츠 등을 보면서 지냈다든지 했던게

지금의 너를 만든 것 아니겠니.

여기저기 마음껏 방황하다가 이룬 것 하나없이 여기까지 왔잖아.


하고 싶은걸 하고 산다 해도, 현재를 산다 해도

자기 밥은 벌어먹고 살 만큼의 인간 됨됨이는 있어야 한다는걸

너는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정신 상태라야 더할나위 없이 똑바로 박힌 놈이니까

몸은 좀 고생해도 먹고는 살 것 같아 보이더라만은.

글쎄, 네 인생 네가 똑바로 좀 챙기면서 살기를. 적어도 이제부터는.

아버지 어머니도 시골에서 자그맣게 교회 열어놓고 사시잖니.

내가 간섭할 바야 아니지만. 주책이었다~~

마지막이라 그래.



떠난다고 해서,

뭐 아예 무시를 하거나 안보겠다는게 아니고

(어떻게 이 좁은 지구별에 같이 사는데 안 볼수야 있겠니.)

기회가 되면 예전과 똑같이 보기도 보고

먹기도 먹고 얘기도 할 거야. 

다만, 앞으로 내가 먼저 모임을 주선해서 만든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어질 것이고,

연락을 먼저 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전무하겠지.

무엇보다 달라지는건 그저 내 개인적인 마음의 거리이겠다.

어쩌면 전보다 너에게 더 잘 해줄지도 모른다.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나 두 번 보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더 잘해주고, 아부도 많이 해 주고, 기분도 좀 맞춰주고. 나는 그러거든.


대신에 중요한 관계들 리스트에서 네가 좀 제외가 되었다는게.

이 지구 상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내 안에서는 그런 변화가 일었다는게

오늘 갈겨 쓴 글의 내용이고 또 결론이다.


그리고 너는 학창시절과 이십대 초반을 통틀어 

그래도 나에게 많은 추억이나 에피소드들을 선물해 준 놈이기에

하루아침에 가지 따듯이 똑 따버리기가 뭔가 어색해

이렇게 끄적대기 시작했는데 뭔가 질질 길어진 느낌이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담배 좀 그만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