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장> 영원의 문지기
4. 나는 세상과 함께 장난감을 받으러 간다
4-1. 의도의 에너지
거울의 법칙(현실을 조종하는 법칙)에 대해 알았다면,
보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 차례다.
첫째 필요한 조건은, 충분히 높은 에너지 레벨이다.
이것이 없이는 트랜서핑이 전혀 불가능하다.
에너지는 두 가지 종류,
즉 생리적 에너지(신체)와 자유에너지(원기 또는 생명력)가 있는데,
자유에너지가 바로 = 의도의 에너지이고,
이로 인해 사람이 적극적이고 단호한 행동이 가능하다.
(만약 내가 일상적인 일을 할 정도의 기운만 남아 있고
다른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면,
이것은 에너지 수준이 매우 낮아졌음을 알리는 징조다.)
의도의 에너지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어떤 나이에도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을 지향하기를 멈출 때 생명력과 창조적인 힘이 위축된다.
세상을 무관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눈을 뜨고,
권태감을 좋아하며, 하나도 놀라울 것 없는 듯,
무심하고 느릿느릿한 목소리를 내지 말라.
그런 사람들이 일찍 늙어간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라. 그러면 에너지가 커진다.
경탄하고, 새로운 목표를 지향하라.
이 에너지를 어디서 얻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그것은 우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가질 수 있으며
이미 나는 가질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 에너지가 사라져서 어디 가고 없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전부 다른 곳에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나에게 부담을 주는 의무와 제약에 사용되고 있다.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의무, 약속,
자신에게 내걸린 어떤 조건들이 전부 무게추처럼 목에 걸린다.
그 다음으로는, 잉여포텐셜에 의한 부하가 대표적이다.
내가 부여하는 지나친 중요성 - 열등감, 책임감, 죄책감, 문제 과장, 의심과 걱정 등이다.
그밖에도 살면서 쌓이는 평범한 찌꺼기들로 인해 에너지 통로가 작아지는 탓에
창의성 저하와 체력 저하, 질병 등이 발생한다.
에너지가 부유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유에너지 자원의 여유를 갖기 위해선,
잠자고 있는 계획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그것을 실현시켜야 한다.
지금 내가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아마 많은 저울추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질구레하고 무거운 많은 짐들이
언뜻 보기에는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결국은 실현시키지도 못할 거면서 지고 다니기만 하고 있다.
예시)
내가 최고라는 걸 모두에게 확인시켜야 한다는 짐,
나에게는 실패할 권리란 없다 등.
(1). 담배 등 나쁜 습관 끊기 - 오히려 채권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동업관계를 맺으라. 오히려 자유롭게 풀어놓은 습관이 덜 해롭다.
(2). 공부 = 무조건 외우기 - 머리에 정보를 채우는 쪽으로 가면 심한 긴장이 발생한다.
지식은 정보와 달리 의도가 실현되는 구체적 경험이나 활동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다.
나에게 압박을 가하는 제약들의 목록을 작성하여 그걸 목과 어깨에서 내려 놓자.
의도의 예비 에너지가 생겨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건 자신만의 목표를 찾는 것이다.
영혼과 마음이 일치하여, 생기에 넘친 채로 꿈을 향해 열띤 질주를 시작할테니까 말이다.
목표는 의도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킨다.
그렇다면 에너지 부족 문제는 절로 사라질 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찾으려면,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한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당분간은 자신의 목표를 가지지 않는 여유도 허락해라.
목표를 찾기 위해서는 다시 자유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할 것.
에너지를 높이는 방법은 허비되고 있는 자원을 자유롭게 풀어놓기 말고도,
훈련을 통해 보강하는 방법도 있다. (트랜서핑 3권)
[의도 에너지를 훈련시키는 법]
항시 척추를 따라 흐르는 중앙에너지 통로의 상승, 하강 흐름에 주의를 집중하라.
(특히 운동할 때.)
더하여 날마다 내 에너지가 향상되는 모습의 슬라이드를 덧붙이면 효과는 더욱 커진다.
이 훈련을 하다가 이튿날 피곤과 침울함을 느끼며 체력이 완전히 떨어져도 놀라지 말 것.
운동을 안하다가 했을 시 근육이 쑤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곧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저 ‘나의 에너지는 날마다 커진다’는 방향만 설정하라.
더불어 열을 가하지 않은 천연 식품으로 식단을 구성해보라.
깨끗한 신체에서는 깨끗한 수도관처럼 수압이 세다.
높은 수준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새로운 영감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천재적인 답을 찾아내고
걸작을 창조할 수 있다.
예술의 신이 나방처럼 찾아올 것이다.
희의감, 비관적인 시선은
에너지가 부족하고 낮은 수준임을 드러내는 징표다.
때로 영적 격동의 순간처럼 영감이 찾아오고,
얼마 가지 않아 금방 현실주의자가 되며 희망들이 다시 절망으로 변하고
침울하고 평범한 세계가 다시 깔려드는 현상을 경험하는데,
이것은 영감이 아니라 도취 상태에 가까운 것이다.
원리는, 낮은 에너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급격한 이행이 있을 때,
(강력한 자극제를 복용했거나, 비정상적 정보가 상상력을 자극했을 때)
의식이 멀리 떨어진 섹터에 접속했던 것이다.
진짜 아이디어는 안정된 의도 에너지에 의해 생겨나며,
가능태 흐름 가까이에 있다.
높은 의도 에너지는 물질세계에서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생명력도 제공하며,
동시에 원하는 것을 더 빨리 현실화되는 것도 돕는다.
방사되는 에너지의 출력이 높을수록 실현과정의 효율도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단, 높은 에너지 수준은 강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기 세계의 층을 새롭게 형성시키려면,
그것과 일치되는 느낌 - 더 나아가 동일성을 느껴야 한다.
현실과 함께 움직이며,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차분히 인내심을 발휘하며
꾸준히 목적만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의 세계와 일치감을 느껴야 한다.
한참동안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내가 주변 현실로부터 고립되어 분리되어 있다는 그 느낌부터 버려라.
항상 주변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이고
나를 이 세계의 한 일부분으로 녹여들이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의도에 일정한 방향을 띄우는 것이다.
(의도에 방향이 없이는 원하는 걸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어떤 경우든 오직 자신의 의도가 지향하는 그것만을 얻는다.
나의 목표가 살을 빼는 것이라면, 날씬한 몸을 생각해야 한다.
나의 목표가 의도에너지 향상이라면, 에너지 흐름과 보호막에 집중해야 한다.
레이저가 수십킬로 밖까지도 비추듯이, 목표로 가는 정확한 방향제시를 하라.
주의가 목표가 아닌 노력에 치우치면 생리적 에너지만 허비된다.
필요한 것은 긴장이 아닌 집중이다.
생각이 널뛰듯 날아다니지 않는가? 자신의 생각을 조종하도록 해야 한다.
이 습관을 기르려면 이 단순한 원칙 하나를 실천하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라.
어떤 행동이라도 무의식적으로 넘겨버리지 말고, 의도를 선언하라.
나의 마음은 내가 허락할 때만 방황한다.
필요할 때는 의도적으로 집중 상태로 돌아오라.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 속 심상은 언제나
이중거울에서 보고자 하는 그림 대부분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세계와 유기적으로 완벽히 일치되지 않아도 된다.
목표 슬라이드에 주의를 고정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은 언제나 가끔씩 통제를 벗어나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목표 슬라이드의 궤도로 되돌려 놓는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4-2. 자신의 세계 청소하기
사람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층(환경) 속에서,
무수한 사람과 물질적 대상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행동과 생각으로써 만들어낸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심상이야말로
사람이 평생 씨름해야 할 대부분의 물질적 문제를 만들어내는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이 중 물질적인 것을 모두 제외시키고 나면, 중요한 본질만이 남는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형편이 좋은가? 나쁜가?
기다, 아니다는 중요치 않다.
형편이 좋지 않을수도, 좋을 수도 있다.
이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내가 지향하는 것을 얻고 살고 있는지,
모든 상황이 성공적으로 조성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즉, 이 고유의 뉘앙스가
물질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 생각의 심상을 어떻게 정돈해 가지느냐에 따라
내 세계의 층은 밝은 색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즉, 자신의 개별적 현실을 신체와 같이 청결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집안을 자주 대청소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낡고 못쓰는 것과 더러운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사사건건 꼬일 것이다.
내 사랑, 세상과 함께 장난감을 받으러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죄책감, 나의 이상(아직 멀었다는 것을 말하는),
두려움, 불안, 의심, 불길한 예감, 건전한 이성
등등이 손을 흔들고 서 있는데, 굳이 그들을 태우지 말자.
만원버스가 되면 너무 늦다.
이 중 가장 쫒아내기 힘들고도 파괴적인 것이 (1)죄책감인데, 개들 중 왕초이다.
세상이 나에 대해 적대적이고, 벌주고,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 질병의 증상이 있으므로
이 더러운 것을 발로 차 내쫓아버리라.
이들은 ‘죄 지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온갖 불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죄책감은 사소한 불상사로부터 큰 문제까지 여러 종류의 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손가락을 베이는 것 부터 교통 사고 등…)
아주 어릴 적부터 죄책감이 주입되었을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그런 느낌이 오래되지는 않았는가?
치료법은 변명하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말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변명하지 말라.
만약 내가 이전에 어떤 작은 이유 때문에 사과했었다면
이제 다른 습관을 기를 때가 됐다.
(2)열등감 콤플렉스 또한 거의 모두의 질병이다.
사람이 열등감을 느낌으로써 중요성을 높이려할 때
결과가 어떨지는 이미 알고 있다.
여기서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법칙과 같은 법칙이 적용되는데,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실질적인 중요성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자신의 중요성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중요한 사람이 된다.
내가 가치있는 존재이고, 굳이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자신의 중요성을 높이려는 모든 노력을 그만둬라.
나의 위치를 고정시키려는 그 어떤 행동,
나의 장점을 강조하려는 그 모든 행동은 환상이며, 그림자를 좇는 짓이다.
나는 가치있는 존재이고, 그걸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이 살면,
주변 사람들은
이미 내가 중요성을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그것을 느낄 시에 존경이 따라온다.
그 존경을 받으며 ‘내가 정말 가치 있구나’는 확신으로 거울의 순환고리가 돌기 시작한다.
즉, 죄책감이나 중요성의 문제는
주의를 거울로부터 심상으로 돌리고,
그림자 좇기를 그쳐서 거울의 순환고리를 멈추게 하는게 급선무이다.
(3)의심과 걱정과 두려움도 세상의 모습을 철저히 망쳐놓는 주범이다.
두려움은 목표실현에 가장 큰 피해를 주며,
정말로 두려워할 것들이 내 세계의 층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두려움은 소망을 욕망으로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욕망의 불을 꺼야 한다면, 실패의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찾아야 하고,
또 처음부터 패배를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할지도 몰라. 근데, 그것도 나에게는 행운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잘 안되고
그것이 자존심까지 상하게 할 때의 절망감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요성조차 내던지게 만드는데,
그 즉시 나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심은, 내가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궁리할 때 생긴다.
목표달성의 수단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이야기했다.
내가 할 일은 목표가 이미 달성되었다는 상상과 그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다.
첫째, 의도의 아말감을 유지하며 - “나의 세계는 나를 보살피고 있다.”
둘째, 마지막 3가지 거울의 법칙을 따르라.
다음과 같다.
- 5. 원하지 않는 것 말고, 원하는 것만을 생각하라.
- 6. 세상이 최적의 궤도(가능태흐름)를 따라 흘러가도록 허용해라.
- 7. 어떤 악조건도 유익하게, 긍정적으로 인식하라.
모든 결과가 다 성공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다 성공인데 왜 걱정하는가?
비범하게 행동해 봐라.
실패를 성공이라고 불러보라.
이제부터는 실패가 성공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실패자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더하여, 어떤 경우에도 (4)비판은 무익하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짓이다.
균형력은 비판하는 자를 피고석에 앉힐 것이다.
(5)그 밖의 부정적인 태도들에 대해서도, 이 한 가지만 알고 있으라.
‘나의 세계, 나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는 연극의 주연 역할을 맡아서
그런 현실을 형성하고 지속시키고 있다는 것을.
내가 언제나 거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늘 상기하라.
내 태도에 따라 세상이 변하고 있다.
만일, 정말 현재의 모든 상황이 열악하고,
어떤 법칙도 실천할 만한 힘이 없다고 쳤을 때,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
자유 에너지가 부족할 때 사념의 심상은 부정적인 기운을 많이 품게 된다.
내 현실이 모종의 막으로 덮여있는 것 같을 때,
허공에 뭔가 무거운 것이 걸려있는 것 같을 때,
물질세계가 나를 냉랭한 적대감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을 때,
불운의 순간이 오기 전에
자유 에너지의 부족을 인식하고, 에너지를 다시 높여야 한다.
지금 내가 우울하다면, 즉시 처방이 있다.
즉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며,
현실 교정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이다.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정화 시간을 가져라.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종일 시간을 보내라.
우는 아이부터 달래주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나의 인생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그 때.
내 세계의 층이 깨끗했고,
나도 특별히 불만을 제기하기 전이었던 그 때.
지금 모든 것을 고스란히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지금도 말이다.
거울의 법칙을 따르기만 하면…
4-3. 거울 조율하기
사람들은 현실을 조종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모델)를 만들어 왔다.
공통점은 그 모두가 내부의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현실의 한 부분만을 자기의 의도에 복종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강 한 부분을 관리하여 에너지를 생산하지만, 강 전체를 통제하진 못한다.
현실 전체는 오직 영혼과 마음의 일치 속에서 태어난 외부의도에만 복종한다.
사람은 두 가지 방법,
1). 주변 세계의 대상들을 부속물로 만드는 것
2). 외부의도를 이용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문명 발전의 방향과는 상반됨)
으로 현실을 조종할 수 있다.
인간은 첫 번째 방향만을 따라 발전해 왔기 때문에,
대부분 길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 현실은 거울처럼 사람들의 태도를 반영한다.)
거울은 특징이 있는데, 바로 양극성으로 인해 일그러진다는 것이다.
양극성은
1). 비교, 대조, 의존관계(너는 ~~하니까 나는 **한 사람이야.) 때문에 생기기도 하며,
2). ‘나사 조이기’ 때문에 생긴다. (내부의도로 반영을 압박할 때 일이 더 안풀리는 것)
균형력은 반대되는 것들을 충돌시킴으로써 양극성을 제거한다.
= 결과적으로 사람은 내부의도의 방향에 반대되는 결과를 얻는다.
알다시피 양극성으로 인해 발생된 균형력은
양 극단을 서로 충돌시킴으로써 양극성을 제거한다.
양극성을 제거하면 거울을 바로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면,
아이를 교육 시에 모든 부모는 통제해서 정렬시키려 든다.
이 게임의 규칙은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해.”이다.
이런 원시적 접근은 ‘양극성’을 일으키며,
균형력으로 인해 더욱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어른들은 다시금 ‘나사조이기’(규율의 나사)를 하지만,
더욱더 무례해지거나 꺾여서 게임의 부속물로 자라날 뿐이다.
무지한 교육의 내부의도는 이 멍청한 공식으로 수렴된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네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돼!”
교육의 모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내부의도를 없애고 거울이 왜 일그러졌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양 극단을 확인해 보자.
한 쪽의 나사가 조여져 있다면, 반대편은 풀려져 있는 것이다.
조여진 부분은, 주변의 압박과, 아이를 굴복시키려는 어른의 의지로 조여져 있다.
여기에서, 정렬과 통제, 규율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양극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이던 나사를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정렬과 통제를 ‘지혜로운 방치로써 희석’시켜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장난들을 함께 치며, 이런 지혜로운 어리석은 짓들을 많이 할수록
아이가 말을 더 잘 들을 것이다.
(침대 위에서 뛰기, 괴성 지르기, 베개 싸움,
서로 밀치고 네 발로 돌아다니기, 서로의 얼굴에 잼 발라주기,
더러운 물 웅덩이에서 뛰어 놀기 등…)
그간 정렬과 통제로 조여왔던 나사를 푸는 과정이다.
그와 더불어,
강요보다는 해야 할 일을 아이가 스스로 나서서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간 규율 아래에서 압박받아왔던 나사를 풀기 위해
아이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의논하고
“~한다면 어떨까?” 라며 상황을 유도하는 것이다.
즉, 강요를 → 스스로 나서서 하게끔 만들어여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에게 필연적으로 지어지는 의무를,
그의 중요성을 높여주는 일로 전환시킬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자신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강화시키는 것은
모든 사람(특히 아이들)에게 근본적인 행동 동기가 된다.
이외의 교육의 전반적 행태 또한,
외우기가 아니라 실천하기로,
보고하기(시험 보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주기로 바꿔주면 정말 좋을 것이다.
이것은 좌뇌가 아닌 우뇌를 발달 시켜 직관(직감)을 개발시켜
뛰어난 인물과 천재들을 키워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에서는 펜듈럼(조직)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녀들이 진정으로 잘 되기를 바란다면,
그들과 대화할 때마다 늘 양극성의 수준을 살피도록 하라.
매사에 영혼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교육 시에도 마찬가지다.
유머와 즐거움은 중요성을 줄여준다.
중요성이 줄면 거울이 찌그러질 확률이 줄고,
현실을 조종하기가 편해진다.
그러나 교육 시 바퀴살을 완전히 풀어버리면 안 된다.
매사가 도를 넘지는 말아야 하며, 이 중용을 찾아야 한다.
내 주관보다는, 끝없이 관찰하고 생각하고, 거울 조율의 법칙을 실천하라.
아이들은 탁월한 인물이 되며, 그들 스스로 알아서 조직에 합류할 것이다.

4-4. 현실의 지배자
지금까지 나는,
나의 인생이 자각몽이라는 사실과,
나의 세계의 층을 안락한 곳으로 만드는 법에 대해 배웠다.
거울의 법칙보다도 더 강력한 방법들에 대해 배워 보자.
트랜서핑의 주요도구는 목표의 슬라이드로,
이미 이루어진 모습을 심상화 하는 것이다.
트랜서핑에서 자세히 배운 내용 중 중요부분만 상기해 보자.
외부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아니다.
목표가 이미 이루어졌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
그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주변에 뭐가 있는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 속에 내가 이미 몸을 담그고 있어야 한다.
내가 슬라이드 중심부에서 하려고 하는 그것을
이미 잘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라.
세상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얻고자 하는 것의 심상을 그리는 것이다.
목표의 슬라이드는 가능태 흐름의 벡터(vector, 방향)를 정해준다.
이것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돌리면 사건과, 상황은 목표를 향해 전개된다.
정확한 계획, 방법, 수단은 알 필요 없다.
적절한 시기에 열리는 문, 구체적 길과 방법과 기회가 온다.
어떤 방법으로 달성할지에 대한 강한 조건을 세우면 안 된다.
오로지 결과에만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
목표 슬라이드 외에도
과정의 심상화에 대해 배웠는데, 이것은
목표가 어떤 그림으로 실현될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을 때,
이를 위해 물질세계에서 필요한 일을 행하고 있을 때,
즉 내가 목표달성의 경로 위에 있을 때,
심상화를 통해 그 과정을 촉진할수 있는 방법이다.
이 법칙은 다음과 같다.
나는 모든 것을 너무나 훌륭하게 해내고 있으며,
오늘은 어제보다 낫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목표 달성으로 방향이 갖춰진 가능태 흐름을 따라 노를 젓는 일이다.
슬라이드 상영은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목표를 꼭 달성하기 원한다면 30분씩이라도 날마다 해야 한다.
심상화 효과를 높여주는 구체적 방법은
첫째, - 에너지 흐름이다.
방사되는 의도 에너지의 출력을 높이는 것이다.
척추를 따라 상향과 하향의 에너지 흐름에 주의를 집중하면 출력이 향상된다.
[1. 복부의 신체중심, 즉 태양신경총(solar plexus)이 있는 곳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0.5미터 길이의 화살 두 개가
앞뒤를 향해 밖으로 뻗어나온 모습을 상상해보라.
2. 이들 중 하나를 위로, 하나를 아래로 방향을 돌려 보라.
3. ‘열쇠를 돌리면’ 상향과 하향의 에너지 흐름이 활성화된다.
4. 긴장하지 말고, 하나는 하늘을 향해, 하나는 땅을 향해 흐르는 에너지를 상상하라.
5. 주의의 일부분을 흐름에 고정시킨 채 슬라이드를 즐겁게 상영하라.]
긴장은 금지며,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산책하면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둘째, 다음 방법은 - 프레임이다.
목표가 달성됐을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하는 중인지, 그 빼놓을 수 없는 부분들,
필수적인 요소와 속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예: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아있음,
자가용 요트를 조종중, 집 정원에서 장미를 심고 있음,
큰 계약을 맺고 동업자와 악수중 등등…)
흘낏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와 느낌을 포함하여,
통합적 인상을 형성해야 한다. = 이것이 바로 ‘프레임’이다.
이것을 전구 켜듯이 수시로 순간적으로 켜야 한다.
긴장하지 말고 언제든지 켜기만 하면 된다.
머릿속에 현실로 실현시키고 싶은 프레임을 돌리면서,
내 에너지 보호막(구체)이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확장하는 것을 상상하라.
이것은 프레임의 효과를 폭발하는 파동의 도움으로 높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실제적 심상을 주변 세계로 방사하는 것이다.
내 생각(사념)은 절대로 흔적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셋째, [외면구체 만들기]도 유용하다.
자신의 에너지 막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의도에 따라 확장되는 것을 느껴 보라.
이 에너지막(구체)은 나를 외부세계와 연결하는 경계막이며,
구체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고, 그 밖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적극적인 행동(내부의도)이 내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시작되는 것을 깨달으라.
구체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 내 반경 5~7미터에 보이지 않는 구체 경계막이 있다.
- 이 구체가 내 몸을 잡아당겨 확장시키려고 하고 있다.
- 이 구체는 탄력성이 있다.
이제 나의 행동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의지로 연필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움직여 준다.
내 몸이 공중에 뜨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세계가 나를 공중에 뜨게 한다.
내 의지가 세계를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알아서 하도록 만든다.
목표 달성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아니고,
외부에 있는 에너지 보호막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느낌에 주의를 고정시킨 채 목표 슬라이드를 상영하면,
슬라이드의 효과를 몇 배나 강화시켜줄 것이다.
넷째, [무대장치 정합시키기]는 내 머릿속 모든 생각을 목표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생각들도 목표의 슬라이드로 사슬을 묶어 완성시켜라.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자주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뭘 생각하든 내 주의를 항상 목표로 돌려 보내라.
심지어 모든 사건과 정보를 그 맥락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예: 주변 공원을 걸을 때, 내가 살 집의 정원의 꽃과 나무를 가꾸고 있는 것처럼 슬라이드 상영.)
어릴 적 그 시절의 평안함과 안락한 느낌은 무엇이었는가?
(대원 아파트 1층 시절, 어항이 있었고, 밖 베란다는 방아깨비가 있는 잔디였다.)
연상되는 그 광경이나 느낌을 열쇠로 사용해봐라.
마지막으로, 특별히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방법 -
[목표 아말감]이 그것이다.
성공적인 심상화의 중요한 조건은 자신에게 스스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하면 잉여 포텐셜이 내 작업을 망쳐 놓을 것이다.
그럴 때는 이 의무의 짐을 풀어버리고, 세상이 알아서 보살펴주게끔 해야 한다.
“내가 전혀 모르는 가운데도 모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결될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표명할 때 나는 꽉 쥔 손을 펴고
외부의도가 목표를 실현토록 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품에 안긴 채, 더 이상 슬라이드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며,
내 세계가 그걸 대신 해 주는 것을 목도하기만 하라.
단지 수시로 세상에게 상기시켜주기만 하라.
(물론, 물질적 차원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수행중이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원하는 바’를 표명하지 말고,
목표는 내게 ‘당연하며’, ‘이미 가지고 있다’ 로 살아가라.
의도를 고정시켜라.
사람이 부적, 또는 어떤 의식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믿으면
그는 거기에 의도를 고정시키게 된다.
이처럼 어떤 ‘걸개’를 생각해봐라.
마법의식이나 물건은 필요없지만,
나의 적극적인 의도를 표출해주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라는 뜻이다.
일례로, 집을 갖고 싶다면 곧 이사갈 것처럼 행동하라.
부동산 광고와 카탈로그를 살펴보고, 상점에서 가구와 전자제품을 구경하라.
일찌감치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라.
의도를 고정시키는 것은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슬라이드를 강화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고,
가장 잘 된다고 생각되는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너무 극단으로 치우치지 마라.
(극성스럽게 하지 말 것.) (또는 무사안일한 태도도 금할 것.)
중용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온 정성을 다해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안일하게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 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 잘 듣는 방법은 모두 옳은 것이라는 법칙을 기준으로 삼아라.
심지어 나 자신만의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활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데에 영혼과 마음의 뜻이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 세계의 층을 내가 편한 대로 창조해라.
바로 이 태도가,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데에 영혼과 마음의 합일을 이루어내고, 내 현실이 형성된다.
심상화 중에 감정적 불편을 느껴서는 안 된다.
편안하고 즐겁게 하지 않는 한 시간 낭비다. (외부의도는 영혼과 마음이 일치될 때만 생긴다.)
슬라이드는 가상으로 그 안에 사는 것을 말한다. (이미 너무 반복했다.)
너무 열심히도 하지 말라. 다만 규칙적으로, 가끔씩 즐기면 된다.
규칙성은 성공의 중요한 조건이다.
나는 한 달 동안만이라도 규칙적으로 나의 생각을 목표에 집중해 본 적이 있나?
내 생각을 제멋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흐물흐물 공간 속으로 흩어지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불길한 우려들만이 나의 근심스로운 사념에 끌려와서는 현실화 되곤 했다.
실천하면 재미있는 현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적극적인 심상화가 나의 궤도를 직선으로 만들고,
가장 짧은 길로 목표에 도달하게 하면서,
나는 ‘가능태의 경유(지름길)섹터’를 거치게 되고,
그 곳은 일상적인 흐름에 벗어나 있으므로
별난 사람들이나 사건들을 목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주로 꿈에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내가 모든 방법을 아예 잊어버리고서도
통합적 느낌(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모든 일이 잘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잘 될 것이라고,
모든 일이 필요한 대로 잘 될 거라고 느끼는 상태. - 아말감)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껏 언급된 방법들과, + 현실지배자의 의도까지 사용한다면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다.
4-5. 꿈의 조율
사람은 각자의 특정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며(출발하며),
이 상황에 최면이 걸려, 현실이라는 꿈의 지배 하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동안 그 꿈은 더욱 확고하게 자리잡으며,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
거울의 반영에 주의를 고정하는 행위는,
삶을 무의식적인 꿈으로 만들고,
그 행위를 한 나는 완전히 상황의 지배를 받으며 살게 된다.
현실이 일어나는대로 얻어맞으며 살게 되는 것이다.
나를 묶어두는 것은 단 한가지 : “주의”다.
나는 거울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
거울 밖에서는 의식적으로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
변화는 외부의도가 있는 거울 밖에서만 가능하다.
주의를 거울 속 반영들로부터 심상으로 옮기면 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잘 관찰해보면, 나는 늘 상황에 양보하고,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엔 순종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들(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면 가끔은, 기껏 해봤자 내 시나리오를 고집하면서 저항하며 싸웠을 것이다.(내부의도)
그럴 필요가 없다.
거울 앞에 있는 심상, 곧 자신의 태도만 바꾸면 된다.
단 여기에는 새로운 규칙이 있다.
내 관점에서 볼 때 실패로 여겨지는 주사위가 나왔더라도,
그것을 성공의 주사위 번호로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줄거리를 역동적으로 교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할 때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려고 하겠지만,
그 불만 제기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즉각적으로 만사가 잘 되어 가고 있다고 외치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출발점에 서 있을 때,
마음이 방법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주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마음은 뭔가를 실현시키려할 때
반드시 어떤 구체적인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온갖 부정적인 가능성들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것이다.
걱정만 하면 다행이다.
마음은 틀에 꽉 박혀 있어서
자기가 만든 시나리오를 수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일을 망쳐놓는 행위를 한다.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라.
“이 바보야,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네가 할 일은 최종 목표에만 주의를 고정시키는 것 뿐이야.”
생각한 바가 실현되는 것을 스스로 나서서 훼방하지 말라.
실제로는 모두가 되어야 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의 희망이 이루어지기 어려운건,
마음이 틀 안에 들어앉은 채로 훼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정관념의 자물쇠들로 꽉 잠겨있는 것이다.
주문 후에는 그 길로 걸어가기만 하라.
어떤 일이든 간에 모두가 내 주문을 완수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내가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모두가 필요한 대로 움직이고 있다.
상황은 외부의도와 가능태 흐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일은 흐름의 벡터(방향)를 정하는 것일 뿐,
그것이 어떤 궤도로 움직일 것인지 걱정하지 않는다.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고 덤비는 것은 마음의 내부의도가 벌이는 짓이다.
나는 거울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꿈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이 내게 매달려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나의 독자성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가지 차이점은,
거울 속 백일몽은 실제 거울과 달리 그다지 빨리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완만한 성질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면 놀라운 일을 경험할 것이다.
현실이 나의 사념으로써 만들어내는 심상에 따라 부드럽게 변해가는 그 일들을 말이다.
나는 이 세계의 밖에 있다.
나는 거울 밖으로 나온 것이다.
4-6. 현실 지배자의 판결
이제 나는 현실을 컨트롤하기 위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온세계를 바꿀 수는 없겠으나
나의 개별적 현실은 내 손안에 들어 있다.
가능태 공간 속에는 세 가지의 소중한 선물이 있는데,
내가 (1)실현가능한 나의 미래,
(2)나를 천재로 만들어줄 비밀의 참 지식,
(3)그리고 숨막힐 정도로 놀라운 제3의 무언가 이다.
(2)참 지식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인류는 늘 발견하고, 이 지식의 흐름은 끝이 없다.
하지만 발견하고 창조해 내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내가 나 자신의 길로 갈 때도 세상의 보물들이 내 앞에 열릴 것이다.
사람 한 명의 목표와 문은 독특해서 그것이 그만의 특유한 ‘길’인 것이다.
사람들은 훗살 어떻게 그런 것을 발견하고 이뤄냈는지 놀란다.
여기서 우리는 ‘의식적인 앎’과 ‘정보적인 지식’ 사이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옛 것을 ‘배우기’를 중단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창조가 아니라 모든 발견과 걸작들이 나오는 그 곳,
즉 영원으로부터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단, 가능태 공간에 있는 정보에 접속하려면
관심 분야의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정보은행에 접속할 수가 없다.
기초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나면,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은 모두 잊어도 된다.
나는 직접 발견하고 새로운 걸작을 창작해 낼 것이다.
책, 그림, 음악 등 모든 창작물들은 가능태 공간으로부터 꺼내오는 것이다.
가능태 공간의 그 섹터에 ‘걸개’가 걸려야 하는데,
이 ‘걸개’는 분위기(기분)이다.
지어낼, 꾸며낼 필요가 없다.
그 곳에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한다.
가만히 가능태 흐름만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천재적이라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것이다.
가능태 흐름은 바로 이런 단순한 길을 따라 흐른다.
그러니 꾸며내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하게 “나아가기만” 하라.
모든 일의 시발점은 ‘아이디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고, 나머지는 가능태 흐름이 완성시켜 줄 것이다.
군중의 대열을 벗어나 가슴의 지시에 따라
자신만의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일이 일어난다.
마음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영혼은 알고 있다.
영혼에게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완전히 의탁해도 좋다.
영혼만이 ‘영원’ 속에 접속할 수 있다.
내가 어느 한 분야에 기초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나 자신(영혼)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명확히 공식화 하고 나서는 잠시 잊어버려라.
수 개월이 걸려도 수시로 질문을 던져 보라.
며칠 혹은 몇 달 내로 대답이 온다.
관건은 고정관념을 깨고 일반적으로 허용된 법칙도 벗어나,
펜듈럼의 규칙을 파괴하려는 결단이 충분한지이다.
나는 지식을 알 권리가 충분히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답변을 찾기도 멈춰야 한다.
받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의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옳을 권리를 가져라.
가능태 공간의 세 번째 선물에 대하여,
선택된 자, 슈퍼스타와 평범한 사람과의 차이점은 단 하나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가질 용기를 냈고,
다른 이는 자신이 그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선택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통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선택된 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며,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단 한 걸음의 차이에서 갈렸던 것이다.
나를 선택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능력이 있어서, 자격이 돼서 이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에게 이미 있는 것이다.
바로 세 번째 선물은, 나의 권리에 대한 판결이다.
이것이 내가 영원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출입증이고,
내 현실을 창조할 수 있게 하는 허가증이다.
알다시피 가능태 공간 속에는 모든 것이 있고,
거기에 나를 위해 준비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법칙을 스스로 정하는 나의 권리를 되찾으라.
나는 타인에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
나 자신만의 판결을 내려라.
나의 신조에 따라 살라.
타인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것이라도 나는 옳다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거울은 각각의 사람에게 일일이 동의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는 내 현실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했다고 나만의 진리를 정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현실로 실현하는데 필요한
가능태 공간과 이중거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내가 옳다는 것에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의심을 하지 않느냐이다.
그 해답은, 경험 뿐이다.
행동하고 확인 해라.
다만 현실 지배자인 나의 의도가 마음의 독재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하자.
자신의 영혼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창조하지 못하고 실수만 한다.
(예시로는 노래를 아주 못하는데 가수가 되려 애쓰는 이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가슴 속에서는 이미 깨닫고 있지만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
이 권리를 깨닫고, 인정하고, 사용하면,
이 세 번째 선물은
압박받는 상황과,
내 인생을 침울하게 했던 모든 것,
목표도달의 모든 장애물들로부터
자유를 얻도록 해 준다.
나의 세계는 나를 보살피고 있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이 보살핌을 허락할 힘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세계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결할 수 있는
나 자신의 권리를 가진 순간부터,
외부로부터 나에게 강요되는
그 어떤 견해를 버려도 좋다. (심지어 트랜서핑이라도.)
내가 죄책감, 의심, 망설임만 느끼지 않고,
동시에 타인에게 해가 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영원의 문 앞의 문지기는 단 하나의 출입증 만을 요구한다.
‘내가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는 그 권리 말이다.
이제 그 문지기가 내 앞에 있는 영원의 문을 활짝 열여준 것을 보아라.
[에필로그] - 영원의 방문자
나는 오랜 고대의 지혜를 알게 되었다.
항상 존재했으며, 여러 가지 해석으로서 세대를 거쳐 전해내려 왔었다.
해석이 아무리 복잡해도 본질은 단순하다.
“나는 나의 사념의 심상이 반영되는 거울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조종할 수 없다는 환상(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면
현실은 순순히 나를 따를 것이다.
나는 이 기막히게 명백한 비밀을 알게 되었으므로 지금 영원을 방문한 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는 앞날만이 있다.
이 현실 지배자의 뻔뻔스런 자신감을 가지고
욕망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면서 나아가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