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거울 같은 세계
3. 나의 세계는 나를 보살피고 있다
3-1. 이중거울
거울 앞에 선 나를 상상해 보자.
‘나’는 말 그대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대상이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은 비물질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가상적이지만
동시에 ‘나’처럼 실제적인 것 또한 맞다.
현실 또한 (1)물질적 형태와 (2)형이상학적이면서 가상적이지만 실제적인 형태,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온 세상은 거대한 이중거울이며,
한 면에는 물질우주(삼라만상), 다른 면에는 가능태 공간이 펼쳐져 있다.
단, 이 거울은 신의 화신인 모든 생명체의 의도와 생각에 따라 물질세계가 펼쳐져 보인다.
현실의 비물질적 측면을 무시하고 물질적 세계에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모든 생명체는 내부의도의 틀 안에서만 활동하는 원시적 존재가 된다.
얻기 위하여 필요한 행동을 취하고,
팔꿈치로 좌우를 헤치며 밀고 나가며 뭐든 구체적 일을 해야만 한다.
그도 그럴것이, 물질현실은 직접적인 영향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가해야만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물질세계의 틀 속에서는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의 범위가 좁아지고 모든 것이 묶여있다.
한정된 자원과 부족한 수단, 지극히 제한된 가능성의 울타리 안에 모든 것이 묶여있는 것이다.
매사가 필사적인 경쟁 분위기인 이 세상에서,
내부의도의 한계 내에서는 모두에게 보상이 돌아가기 부족하다.
목표를 이루기에 필요한 조건과 상황은 오로지 가능태 공간에서만 나올 수 있다.
거울의 비물질 면에서는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부하며, 아무런 경쟁도 없다.
상품이 눈 앞에 실재하는 건 아니지만,
카탈로그를 보고 고르듯 원하는 무엇이든 선택해 주문할 수 있고
주문한 건 조만간에 그대로 이루어진다.
돈도 낼 필요가 없다.
단지 별로 부담 없는 몇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이것은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이다.
사념에너지(그것의 매개변수에 상응하는 가능태 공간의 섹터를 물질화시키는)는 절대 흔적없이 사라져버리지 않는다.
우리 세계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오로지 물체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정묘물질 차원에서 일어나는 작용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사람이 목표를 지향하여 의도적으로 사념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한,
가능태 공간 섹터의 물질화는 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일어난다.
더불어, 현실에서는 사념 에너지의 영향력이 주로 최악의 불길한 우려와 예감을 실현시키는 형태로 나타난다.
물질주의적으로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치 상점의 비어있는 진열장 사이를 헤매이며 상품을 구하고 있는 것과 같다.
품절이라는 표지판들 사이에서 어쩌다 찾은 상품도 품질이 나쁘다.
그 또한 큰 돈을 내야만 살 수 있으며 카탈로그에서 골라 주문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의식 속에서 이미 유쾌하지 못한 현실을 싹 틔우고,
그것은 물질화 되어 현실로 나타난다.
모든 사람은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행동으로써, 한편으로는 사념으로써
자기 세계의 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모든 층들은 서로 겹쳐져 쌓여 현실세계 창조에 자기 몫의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태어나는 환경이 다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대부분의 삶이,
당사자가 자신과 주변 현실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따라 달리 전개된다.
그렇게 형성된 그의 세계관으로,
그 사람의 생각의 방향과 특성에 일치하는 가능태 공간의 섹터,
즉 시나리오와 무대장치가 현실로 실현되어 살아가게 된다.
각 사람의 개별적인 층이 형성되는 데에는 내부의도와 외부의도가 개입되는데,
직접적 행동으로써 물질세계의 대상에 영향을 주고,
생각으로써 아직 물질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현실화(실현) 시키는 것이다.
좋은 상품은 이미 다 팔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 실제로 그의 앞에 빈 진열장만 있게 된다.
좋은 상품을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비관적인 기대와 의심이 가득하다면? → 기대하는 그대로의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세상이 자기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두었다는 순진한 생각에 가득차 있다면? →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실현된다.
삶은 게임이며, 세상은 거주자들에게 늘 수수께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지 알아맞혀봐.”
각자들의 대답은 다양하다.
“파괴적이다.”
“편안하다”
“우호적이다.”
“암담하다.”
“즐겁다.”
“적대적이다.”
“행복하다.”
……
이 수수께끼(퀴즈)에서는 모두가 정답자인 것이다.
세상은 그 모든 대답에 동의하고,
각자가 대답한 모습대로 그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공식으로써, ‘첫 번째 거울의 법칙’이라 부르자.
1. 세상은 그에 대한 나의 태도를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해준다.
그러나 대개는 불길한 예감만 현실화되고 희망과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음 두 번째 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거울의 법칙’
2. 현실로의 반영은 영혼과 마음의 일치에 의해 형성된다.
이성이 가슴의 명령과 모순되지 않고,
가슴도 이성의 명령을 위반하지 않을 때 외부의도가 일어난다.
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영혼이 뭔가를 갈망할 때 마음이 의심하며 놓아주지 않고,
마음이 어떤 확실한 논거를 제시할 때 영혼은 시큰둥하여 관심을 주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영혼과 마음은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등의
부정적인 일에서만 의기투합을 잘 보여준다.
특히, 뭔가를 바라는 경우에
마음이 펜듈럼의 유혹에 넘어가서 (1)타인의 목표를 좇고 있을 경우, 영혼은 마음에 대항한다.
혹은, (2)영혼을 뭔가를 원하는데 마음이 영혼의 진정한 소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법칙을 실천하기 어려우면, 성을 오랫동안 포위해서 점령하라.
바로 ‘세 번째 거울의 법칙’이 이를 위해 존재한다.
3. 이중거울은 뒤늦게 반응한다. (꾸준한 슬라이드 작업을 하라.)
이중거울은 시간차를 두고 작동하는데,
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울만큼 그 차이가 클 수 있다.
물질적 실현은 타르와 같은 불활성을 띠지만,
그럼에도 슬라이드라 부르는 사념체는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거기에는 단 한 가지의 기본조건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슬라이드를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상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간단한 일이고 단순한 비결이다. 이 방법은 정말로 잘 먹힌다.
단지 사람의 인내심이 부족한 것 뿐이다.
슬라이드의 실현 까지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하는 것은 목표의 복잡성에 달려 있다.
생각한 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마음이 의심하는 동안에는 그 심상이 아직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하지만 곧, 또는 시간이 좀 지나면 거울 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외부의도가 목표달성을 위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줄 때, 그것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마음은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이 열매를 맺게 하고, 그 목표는 정말로 실현될 수 있다.
점차적으로 영혼과 마음이 일치되고,
방사되는 사념에 초점이 형성되어서,
명료하고 깨끗한 심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물질세계 속에 기적이라 부르는 일이 형성되어 일어날 것이다.
3-2. 현실의 아말감
구체적 심상(슬라이드) 외에도, 자기 세계의 층에서 지속적인 좋은 환경과 배경을 유지해야 한다.
중세시대 베네치아 장인들이 거울의 반사면에 금을 섞어 넣어서
사용자들로 하여금 훨씬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었던 것과 같이,
나도 자신을 위해 이중거울을 이처럼 개량할 수 있다.
바로, 내 세계의 층을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나만의 특별한 아말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보살펴 주고 있다’는 공식을 본선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세상은 자신의 제자들을 보살핀다. 나는 세상의 총아, 귀여움받는 아이이다.
그저 자라오면서 계속 부정적 태도를 표하는 성향을 얻어온 것이다.(불만은 편안한 만족감보다 더 강력한 감정이다.)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사람은 자신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므로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결국, 그는 세상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영혼과 마음은 혼연일체를 이루어 간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가 있다.
어린 시절의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 아이스크림 맛, 상쾌한 기분, 밝은 희망과 삶의 즐거움으로.
이건 단순한 긍정적 구호가 아니라, 나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작업방식이다.
단지 나의 태도만이 달라졌고, 그 반영으로서 더욱 그런 현실들이 나타나온 것 뿐이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선택할 것을 규칙으로 삼아 보라.
오늘도 세상은 여전히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다.
지치고 힘든 하루 끝에 저녁이 올 때, 창 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때문에 나는 휴식을 취하고 안락함을 즐길 수 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나만 변했다.
내 태도가 달라져 있었고, 내 생각의 반영으로 이 현실이 나타난 것일 뿐이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재촉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이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참을성과 자제력이 필요하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아말감 공식을 반복하라.
행운을 만나면, 세상이 날 걱정하고 보살피고 있음을 확인하고,
불행해 보이는 일을 만날 때도
모든 것이 의도 조율의 원칙에 따라
필요한 대로 잘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세상은 나를 불쾌한 일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행복한 인생트랙에 머물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직접 해결할 거야!” 라고 나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려는 경향을 보이지 말라.
그러면 세상은 “그래, 내 착한 아이야. 네 발로 걸어가거라.” 하며 널 땅에 내려놓는다.
세상이 모든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문제까지 염려하고 보살펴주도록 허락하라. (마치 습관처럼.)
혹 세상이 나를 보살펴주지 않았다는 의심이 들더라도 노여워하지 말라.
내가 거울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바로 그 거울을 보며 느끼는 나만의 느낌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다.
크게 낙심할 필요 없다. 본선만을 따라 방향을 유지만 해라.
세상이 나를 보살펴주도록 허락하고 나면, 많은 부분에서 세상을 신뢰해도 된다.
세상은 나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가지고 있다.
“나의 세계는 나를 위해 최상의 것을 골라준다.
내가 가능태 흐름을 따라 움직이면 세상은 나를 마중 나온다.
나의 세계는 나를 보호해준다.
나의 세계는 문제로부터 날 해방시켜 준다.
나의 세계는 내가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고 있다.
나는 주문하고, 나의 세계는 그걸 수행한다.
나는 모르지만, 나의 세계는 날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나의 의도는 실현 중이고, 모든 일이 되어야 할 대로 펼쳐지고 있다.”
나의 세계가 모든 걸 알아서 챙겨줄 것임을 제발 알라.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조종할 때, 나는 현실의 조종자가 된다.
3-3. 그림자 좇기
사람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태도)으로 개별적 현실인 각자의 세계의 층을 형성시킨다.
(태도의 날씨, 즉 기상 조건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주변 현실이 사람의 직접적 행동의 결과에 의해 형성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념체의 힘은 결코 작지 않으며
많은 문제들이 부정적인 태도에 의해 일어난다.
이렇게 비물질적인 경로로 일어난 문젯거리들을,
물질적으로 풀으려고 하니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가 (1)주변 모든 것을 어떤 감정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개인적 현실의 상황이 달라지며,
반대로 (2)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의 감정적 분위기를 좌우한다.
즉, 피드백의 순환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거울(세상)앞에 설 때, 사람은 자신을 내부로부터 보려하지 않고
거울 속 그림자(복제물)들의 모습에만 온통 주의를 집중한다.
그 결과, 피드백 고리에서 사념의 심상 대신 그림자가 주인공 역할을 차지해 버린다.
사람은 마법에 홀린것처럼 그림자(복제물들)에만 집착하며 사로잡혀 산다.
그 결과 자신이 그토록 기피하던 것들만을 얻는 것이다.
원본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주의는 부정적 감정에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에 온종일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거울은 정확하게 더도, 덜도 아닌 그 심상 내용만을 그대로 반영해준다.
내가 뭔가를 싫어할 때, 그 싫어하는 감정에 영혼과 마음이 합치되며
그 또렷한 사념의 심상이 정확하게 거울 속에 반영되어 내 세계의 층을 채운다.
유일한 적은 내 혀도, 말도 아니고, 내 생각이다.
무언가를 싫어할 때도,
무언가를 거부할 때도,
무언가를 비난할 때도,
바로 그 감정에 영혼과 마음이 일치된 상태가 부여되며,
그 또렷한 사념의 심상은 거울 속에 정확히 반영되어
나의 세계의 층을 채워 왔던 것이다.
비관주의로 쏠리는 성격은 매력도 없다.
“보라구, 아무것도 되는게 없잖아.” -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 도취함으로써
변태적인 즐거움을 얻는 사도마조히스트와 닮았다.
이것은 병적인 습관이며 점점 발전할 수 있다.
스스로 실패로 끝날 시나리오를 주문한 후,
“봐, 내가 뭐랬어, 그대로 됐지?” 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해하는 모습 -
거울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하고 주문을 집행할 뿐이다.
거울은 메아리처럼 내 생각을 동의하며 현실로 되돌려 줄 뿐이다.
예를 들어, 외모에 관하여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면 할수록 좋아할 이유가 더 많이 생긴다.’
자신의 모습(외모)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성격은 멋지고 아름답게 성장한다.
“체중이 늘었네. 너 살좀 빼야겠다.” - 거울은 초연히 대꾸한다. “그래, 넌 뚱뚱해.”
거울은 메아리처럼 그대로 응답한다.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특별한 재주가 없지.”
거울 : “그래, 너는 무능한 사람이야.”
“내 미래와 운명은 더 나아지기 힘들겠지?”
거울 : “그래, 너는 더 이상 기대할게 없어.”
“내가 잘못했지? 그래서 죽어라 일해서 갚아야 하는 거지?”
거울 : “그래 넌 벌을 받아야 하니까 죗값을 치를 거야.”
평소의 걱정과 공포가 즉시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단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행과 재해는 평균적 가능태 흐름에서 벗어난 변칙적 사건이므로,
그 흐름에 가까운 사람은 생각으로써 그것을 끌어당기므로 반드시 일어나고 만다.
걱정과 공포는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에 주의를 고착시키는 반면에
의심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 마치 고의적인 것처럼 그런 일이 실현되는 것,
모두 실제로는 거울이 단순히 사념의 내용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뭔가를 피하려는 욕망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다 반대로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여움’에 떨며 살고 있다.
이 노여움은 그의 세계라는 전체 그림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나는 심기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통합적인 심상을 만들어 낸다.
현실이 만들어질 때 이 불편함이 지속되고 악화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이 본인의 비관적인 태도로써 스스로 자기 세계의 층을 어둡게 칠하고 있다.
4. 거울은 단지 태도의 내용에 주목할 뿐, 그 방향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바로 거울의 네 번째 법칙이다.
원치않는 일이 실현되었다.
사람은 마음 속 심상(사념)을 보려 하지 않고,
거울의 반영에만 주의를 뺏긴 채,
내부의도로 그것을 바꿔놓으려 애쓴다.
물질 현실에서는 내부의도의 틀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해결책이 아예 없다.
세상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가 현실을 조종하기는 커녕, 현실이 나를 조종하는 격이 되어버린다.
잘못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거울의 반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것만을 바라본 것이다.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거울 속 그림자 좇기를 멈춰야 한다.
내가 원하는 쪽으로 돌려놓으려고 발버둥치는 내부의도도 거부해야 한다.
3-4. 세상이 나를 마중 나온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거울에 비치는 그림자의 ‘본체’인 심상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거울을 먼저 보고 → 그 반영에 대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 태도가 취해지면 그것이 현실을 더욱 강화시켰다.
사람은 중요성의 오랏줄에 의해 거울에 묶인다.
거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바로 자신의 삶이니, 거울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거울의 반영은 그의 생각 내용과 일치하고, 그에 대한 태도(감정)는 현재의 상태를 더욱 강화시킨다.
어떤 경우든, 거울의 반영은 그의 생각 내용과 일치한다.
그 감정이 강렬할수록 거울에 더 강하게 구속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다 더 중요한 건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아할수도, 싫어할수도, “꺼져!” 라고 할만큼 미워할 수도 있지만
모두 그 대상을 붙들고 있다.
그리고, 영혼과 마음의 일치 속에서 태어난 ‘격한 감정’은
심상에 선명한 윤곽을 그려준다.
그 결과, 그 심상의 내용에 상응하는 것들이 우세하게 반영되기 시작한다.
그런 까닭에 가난한 이들은 자꾸만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진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만원버스에 몸을 싣는 지친 여인,
돈을 찾으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는 할머니,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
같은 시간에 어떤 사람은
바다, 요트, 여행, 화려한 호텔,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그들 마음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사념으로 그런 현실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 라는 각자의 생각이 현실 속에서 확증되고 있는 예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산다.
금수저, 은수저 논하기는 의미없다.
‘초기자본’이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할 수 없다.
최하층민이 상류층으로 상승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호랑이 굴속이라도 이걸 알아차려라.
모든 것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 방법은 전혀 몰라도 괜찮다. 구체적인 방법은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지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그건 무대 소품, 곧 환상이며, 원하면 쉽게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모두, 닫힌 순환고리 안을 무의식적으로 맴돌고 있던 것이다.
닫힌 순환고리 : 현실을 관찰 ▶ 태도를 표함 ▶ 거울이 태도의 내용을 현실로 고착
현실을 바라보고 그걸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 중인가?
사실이다. 내부의도로써 그림자에 영향을 미치는 건 대부분 불가능하다.
거울 안에서는 가능성이 너무도 적다.
그 대신 나는 현실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럴 때 외부의도가 작동한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거울의 반대편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사건의 가능태들이 존재한다.
거울의 다섯 번 째 법칙,
5. (외부의도를 작동시키려면) ‘그림자’로부터 ‘사념의 심상’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즉, 원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생각하라.
자신의 생각을 조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하지 않고, 피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원하고 성취하고 싶은 걸 생각하라.
순환고리를 이렇게 바꾸어 보라.
우리가 먼저 태도를 표함 ▶ 거울은 그 태도의 내용을 현실화 함. ▶ 우리는 그 현실을 본다.
거울속 그림자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시적 반응이 멎고,
그 자리에 의도적이면서 목표가 있는 심상이 반영된다.
습관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대신, 원하는 것의 심상을 생각속에서 형성시켜라.
(미로를 빠져나와라!)
그러면 세상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다가, 나를 향해 움직여오기 시작한다.
나는 모든 것을 거꾸로 돌렸다.
무익한 그림자 좇기를 중단했다.
꽉 쥐고 있던 세상을 놓아주었다. 세상이 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도록.
이는 나의 내부의도가 외부의도로 변하도록 만든 것.
나는 단지 집중하여 사념으로 원하는 심상을 만든다.
이중거울은 가능태 공간에서 그에 상응하는 섹터를 현실화시켜준다.
사람은 보이는 대로 말하는 습관(행동)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게 말하면 세상은 메아리처럼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거울은 언제나 물어보고 있었다.
‘뭘 원하는지를 명확히 말해주겠니? 제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주지 않겠니?’
부정적인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참으로 단순한 문장.
생각을 검열해서 불(不)자의 접두사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불만, 부정적인 모든 상념, 불신…
모든 생각을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거울 속에 유쾌한 것들만 채워질 것이다.
그 자리에서 즉시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라.
인내와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제 나는 주변 현실에 반응하지 않으며,
주도권을 잡고 의도적으로 세상에 나 자신의 사념체를 보낸다.
보통 사람의 기분은 상황의 좋고 나쁨에 따라 덩달아 조성된다. 나는 그 반대로 한다.
즉, 기분을 의도적으로 좋아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현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북돋아짐을 느끼지 않는가?
청각적, 시각적 슬라이드가 최고의 기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슬라이드는,
목표가 이미 달성되어서 내가 아주 기분 좋아하는 모습이다.
한동안은 내 세계의 층에서 아무런 변화의 기미도 찾아볼 수 없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어라.
오히려 여러가지 불쾌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현실과 새로운 관계를 갖는 차원으로 이동 시 일어나는 일시적 불편이다.
유혹에 빠져서 뒤돌아보지 않고 내 길만 따라 가라.
어떤 경우에도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말고 자신의 길을 견지해야 한다.
거울 속에 나의 현실이 형성될 것이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될 것이다.
원하는 걸 이미 가지고 있다는 세계감(세계에 대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
현실의 거울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걸러보기’ 하라.
좋은 것을 찾아내고, 나쁜 건 무시하는 필터로 여과하라.
예시) 거울을 보고, 내 모습에서 맘에 드는 특징을 찾아내고, 동시에 원하는 모습도 상상하라.
이 순간부터 나는 ‘날마다 더 나아진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발견하게 될 것이다.
좋은 점에 주의를 집중시켜 보고 그런 태도를 표출하라는 말이다.
놀라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습관화 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질적 실현은 관성이 작용함을 염두에 두라.
나중에는 내가 나서서 힘을 쓸 필요가 없이, 거울의 순환고리가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돌 것이다.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
믿을 필요 없이 제시된 방법을 실천해보라.
마음이 의심 속에서 뒹굴게 놓아두고, 당신은 그동안 해야 할 일을 우직하게 하라.
일반인들의 마음은 그것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외부의도의 작용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거울 기법은 너무나 간단해서 믿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가 어려운 문제를 어렵게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해 있다.
이제 정기적인 재생만이 남았다.
생각의 심상(사념체)을 물질적 현실로 고정시키려면 그것을 정기적으로 재생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목표의 슬라이드를 상영해야 하는 것이다.
거울의 반영에 묶여 감정(태도)을 표출했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태도 자체(현실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방법)를 바꿔서,
거울로부터 자유를 얻으라.
이 모든 말을 한 마디로 달리 말하자면,
생각의 방향을 조종하면, 현실을 조종할 수 있다.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아말감이다.
- 이것은 전반적인 평안과 행복의 배경을 조성하게 하며, 대부분의 경우에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소망을 이루고 싶다면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목표의 슬라이드를 재생하라.
거울의 순환고리 안에서 맴돌기를 멈추면,
세상이 나를 맞이하러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3-5. 현실 지배자의 의도
이제 내가 할 일은,
사념으로 의도적인 심상을 만들어내고,
반영이 지연되는 데엔 신경쓰지 말고 ‘걸러보기’를 하면서
새로운 현실이 발현되는 것을 찾아내는 기본적인 작업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이것이다.
소망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그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
당신은 이미 트랜서핑에 대해 알고 있고,
목표의 슬라이드를 사용할 줄 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가?
마음은 걱정하기 시작하고, 참을성이 없어지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거울 속 반영의 실현과정은 진행중이며, 이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 결과가 보이지 않는 탓에
마음에서 ‘효과가 없다’거나, ‘잘못되었다’, ‘사기다’라는 판단을 하면 어떨까? - 거울은 ‘바로 그것’을 되비쳐준다.
어린아이는 장난감을 ‘받으러’ 가고 있다.
영혼은 노래를 부르고, 마음은 만족스러운 춤을 추고 있다.
왜 행복하지 않겠는가? 장난감을 받으러 가고 있지 않은가.
트랜서핑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필연적으로 실현되게 하는 확고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눈을 가린 채로 걸으면 당연히 자신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마음은 기계와도 같아서 작업 알고리즘(일의 논리적 진행순서)이 깨지면 빨간불이 켜진다.
마음은 모든 과정을 미리 계산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며, 스스로 시나리오를 짜낸다.
마음은 고정관념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그것을 완강하게 고집하기까지 한다.
선택을 내리면(최종목표의 심상이 정해지면),
세상(거울)은 그 주문을 받아 일정한 계획에 의해 그걸 실현하려 한다.
방법은 오로지 거울만이 알고 있으며, 마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은 사건이 이상한 시나리오로 진행되는 걸 포착하면 경보를 울린다.
그 결과 세상이 움직이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어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목표의 심상도 뒤틀려버린다.
고유의 시나리오대로 스스로 움직여 성공을 향해 가고 있던 계획의 실현 또한 훼방된다.
마음은 자신의 시나리오만 붙들고 매달림으로써 목표의 실현을 방해한다.
마음이 가능성에 대해 (1)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2)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들러붙으면, 중요성이 일어난다.
그 결과 의심과 두려움으로써 세상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데,
거기에서 잉여포텐셜(역바람)이 생성되는 것이다.
욕망하고, 두려워하고, 놓아주지 않으면, 거울은 찌그러진다.
세상에게 뭔가를 요구하면 받지 못한다.
세상에게 뭔가를 부탁한다 해도 받지 못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주문하고’, 세상이 그 주문을 이행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내가 요구하고, 부탁하고, 두려워하며 의심하면,
세상도 뭔가를 요구하고 부탁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세상은 나의 태도가 완벽하게 반영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적대적이었고, 말썽 많고, 힘들고, 불편한 세상이었다면,
그 세상이 갑자기 나를 위해 즐겁고 안락하며 편안한 곳이 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허락해 주라.
이건 오로지 내 결정인 것이다.
(이런 주문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행복해할 수 있는 사치를 허락해주라.
불가능해 보이는 성공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만큼 행복해진다.
거울이 어떻게 심상을 그대로 반영해줄 수 있을지 방법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 나갈 것이다.
그저 거울 앞에서, 보고싶은 반영에 대해서만 생각해라.
(뒤돌아보면 돌이 되리라!)
원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생각하라는
‘거울의 다섯번째 법칙’을 다시 떠올리자.
최종목표가 이미 실현된 것처럼 주의를 거기에 고정시키라.
‘일시정지(pause)’ 기간이 필요하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하라.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만큼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법과 같은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 힘을 지닌 진정한 마법이다.
거울을 바라보는 것, 즉 일어난 일에 대해 나의 태도를 표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를 발견해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만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이 목표달성을 위해 가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모든 사건에 대해 눈을 활짝 뜨고 있어야 하고,
수반되는 부정적인 발현에 대해서는 눈을 단단히 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상은 장난감만 사 줄 뿐만 아니라, 회전목마, 놀이기구도 태워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줄 것이다.
세상이 스스로 움직이게 두라. (외부의도)
내가 세상을 억지로 돌려놓으려고 서둘러 대들지 말라. (내부의도)
거울을 볼 때 반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심상 자체, 즉 자신의 태도와 생각의 방향을 바꾸라.
사람은 뜻하지 않는 상황, 자신의 시나리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적대시 한다.
이 원시적인 반응에서 자유하라.
꽉 쥔 손을 풀어놓는 것이 힘의 비결이다.
많은 경우 적극적인 행동은 전혀 필요 없고,
일이 일어나는대로 유연하고 부드럽게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섯 번째 거울의 법칙,
6. 꽉 쥔 손을 풀어놓고, 세상이 가능태 흐름(최적의 궤도)에 따라 움직이도록 허용 하라.
그저 관찰자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기만 하라.
나는 감독임과 동시에, 모든 주변 움직임을 간파하며 초연하게 연기 중인 배우다.
조종하기를 포기한 내가 오히려 상황을 실질적으로 조종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 누군가의 제안을 성급히 거절하지 말라.
조언을 받는다면 그것에 심사숙고해 보라.
타인의 의견에 대해 성급히 논쟁을 벌이지 말라.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해도 그냥 놔두고 지켜 보라.
상황이 급변해도, 호들갑 떨지 말고 변화를 받아들여보라.
무엇을 하든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을 가지고 움직여 봐라.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얻기가 가장 쉬운 가능태를 고르라. 」
세상은 제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가끔씩만 필요한 방향으로 살짝 떠밀어주는 지혜로운 스승처럼 움직인다.
이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거울의 또다른 법칙을 배울 때가 되었다.
거울 속에서는 왼쪽이 오른쪽이며,
멀어지는 것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멀어진다. (너무나 당연한 현상)
즉, 좋은 것을 나쁘게 보고, 나의 행복을 불운으로 해석하는 경향에 대한 것이다.
사실 세상은 음흉한 일을 꾸미는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이 불쾌한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인 것이다.
자연은 에너지를 헛되이 소모하지 않으며, 가능태 흐름은 언제나 최소 저항의 경로를 찾아 흐른다.
그 말은 즉, 상황은 늘 행운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이 손으로 물을 건드리며 첨벙대고,
흐름을 거슬러 노를 저음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세상은 단지 현실에 대한 나의 태도를 완벽하게 반영해주고 있었을 뿐이다.
모든 사건과 상황은, 내가 모르는 (그러나 나에게 유익한) 잠재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각각의 시점에서 나의 태도를 표함으로, 추후의 사건들의 향방을 결정하고 있던 것이다.
7.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조차도,
모든 반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라. (그것이 유익하다고 선택하라.) -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된다.
거울의 일곱 번째 법칙이다.
돌아보면, 그 어떤 일도 그것이 나에게 유익한지 불리한지를 확실히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무심하지 말고, 기뻐하라.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에 따라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의도 조율의 법칙’이다.
어떤 문제를 맞딱드렸다고 해 보자. 결정권자는 알다시피 나 자신이다.
해오던 것과 달리, “모든 일이 아주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라고 선언(말)해 보라.
세상은 여기에 바로 동의해줄 것이다.
“원하는 대로 해, 내 사랑.”
온 마음을 다해 이것이 쉬운 문제라고 생각해 보라. 아주 공식처럼 되게 하라.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신비스럽고 놀랍다고 외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야….?
“아니야, 모든 것이 멋지고 훌륭하게 돌아가고 있어.” 라고 대답하라.
‘합리적인’ 사람의 눈에는 완전히 바보같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손뼉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때에, 불운으로 보이는 상황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이 때까지 ‘합리적인’ 상식의 관점을 지키면서,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반응했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삶에서 온갖 고난과 곤궁을 충분히 겪었다.
“그대가 말하는 대로야. 내 사랑.”
내가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는가?
맹목적 믿음도 아니고, 낙관주의도 아니다.
세상은 말 없는 거울이므로,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움직일 줄 알고’, 동시에 세상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놓아주면’
나는 현실 지배자가 된다.
외쳐 보자.
“나는 나의 세상과 함께 장난감을 받으러 가는 중이다.”
3-6. 거울제조공
운명은 하늘이 정해져 준다. - 그렇게 된다.
운명은 내 노력으로 바꾼다. - 흐름을 거슬러 잘못된 운명을 창조한다.
거울의 법칙에 따라 자기 생각의 방향을 조종한다. - 의도로써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해온 대로 흘러왔던 것이었다.
이중거울은 모든 것에 동의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그 거울을 사용할 줄 아는가 뿐이었다.
운명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택하는가?
혹은 소극적인 입장을 택하는가?
손으로 물을 첨벙대거나, 허우적대거나, 흐름을 거슬러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거울의 법칙을 따라 자기 생각의 방향을 조종하려는 의도가
바로 운명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운명에 영향을 주는 진정한 힘을 주며,
예언가의 충고도 의미를 잃고 만다.
거울제조공은 점성술사와 예언가를 지칭한다.
내가 그것들을 듣는 순간, 심각하게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잠재의식 속에 머물면서 미래 운명을 꾸며내는 거울 한 조각을 받은 것이다.
그것을 구매하고 들으러 가는 사람의 잘못이다.
나는 현실의 지배자로서 그깟 예언 따위는 우습게 본다.
과학자들도 거울제조공들의 연맹에 속한 부류이다.
그들은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발견하고 설명해주려는 것 같지만,
세계는 그저 세로운 모델들에 동의해 주고 있을 뿐이다.
세계의 아주 추상적인 정의까지 올라간다면 그저 끝없이 펼쳐진 이중거울일 뿐이다.
자동차의 구조와 기계장치를 잘 몰라도, 운전은 잘 할 수 있다.
트랜서핑은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려 하지 않으며,
그저 법칙 몇 가지와 현실이 조종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방법들만을 알려준다.
내가 전 세계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세계의 나의 개별적인 층은 내 손아귀에 들어 있다.
지배자인 나의 권리만 이용하면 조종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제 이중거울이 들려 있다.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지니와도 같다.
다만, 동화 속 지니와는 달리
명령하거나, 간청하거나, 동정을 구하지도 말고
자신의 의도를 선언하고 선택하기만 하라.
마법의 거울은 기꺼이 거기에 동의한다.
“그럼, 그럼. 내 사랑.”
자신의 운명을 거울제조공에게 맡기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