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서핑의 비밀> - 바딤 젤란드
0. [읽는 이들에게]
삶은 그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다".
그런 삶이 넋 놓고 꾸는 꿈과 뭐가 다른가?
그러나 거울의 환상 속에서 깨어나면 놀라운 출구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세상은 무한 크기의 이중 거울이다.
한 쪽 면은 물질세계, 다른 한 쪽 면은 비물질적인 가능태 공간의 세계이다.
거울에 홀린 사람은 물질세계(그림자)를 진짜 현실이라고 믿고 살지만,
깨어난 사람은 내가 그 꿈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제1장> 그림자와 춤추기
1. 우리는 세상과 놀기 위해서 왔다
1-1. 의도의 기원
세상의 모든 것은 따분해진다.
영혼과 마음은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놀이를 고안해 낸다.
인간들은 더욱 더 복잡한 오락거리를 고안해 낸다. 스포츠부터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다양한 직업 형태들도 본질적으로는 다름 아닌 놀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는 어떤 식으로든 놀이를 하고 있다.
따분함, 감동 결핍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의 가장 원초적 본능은,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통제하고 조종하고자 하는 욕구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의 삶의 목표와 의미는 현실 조종에 있는 것이다.
잘 살펴보라.
생명체는 무슨 일을 하든 모두가 주변 현실을 스스로 통제하려고 애쓰고 있다.
새들이 솔방울을 갖고 노는 것, 이동수단을 타고 가는 것… 공상 놀이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놀이는, 모든 일을 자신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행위로 귀결된다.
사람은 보통 한 가지 방식으로만 행동한다.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변 세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려고 애쓰는 것.
그러나 결코 효과적인 방법도, 유일한 방법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 -
뒷짐을 지고 가만히 앉아 세상이 우리의 소망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1-2. 불운의 법칙
현실 조종을 배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현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아야겠지?
사람들은 각자 자기 세계의 층을 창조중이다. (대부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러나 현실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
그 결과,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의 층을 형성시킨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만 일어나며, 심한 경우 세상이 나에게 의도적으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특히 싫어하고 꺼리는 마음이 강렬할 때,
영혼과 마음의 일치가 강력히 일어나 외부의도가 아주 풍부하게 공급되는 것이다.
만약, 균형을 깨뜨리지 않은 채
가능태의 흐름을 따라 나아가면 만사는 아무런 걸림없이 평온히 펼쳐진다.
즉, 잉여 포텐셜만이 주변 환경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잉여 포텐셜은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할 때 발생되는 걸 알고 있다. (균형력)
여기에서 진도를 하나 더 나아가자면,
중요성은 ‘비교와 대조’에 의해 강화된다.
일반적으로 ‘의존적인 관계’가 불균형을 가져오는데,
‘당신이 이걸 해 주면 나는 저걸 해 주겠다’는 식의 조건을 내세우기 시작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널 사랑한다. 나는 날 사랑한다.’ 같은 경우는
비교와 대립에 근거하지 않는 한 괜찮다.
그러나,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널 사랑한다.’, ‘타인보다 네가 더 훌륭하니까 널(날) 사랑한다.’
와 같은 경우는 양극성을 상쇄시키기 위한 균형력을 발생시키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불쾌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혼해서 원수가 되는 부부들이 그 예시이다.
‘어딜가나 또라이가 있다’는 법칙 또한 마찬가지다.
이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또라이가 아닌, 착한 사람’으로
한 쪽으로 치우쳐 인식하는 경향성이 있으며,
바로 그 비교에 의한 인식의 경향성이 균형력의 바람을 일으켜
양 극성을 충돌하여 상쇄시키기 위해 또라이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 또라이는 나에게 상대적인 평가를 부여하면서 나와 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즉, 나를 철저히 무시해버리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중요성을 부여하지도 않으며, 나를 그들의 층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그래서 고통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동주택의 시끄러운 이웃도 마찬가지다.
아니, 내가 혐오하는 모든 대상이 문제가 된다.
다른 모든 경우에도 이와 유사하게 일종의 불운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어떤 것 하나에 극성을 갖기 시작하면,
반드시 다른 극성이 거기에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이 끌려왔던 이유이다.
이제 나는 트랜서핑의 이 기본 원리만 실천하면 된다.
— 자신은 자기 자신으로, 다른 이들은 그들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놓아 두라.
세상을 모든 방향으로 그냥 풀어 놓으라. 꽉 쥔 손을 느슨하게 풀어 놓으라.
1-3. 악의를 품은 세상
세상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자.
대립하는 양측은 마침내 맞부딪쳐 싸우기 전까지는 서로를 ‘자극하려고’ 한다.
세상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가?
어떤 일이 나를 어느 순간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일은 꼭 일어나고야 만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 걱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주변 사람과 환경들도 나를 짜증나게 하는 짓거리를 벌인다. 그 현상은 점점 더 악화된다.
바로 여기에서 ‘펜듈럼’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뭔가를 꾸며내는 의도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양극성으로 인한 에너지장의 불균형(왜곡)을 감지하고,
거기에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에너지를 흡수한다.
끔찍한 사실은, 에너지를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에너지를 더 발생시키도록 유인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동기에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꼭두각시에 매달린 인형처럼 조종당한다.
지금까지의 현상을 정리해보면,
1 - 균형력이 서로 대립해 있는 것들을 충돌하게끔 만들어 놓으면,
2 - 펜듈럼이 등장하여 일어난 갈등의 에너지를 확장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벌인다는 것이다.
개인도, 종교도, 심지어 국가도 종종 정상적인 정신의 행동 범위를 벗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갈등 상황에서의 인간의 동기는 펜듈럼 지배력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을 어디다 놓고 있었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전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펜듈럼은 잠재의식에도 침투 가능하며,
펜듈럼에게 주의가 사로잡히면 잠은 더욱 더 깊어진다.
자기 의지 없이 남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 - 펜듈럼의 좀비가 되는 것.
악의 보편적 원천도 펜듈럼이다.
그 무엇과의 어떤 대립에서도 갈등에너지를 키우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 것.
펜듈럼에서 탈출해 살 수는 없으며,
꼭두각시가 되지 않은 채로,
펜듈럼의 조직을 이용하며 살아야 한다.
그 방법은 바로, 깨어나서 알아차리는 것이다.
무엇을? 펜듈럼이 어떤 식으로 나를 조작하려 하는지를.
펜듈럼의 영향력은 내가 깨어있는 정도에 반비례한다.
웬만하면(개인적으로 아주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펜듈럼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
군중 속에 있다면 객석으로 내려와라.
그리고 속삭여 보라.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나는 지금 모든 상황을 명료하게 알아차리고 있나?
이것들은 왜 필요하지?’
깨어남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지금 나는 잠들어 있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이것을 이렇게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만약 상황을 명료히 알아차리고 있다면, 만사는 순조롭게 풀려나갈 것이다.
내 신경이 곤두서 있는 동안은 광대가 계속 뛰어다닐 것이다.
내가 뭔가에 짜증을 낼 때 일은 더 복잡하게 꼬일 것이다.
무심한 경지로 가라.
감정을 죽이고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주의를 완전히 딴 곳으로 돌려라.
이웃이 음악을 크게 틀었는가?
나 자신의 음악을 한번 들어보자.
너무 크게는 말고, 이웃의 음악을 덮을 정도로만.
그 외 다른 방법에도 집중해보라.
주의의 스위치를 전환해야 한다.
눈을 뜬 채로 살면, 뭔가가 악의를 품고 달려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1-4. 펜듈럼의 규칙
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성이라는 주제는 대단히 많은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펜듈럼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불완전하고 문제가 있다는 관념을 주입해왔다.
펜듈럼은 SNS, 대중매체를 통해
섹스와 관련해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만 골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라.
정상인들은 축구장에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봐야만 볼 수 있는 비율이다.
대체 왜 그 자연의 단순한 기능(성)을 둘러싸고
이렇게나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플래시몹이나 몰래카메라 등에서 등장하는 군중심리 때문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일한 사념방사로 공명현상을 창조하고,
펜듈럼은 그 공명 에너지를 포식하여 증폭시키는 것이다.
‘규칙’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방사하도록 한다.
펜듈럼의 첫 번째 법칙은 이것이다. “내가 하는 대로 따라해!”
펜듈럼은 ‘정상적이어 보이는’ 표준을 설정한다.
즉, 성공의 모조품만을 제안한다.
타인의 성공은 그대로 따라할 만한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진짜 성공은 용감히 규칙을 깨뜨리고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다른 이의 발뒤꿈치만 좇는 사람은, 영원히 지는 해를 붙잡으려고 발버둥치는 운명에 갇힌다.
환상은 때론 미지의 현실보다 더 달콤하고 편리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럴 때 영혼은, 세워진 표준에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면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실패 앞에서 두려움이 나를 압박한다.
나는 적의로 가득차 거부와 분노의 벽을 치든가,
아니면 표준을 향한 추구를 계속한다.
조건의 상자속으로 영혼을 구겨 넣으려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할수록 불만족만 남을 뿐, 아무런 소득도 없다.
계속해서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표준모델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불만족과 좌절감의 에너지만 방사하게 된다.
타인의 성공을 모델로 내세우는 파괴적 펜듈럼이 그 에너지를 먹어치워 버린다.
미로에서 빠져나갈 문은 존재한다.
그것은 펜듈럼의 규칙(내가 하는대로 따라해!)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정말 숨 막힐 듯 황홀하고 놀라운 내면의 자유를 얻는다.
(사실 규칙은 펜듈럼이 만든게 아니며, 규칙이 있는 곳에 펜듈럼이 작용할 뿐.)
사람들에게는 강요된 대열이 현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드시 대열 안에 서야 한다는 규칙이 환상이고
대열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현실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추방된 불량배가 되거나 스타가 된다.
스타는 펜듈럼의 규칙을 깨트릴 완벽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믿었고,
불량배는 그것을 의심했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스타는 스스로 태어나고, 펜듈럼은 그에게 조용히 조명을 비춘다.
싸우지 않고 대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 비법의 전부다.
내가 싸우기만 거부한다면 그들은 아무 짓도 할 수 없다.
매트릭스 변절자처럼 환상이 더 마음에 든다면 그것을 가져라.
1-5. 조직을 위하여
펜듈럼은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더불어 펜듈럼은 조직을 보존하고 더욱 강화하려고도 한다.
펜듈럼은 에너지-정보체로서 살아있는 자연의 일부다.
자연도 일정한 조직이 출현하고, 형태를 이루며 발전해 왔듯이
펜듈럼도 마찬가지인데,
조직이 얼마나 안정된 형태를 갖추었느냐에 따라 그 존재가 결정되므로,
조직의 안정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모든 일을 한다.
이게 바로 펜듈럼의 두 번째 법칙이다.
물고기 떼(치어 떼), 개미 떼, 새들의 무리.
그들을 놀래켜 보라.
그들은 동시성을 띄며 같은 쪽으로 도망친다.
옆 친구의 얼굴을 보고 동조(반응)해서 따라간다고?
그 반응시간의 지연은 확인되지 않으며,
떼의 규모가 커진다 해도 동시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개미들은 어떻게 집단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일까?
대체 그 정보교환 방식은 무엇일까?
페로몬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원시적이며,
동시성을 설명하지도 못한다. (개미집에서의 역할 분배를 생각해 봐라.)
모든 외부 요인은 펜듈럼이며,
조직체의 요소들은 각각의 의식 수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지능 수준에 따라 자신의 동기와 활동에 대한 인식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관심사에 따라 집단으로 연합하는 것,
공통의 언어, 문명사회의 발생, 도시의 발생.
모두 펜듈럼의 작용이다.
인간으로 다시 돌아와,
인간이 식물, 동물보다 더 좀더 깨어난 상태에 있지만,
의식적 자각의 측면에서는 동물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한게 사실이다.
사람이 조직체의 한 요소가 되면, 그는 펜듈럼의 규칙을 따라야 하며
잠들어 있게 된다.
그에게는 개인적 관심사와 조직체의 조건 사이에 불가피한 대립이 발생하지만,
이 사실을 자각 조차 하지 못하며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가 없게 되는게 가장 나쁜 현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펜듈럼의 지지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펜듈럼의 법칙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요새 대화 중에 욕을 섞는 것이 트렌드가 되는 것,
루이 4세 시절 씻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 등
이처럼 터무니없는 일도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게
바로 펜듈럼의 법칙이다.
무리 속(모임)에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특정 행동(이상한 짓)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자신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의 의식이 꼭두각시 처럼 매달려 있던 펜듈럼의 영향이다.
조직의 규칙에 복종하면 자신의 개성을 잃는다는 점은 꼭 명심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똑같이 한다면 편리와 안전은 얻지만,
자신의 모든 천재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신의 선물인 영혼의 특별함은 잃어버린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조직 속에 머물면서도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무대를 떠나지 않은 채로,
관객의 눈으로 이 삶이라는 연극을 바라보면 된다.
단, 사람들과 대치하고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은 자기 자신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들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놓아 두라.’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조용히 알아차려라.
그럼 이미 절반은 이룬 것이다.
왜냐, 불안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게임의 규칙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의기소침에서 벗어나 펜듈럼의 규칙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외부 의식처가 아닌, 자기 자신 안에서 의지처를 얻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의 입장을 확고히 지켜라. 그 방법은,
첫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변명하기를 그치며, 해명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둘째, 나의 중요성을 내보이려는 짓을 멈추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펜듈럼에서 완전히 벗어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꼭두각시가 되지는 말자는 뜻이다.
때맞춰, 수시로, 잠에서 깨어나라.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자.
1-6. 인디고 아이들
‘인디고 아이들’ 현상
- 투시능력자 낸시 앤 태프가 사용하기 시작.(1983, 색깔을 통한 삶의 이해)
- 특정 아이들에 인디고(남색) 오라를 지니고 있으며, 과잉행동장애와 주의력 결핍을 지니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는 의식발달과 세상을 꿰뚫는 투명한 눈이 열려 있음.
- 기존의 기준과 규칙을 수용하지 않음.
-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려 함.
- ‘의지의 노예화’에 반작용하며, 독립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음.
최근 10년 간 정보통신망의 발달은, 펜듈럼의 강력한 망을 형성케 했다.
과학기술의 진보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인 것이 아니지만,
펜듈럼의 발생과 존재를 위한 터전을 만들어주는 정보적 요소들이 위협적인 것이다.
전세계에 펼쳐진 정보망을 만들어놓기만 하면,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그물코를 찾아가게 되어 있다.
조직은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슬은 특정한 생각과 행동의 고정으로 인간들을 장악 중이다.
사람은 이미 정해진 ‘환경설정’에 따라 강요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의지(의도)의 노예화가 발생한다.
나는 자유라고 착각해왔지만,
사람이 오직 조직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만을 원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 온 것이다.
사람은 외부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의 초점이 맞춰질 때 의식이 각성된다.
(사람이 밖으로부터 강요되는 걱정에 완전히 매몰되면 그는 온통 무의식의 게임에 빠지게 된다.)
아이들이 갖는 매력의 유일한 비밀은 영혼과 마음의 조화로운 일치에 있다.
그들은 애초부터 창조자의 힘을 가졌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단순히 펜듈럼이 영혼과 마음의 일치를 빼앗아 버리는 것 뿐이다.
자유, 의식, 직관, 개성…
이것들은 조직체에게는 죽음과도 같다.
그들은 우리의 의지를 예속시키려는 시도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 싸움에서 조직은 아직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않았다.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힘을 일부분이나마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트랜서핑으로…
우리는 하나다.
그대 또한 인디고가 아닌가?
1-7. 에너지의 지배자
인간도, 동식물도, 모든 개체들도 마찬가지다.
진화의 원동력은 바로 목표도달의 과정에서 온다.
야생동물의 풍요롭고 자유로웠던 삶과,
농장(조직체)에 속해있는 동물의 삶을 비교해 보자.
가축들은 주인으로부터 거주지와 먹이, 안전을 보장받았지만
대신 주인에게 자신의 목적을 내주어야 한다.
어떻게, 왜, 얼마나 살지를 주인이 결정한다.
인간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조직의 노예가 된 인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를 멈춰버린다.
결국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결국 이런 저런 상품의 생산, 판매, 구매로 귀결 된다.
이것은 재화의 생산과 거래만이 전부가 아니다. 에너지를 사고 파는 것(거래)이다.
작은 몫은 인간이, 큰 몫은 펜듈럼이 가져간다.
(모든 에너지 시장의 꼭대기, 주인은 펜듈럼이다.)
이 세상 모든 에너지 교환은 펜듈럼에 의해 조종된다.
‘채무’를 갖지 않더라도 문명의 상품을 이용하는 모든 경우에 사람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펜듈럼에게 자기 에너지 일부를 내주게 되어 있다.
펜듈럼이 남기고 간 이 작은 몫은 ‘채무’가 되어 반드시 되갚아야만 한다. (에너지를 대출받는 것)
알코올 사고 파는 중독도 마찬가지고,
펜듈럼이 가장 에너지를 많이 ‘짜내는’ 기회는 마약중독이다.
담배, 껌, 커피 등 모든 중독도 마찬가지다.
강렬하고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경험들은 모두 해로운 것이다.
그것들 역시 늦든 빠르든 파괴적 속성을 가진 펜듈럼이 손을 내미는, 해로운 결말에 이른다.
에너지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만족이든, 안락이든, 어떤 종류든)
에너지를 비축하는 대신 바라는 뭔가를 얻으면 갚아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주의가 펜듈럼의 올가미에 낚아져 있는 한,
‘채무자’의 모든 생각은 주기적으로 일정량의 에너지를 대출받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낚시바늘에서 빠져나오길 원한다면,
주의의 스위치를 돌리고 무엇이든 다른 일에 주의를 몰두해야 한다.
의지 강화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시나리오와 무대장치를 바꾸는 방법 한 가지 뿐이다.
나는 의존관계에 빠지지 않고도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수 있다.
(진정한 트랜서퍼, 고기만 받아먹고 낚아채어 가는 숲 속 캠핑장의 고양이처럼…)
사실 펜듈럼이 에너지를 빼앗아간다는 것은 그다지 무서운 일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조직이 나 자신의 길을 완전히 제거해버린다는 것이 치명적인 것이다.
현대인이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해로운 상품을 최소한으로 두고, 자연 친화적이 되거나 자연식품을 먹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작가가 만났던 진정한 트랜서퍼, 캠핑장의 고양이를 언제나 기억하라…
의존관계에 빠지지 않고도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라.
단지 잠에서 깨어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명료히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1-8. 의도의 선언
어찌하면 펜듈럼으로부터 이익을 얻어낼 수 있을까?
나는 펜듈럼을 길들이거나, 제어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만,
나의 이익을 위해 펜듈럼의 특성을 이용할 수 있다.
(모든 꿈은 결국에는 펜듈럼의 도움으로 실현되니까…)
술자리에서 축배를 드는 관습은 뭘 의미할까?
술을 마시는 행위는 에너지 신용대출을 뜻하며,
그 주인인 펜듈럼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에너지의 증폭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를 위하여!” 하고 외칠 때
의도에너지가 증폭되고,
그에 상응하는 특성을 지닌 인생트랙으로 옮겨 간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의 방향을 결정하며 건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축배는 의도의 선언인 것이다.
- 의도의 선언 : 술자리 건배의 예시를 소개하며, ‘앞으로 그렇게 하자!’ 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어!’ , ‘우린 건강해, 우리가 이겼어! 우리는 운이 좋아!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있어! 성공은 항상 우리 편이야!’ 등. 의도의 선언은 트랜서핑 효과를 눈에 띄게 높여준다. (미래에 대한 진술을 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단, 이런 술의 도움으로 바라는 것을 쉽게 현실화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빚을 지는 행위이며,
채무가 커질 수록 사람은
자기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가능태 공간으로 옮겨진다.)
일반적으로 펜듈럼에게 빚을 지는 것은 이롭지 않지만,
펜듈럼에게 갈고리를 걸 때는 오로지 좋은 것만을 생각하라.
트랜서핑이란 펜듈럼도, 언제든 트랜서핑에 대한 정보를 접할 때는,
트랜서핑이 나의 목표달성을 도와준다는 것을 상기하라.
어떠한 나쁜 생각도 하지 말기.
나의 삶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펜듈럼(예 : 텔레비전 쇼, 시리즈)에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라.
관찰하면서 어떻게든 내가 준비해놓은 목표의 슬라이드,
즉 갖고 싶은 것의 그림을 계속 그리라.
(예컨대 TV에서 멋진차가 나온다면,
나도 그와 비슷한 차를 가질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되는 것)
빚을 얻는 순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나쁜 생각 금물.
잠시 쉬는 시간이라도 성공은 이미 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느끼라.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도, 잡념의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지만 말고, 의도를 선언해라.
“모든 일은 훌륭히 진행되고 있다.
나는 자신의 의도로써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다.”
뭔가를 먹을 때도. ‘잘 먹어, 내 사랑. 더욱 건강해져.’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양육하면 믿기지 않을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언들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질병이 사라지는 일도 일어난다.
예컨대 시합, 게임과 같은 현장에서도 무조건적이고 단호한, 갖겠다는 결정만 남겨두면,
성공의 확률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겼으면 좋겠어.”
“지면 어떡해?”
“난 꼭 이겨야 돼…”
“이번엔 내게 운이 따를거야…”
모두 다 틀렸다.(부적합하다.)
희망, 어떻게 승리할지에 대한 고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성공에 대한 기대
이 모든 것 조차 다 버려야 한다.
“나는 승리자다” - 아무런 조건적인 원인도 없이, 감탄 부호조차 붙지 않은 하나의 선언.
모든 판단, 감정, 기대조차도 버린. - 상태에 도달한다면 성공확률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단, 영원히 계속되기는 힘들 수 있다.
인간이기에 중요성의 수준을 완벽히 낮게 유지하는 데 실수할 수 있기 때문.
빚지고 이자 지불하기를 피하는 방법은 한 가지인데, 제 때에 게임에서 빠져나오는 것.
펜듈럼 주파수로 방사되는 사념을 완전히 끄는 것. =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 다른 데로 주의를 전환하고, 게임에 대한 생각은 아예 떠올리지 조차 않는 것. (함께 흔들리기를 멈추는 것)
그리고 다음 새로운 게임에 또 다시 참가하라.
사실, 펜듈럼과의 게임은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뭐하다.
그저 함께 추는 춤에 불과할 것이고, 이기기도 불가능하다.
다만, 그 위험한 게임을 거부하든지,
아니면 펜듈럼의 총아가 되는 전략을 짜든지 해야 한다.
그 전략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펜듈럼을 이기려 노력하며 그림자를 좇는다. (내부의도)
이 때, 나는 그 행위를 멈추고, 자주적인 행위를 시작한다.
내가 펜듈럼을 좇는게 아니라, 펜듈럼이 나를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나는 내부의도를 거부하고,
게임의 주인, 그림자와의 춤을 리드하는 지배자가 된다.
나의 그 게임을 주도하라.
내 게임은 나(자신) 생각대로 나만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내게 이 특권을 갖도록 허락해 주어라.
단, 여기서 스타는 스스로 탄생시켰으나
이 스타를 빛나게 하는 것은 펜듈럼이다.
펜듈럼의 간택이 없이는 아무리 걸작이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예시)
비틀즈와 아바 그룹을 보자.
먼저, 이들은 디스코와 록을 최초로 창시한 그룹이 아니었다.
그들이 했던 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1) 비틀즈의 초창기는 연속적인 실패와 고난의 시기였다.
활동을 계속하며 소수이지만 헌신적인 숭배자들도 있었다.
그 때에도 그들은 음반 회사나 줄기차게 찾아다녔다.
결국 1963년 1집은 예상외로 히트곡 1위를 차지했고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이 앨범 후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대폭발 전의 고요함)
반년 후 이들은 영국, 그리고 전세계를 사로잡았다.
전 세계 각국에서 집단적 정신병이 나타났다.
2) 아바(4인조)의 역사도 유사한 것이,
1972년 콘테스트 선발전 조차 통과하지 못했으나,
2년 뒤 큰 격차로 선발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짧은 정적이 다가왔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아바 광기’ 현상이 나타났다.
위 사례의 공통점은
인기는 파상(물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 되는)의 궤적을 따라 발달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무명의 세월이 계속되고 마니아 그룹을 형성했음. - 예상밖의 부상(떠오름)이 따라오고 그 후에 마치 파도가 힘을 모으기 위해 해변에서 부서지듯 ‘정적’의 기간이 도래함. - 마침내 거대한 성공의 강력한 파도가 갑자기 나타남.)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는,
나중에 굉장히 히트하는 창작물은,
무명의 첫 시기에는 사람들의 평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인을 설명하자면?
각 시대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 뉘앙스, 사운드, 다른 말로 카리스마가 있는데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도에 의해 끌려오기 때문이다.
펜듈럼은 이 집합적인 의도를 단단하게 굳히는 역할을 한다.
(1). 처음에는 마니아 그룹이 형성 되고 ‘맘에 든다’는 사념 주파수를 방사한다.
(2). 펜듈럼은 이 숭배자들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통일하고 진동의 리듬을 동조시킨다.
(3). 이 집단적 의도가 물질적 실현으로 방향을 맞추고(‘모두가 이것을 좋아한다’라는 특정 섹터)
(4). 마니아가 많아질수록 펜듈럼의 힘을 모으며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사조의 발생 메커니즘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때에야
자신의 기회를 실현할 수 있고,
모방할 수 없는 나만의 개성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펜듈럼은 독특한 개성을 참아내지 못하고 나를 스타로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림자를 좇는 짓을 그만두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면,
펜듈럼이 나를 따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나의 영혼은 독특하므로,
나는 유행의 창시자가 될 수 있으며,
가능태 공간 속에는 나를 위한 섹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나를 기다린다.
나의 의도를 선언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