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게 핀 꽃밭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한 폭의 유채화같은 하늘은 나를 집어삼킬 듯 내려다보고 있었으나 나는 그 아찔한 푸른색이 좋아 어쩔 줄 몰랐다. 잠시 뒤 나는 준비해 온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내가 07년부터 모아왔던 편지들이 수북히 들어 있다. 이름 모를 애태움으로 수없이 주고받았던 편지들. 내 눈물으로 잉크가 번져 잘 알아볼 수 없던 편지도 있었고, 수줍게 그러나 당돌하게 내 이름만을 세 번, 네 번 연이어 외치던 연애 편지도 있었다. 모두가 아름다우며 그립다.
추억의 소용돌이 속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빨려들어가는 동안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나는 그 때의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이지, 지금의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번을 힘주어 되뇌이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오늘이었다. 개중 몇은 지금이라도 만나 회포를 풀고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 존재였다. 특히나 약 예닐곱 편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녀는 단언컨대 더욱 그랬다.
나의 단편적인 시각으로 그녀를 확인하자면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고 안락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아니, 꽤나 바쁠 것이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그녀는 아이 셋을 출산했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수많은 자극과 주의 속에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언제나, 늘, 꼭 있었던 짙은 회색빛의 우울감은? 과연 지금 눈 녹듯이 바래지고 사라졌을까? 그녀가 편지에서 고했듯 자신도 모아두었던 나의 편지들과 쪽지들. 그것들을 펼쳐볼 때 그녀는 담담할 수 있을까? 그녀는 어느날 밤 창가에 앉아 나와 같이 나뭇가지를 보며 우수에 찬 미소를 보내고, 그 시절 조각처럼 작았지만 함께 빛났던 우리의 꿈들이 손을 잡고 걸어 들어오는 경험을 하고 있을까?
나의 불찰으로 인한 시덥쟎은 거부와 말썽만을 피우던 날들. 이제는 십 년도 더 넘은. 하지만 너는 알고 있지 않을까.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바로 그 날, 서울 한복판에서의 우리는 영혼이 서로에게서 흘러나오고 들어갔다. 새벽이 다 가도록 피었던 이야기꽃 사이에서는 웃음과 눈물이 파도처럼 우리를 적셨고 그 누구도 우리를 감싸고 있던 보자기를 걷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후로 그와 같은 경험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녀는 나와 다른 결정을 내렸고 숨었지만, 그리고 끝내 내게 생채기를 낼 만큼 할퀴고 떠나갔지만 나는 그녀가 밉지는 않다.
그 시절의 그 사람은 그런 결정을 내렸지만 결국 나처럼 세월이 흘러 차분해지고 서로가 다른 사람을 만나 둥지를 트는 과정을 거치며 그녀는 분명 현명해졌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그녀를 두 해 동안 지켜보며 일곱 차례에 걸친 마음을 주고 받고 단 하루의 밤을 보내며 그녀의 진실된 영혼을 마주했던 나였기에 할 수 있는 정당한 확신이다. 영혼을 마주하는 경험은 절대 한 사람만의 착각으로 성립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두 사람이 동시에 느낀다. 그것은 기적이며 하늘이 내릴 수 있는 축복 중 가장 값비싼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
아리고 쓰라린 생채기를 더듬으며 갉아먹어야만 좋은 시와 음악이 탄생하는 것일까? 나는 간혹 더는 하지 못한다며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한 가지 생각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어느 날 반드시, 분명히 그대들 귓가에 방문하고 싶다고. 특히 오늘 들판에서 가장 오래 나를 연기에 감싸이게 했던 그녀 귓가에는 더욱 가닿고 싶다고. 그렇다면 나는 다음 날이든 언제든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그 수많은 추억이 칠해진 한 폭의 그림을 음악 한 곡과 바꾸고 싶다고. 우리에게 그날 밤 영혼을 주고 받도록 허락하신 신이라면, 그 이야기의 결말 또한 수놓아 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 일곱 번 째에서 더 이상 주고받지 못했던 너와의 편지를 뒤로 하고 나는 기어이 여덟번 째 마지막 편지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