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t to the Paradise

 

방금 내가 앉은 카페 창가 앞으로 멀끔한 색의 벤츠 e220d 한 대가 꽁무니를 한껏 치켜들고 비상깜빡이를 킨 채로 주차를 했다. 

순간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하나의 습관적 메커니즘을 거쳐 다음과 같이 활성화된다.

'부럽다.', '나는 저런 차를 타기엔 아직 돈이 부족하다.', '이 차는 내 것이 아니야. 아마 앞으로도.', '잘 돼봐야 인생 말년쯤에 한 대 사서 탈 수도 있겠지.'

이와 같은 사고과정은 마치 1초를 여러 소단위로 쪼개어도 남을만큼 짧은 촌각 속에 파바박 지나간다.

 

⌈사념(생각)은 에너지 그 자체로, 그것은 일정한 세기에 거쳐 동일하게 작용했을 시 물질화(고착화)된다.⌋

 

믿기 싫으면 안 믿고 말아도 되는 마법 법령서 같은 문장 하나를 알게 된지도 어언 2년이 되어간다. 

물론 대충의 이러한 의미를 가진 말들은 세상에 아주 많고, 나는 어렸을 적부터 비슷한 의미의 다른 문장들로 넘겨들어왔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내 귀에 들려오고 내가 그것을 동의하게 되었을 때까지의 시간이 2년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장을 알게 되고, 설령 동의했을지라도 그 사실을 내 삶에 꾸준히 적용시킨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것은 우리들이 겪는 감정의 파도나, 삶에서 깜빡이 없이 치고드는 여러 문제의 파도 속에서 동일한 체력을 유지해야하는 컨트롤의 문제이다.

 

나는 나에게서 죄책감을 일으킬만한 어떤 고질적인 이유도 찾고 싶지 않다.

해이해져버린 마음가짐이나 정신상태의 탓을 온전히 나 자신에게 돌릴 마음도 없다. 

나와 같은 상황에 그 누구를 갖다 놓았어도 처음 그대로의 열정을 유지했을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마음으로부터의 미약한 시작을 다시 하고자 나의 생각을 정리할 목적으로 그간 소회의 글을 적는다.

내게는 오로지 다시 시작함이 중요하다.

 

그저 영혼을 빼앗겨버린 사람들 아래에서, 나조차 그들과 동일한 하나의 판박이가 되어

따지자면 나의 삶에 큰 상관도 없는 프로젝트(목표)에 내 시간과 건강을 비롯한 삶을 갈아넣으며

여생의 대부분을 소모하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쳤던 대기업을 보란듯이 퇴사한 이후에

나는 작은 사업체 하나를 일으켰다.

2년도 채 안 되어 소득세 하나로 천여 만원을 한 번에 내야 했던 경험을 했다.

지금도 국민,건강보험료로 달에 백여 만원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저물어가는 나의 사업을 보고 있다.

나도 짧은 기간이나마 성공한 사업가들의 세계에서 보고 들은 것이 없진 않다.

그것들 중 한 가지는 마치 진리처럼 그들 사이에서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법칙과도 같은 문구이다.

"성공한 사업가는 반드시 몇 번의 파산(실패)을 거친다."

 

내 삶에조차 이러한 법칙을 무의식 중 받아들였다는 사실과 이러한 일이 결국 나에게도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이 작금의 현실이 씁쓸하다가도,

애초에 그러한 말들을 과도하게 들어 단단히 박혀있어서인지, 심각한 재정 수준의 상황에도 그저 다음 수확을 위한 '땅 고르기' 정도로 느껴지는 지금의 심리 상태에 대한 놀라움도 함께 있다.

 

내게 어떠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잔고와 예정된 지출량이 심각하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나 외에 두 명이다.

어려운 일들은 떼로 온다고 했던가. 둘러싼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어그러지고 있다. 

엉덩이를 몽둥이로 세게 맞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맞으면 끝날 줄 알았건만, 다음 선생들이 끝없이 등장하며 한 대씩 때리는 기분이다.

 

그런데 나는 평안을 찾으려 한다. 아니,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미 평안한 느낌을 얻었다.

나의 정신만큼은 평화로운 상태이다.

 

내가 나의 현실을 가감없이 이 곳 일기장에 적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내가 진정 미래에 다가섰을 때 나의 성공과 실패를 한 눈에 조망하고 싶다. 

산등성이의 끝에서 메아리가 울려퍼지도록 외치며 성공을 만끽한 그 날,

이윽고 그것이 수많은 봉우리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시간,

어둡고 추운 골짜기 한 복판에 다다랐을 때 느꼈던 기분,

그리고 그 때에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나는 그 때의 시공간에서 무엇을 택했는가.

불평, 불만을 택했는가?

좌절과 멸시, 격노를 가득 품은 우울감을 택했는가.

그것을 거부했는가?

아니면 조용히 흐르도록 놓아주었는가.

특별한 반응 없이 중요성을 낮춘 채 지켜보았는가.

 

나는 작년 여름 즈음, 내가 달에 거두어보지 못한 수익을 처음 경험하고는, 그것이 당분간 이어질 것까지 알게 되었을 때,

와인잔을 챙기러 일어났다가 다시 앉아 짙은 쾌감을 재차 스며들듯이 느끼던 그 날의 느낌을 일기로 적었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이 온 지금, 밖은 영하 10도에 육박하고, 나와 가족의 얼어붙은 자금줄을 보며 다시 일기를 적는다.

 

세상은 마치 녹음기처럼 준비된 듯이 말한다. 마치 내가 넘어지길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여기서의 세상이란 나를 둘러싼 제한되고 특수한 모든 사람과 사건, 컨텐츠들을 이루는 말이다.

당장 겨울을 대비하라. 치열하게 싸우고 절박한 심정으로 뛰어 들어라.

영혼의 숨통 따위는 집어 치우고, 남 밑으로 들어가 얼른 코를 박고 기는 심정으로 노동하라.

벌써 늦었다. 닥치는 대로 달려라.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돈을 위해 바쳤던 그 날로 돌아가라.

 

나의 대답은 "글쎄..."

 

나의 사고가 마무리되고 나서, 나는 적당히 그러한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

나는 모든 문의 가능성을 열여 둔 사람이다.

그러나 무언가에 쫓기듯 어떠한 선택을 할 생각은 없다.

나는 펜듈럼을 알고 있고,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장애물들에 대해 중요성이 꽤나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명료하게 이 상황을 좀 더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겠다.

뭇 어느 이들이 몸에 힘을주고 정신의 에너지를 쥐어 짜내며 긴장하며 하는 치열한 일의 양과 질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저 흐름에 귀를 기울이고 머리를 자주 비우며, 깨어있는 가벼운 정신으로 각각의 선택을 하듯이 일을 하겠다.

소원하고 열망하고 사납게 간청하지도 않을 것이며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가지겠고, 그것을 선택(pick)하고 고르겠다. 

 

나는 혹 나의 사업이 말소되더라도 그 마지막 날까지 여러 통로들을 한 번씩 두드려 볼 계획이다.

그것은 마치 안녕과도 같은 작별인사와도 같다. 

내게 흘러들어온 정보,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한 그 여러 문들을 그냥 두고 작별을 고하기엔 많은 후회와 회한이 남지 않겠는가.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지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