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는 나의 생일이다.
어릴 적에는 생일이 그렇게 특별할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프레임의 한 장면은, 교내 매점에서 사온 온갖 과자 등의 간식들로 뒤덮여 있던 고교시절 나의 책상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남녀공학이었으나 남녀 분반이었기 때문에 여자반에서 오는 선물들에 이름모를 설렘이 가득했었다.
이십대가 되어서도 나의 생일은 특별했다.
그 날이면 메신저에도 나의 생일을 떠들썩하게 치장해 놓고 축하메세지와 선물을 기다렸다.
그 날의 아침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탓에 공기도 달랐고, 주변 색채도 환희로 가득했다.
생일이 되면 연락이 없던 오랜 친구의 메세지가 그렇게 달콤하고 반가웠다.
특히 군대에 있던 시절 그녀로부터의 연락은 더욱 그랬다.
나는 고교시절 그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8년간 잊지 못하고 지내는 중이었는데, 생일에 페이스북 메세지를 통하여 연락이 왔다.
나는 지금도 그 연락의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고백한 적도 없었고, 소문 등을 통하여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렇게 뜬금없이 연락을 했는지에 대해서 쉬이 종잡을 수 없다.
그저 메신저를 하다가 생일인 내가 보여 아무 생각없이 메세지를 보냈던 것이었을 수도.
그러나 그녀는 내게 먼저 식사 제안을 했다.
휴가 나오면 맛있는거 사줄게~.
먹고 싶은게 모야?
나는 야간에 몰래 켠 공용컴퓨터를 서둘러 끄고 비가오는 3층 정원으로 향했다.
당시 나는 경찰서에서 군복무중이었는데, 3층 구석에는 토끼들이 여럿 살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애꿎은 담배를 연달아 피운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내 옆에 와 가만히 있는 토끼의 등만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비를 가만히 맞는 토끼의 눈망울은 어쩌면 그녀보다도 예뻤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그 당시 스물 다섯이 되며 여러 번의 소개팅이나 만남의 자리에서 이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대답했다.
조용한 눈망울.
눈망울이 조용한 사람들이 있어요. 가만히 지켜보는 그 찰나의 눈망울이 미친듯이 아름다울 때가 있는데...
나는 줄곧 이상하고 애매한 답변이라며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 나도 "예쁜 여자요." 라고 대답할 수 있다.
"다리가 예쁜 여자요." "키는 165 이상이요." "피부가 하얀..."
그치만 그것들은 나에게 하나의 명함도 되지 못하는 걸 어쩌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비가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정호승의 시 한구절 만이 계속 떠올랐다.
당시 토끼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쪼그려 앉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시야는 어지럽고 마음은 알 수 없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요동쳤다.
그 시간 나를 위로해준 것들은 등을 토닥이던 빗방울들, 그리고 담배 세 까치와 내곁에 가만히 다가와준 토끼 뿐이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지나갔다.
담배는 더 이상 피우지 않고, 토끼들도 모두 죽었다.
이처럼 생일이라는 기억상자 속에 나는 지울 수 없는 몇 가지의 추억으로 그린 그림들과 여러 그리운 이들의 반가운 인사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다가오는 생일 만큼은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인식되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일까?
그래도 1년에 단 한번 뿐인 날, 인생으로 따져도 몇 번 오지 않을 날인데.
나는 유난을 떤다 생각하면서도 모든 메신저에 생일을 알리는 기능들을 굳이 찾아 꺼 두었다.
얼마전 아내가 생일 선물을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이 조용히 지나가주는 것이 최고의 생일선물일 것이라 말했다.
가족과 처갓댁에서도 나를 미리 찾았지만 핑계를 대며 가지 않을 것을 말씀드렸다.
이것은 그리움이나 축하받고 싶은 마음의 역설적 반응일까?
아니면, 너무나 강렬한 에피소드가 있어 다른 것들이 시시해진 탓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