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 전 어느날 밤, 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쓰러져 119 구급대에 의해 응급실로 실려 갔다.

 

심박수와 혈압 모두 200이 넘었고, 배가 뒤틀려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며 상상을 초월한 명치 통증과 두통으로 모든 광경과 소리는 차츰 희미해져 갔다. 구급대원이 끈질기게 나를 흔들며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기어코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굵고 차가운 주삿바늘들이 손등, 손목과 팔 등에 혈관이 보이는 곳들을 뚫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피부와 몸 자체도 두꺼운 편이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내 몸에 구멍만 여러 개 내고는 연신 사과하기 바빴다. 너덜해진 양쪽 팔이 축 늘어진 채 밤을 새워가며 혈압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 심장에 관련된 모든 검사를 진행했지만 뚜렷한 병명이나 원인은 밝힐 수 없었다.

 

그것은 내게 굉장히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수도권 지정 거점 대표병원에서도, 사촌의 도움으로 겨우 입원할 수 있었던 대학병원에서도 병명이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니. 위경련이었다고 결론짓기에는 걸맞지 않는 증상이 여럿 존재한다. 심장과 관련된 발병이었을까? 온갖 심전도를 포함한 조형물을 이용한 CT, 그밖의 모든 검사들에서도 정상으로 표시되었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것일까? 그렇다기에는 모든 부작용과 후속반응들이 전무하다. 무엇보다 뇌 혈관이 어떤 식으로든 손상되었다면, 긴급 수술 하나 없이 지금 내가 정상적으로 글을 쓸 수 없지 않겠는가. 이제는 속칭 무당들 중에서도 강신무들만 겪는다는 신병이었을까 하는 웃픈 질문까지 던져보게 된다. 

 

나는 약 열흘 전, 이와 비슷한 경험을 또다시 마주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경험적으로 2년 주기로 이러한 증상이 발병한다는 것과, 내가 손 쓸수 없는 자율신경계쪽의 이상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차츰 이 증상을 대처하기 시작했다는 세 가지 결론을 품게 되었다.

 

경과를 좀 더 상세히 써보자면 다행히 이번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웅크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년 전과 달리, 어둑해진 새벽시간을 비오듯 흐르는 땀방울과 함께 견딜 수가 있었다. 집에서의 나는 혼자였고 내 손으로 휴대폰 키패드에 119를 썼다 지우곤 했다. 심박수는 혈압기로 재 보았을 때 130, 그 리듬을 일정하게 24시간 째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종일 오한 속에 누워있었으나 심장은 1시간 가량의 가벼운 러닝을 하고 있을 때의 박동을 하루 이상 이어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심박수의 리듬에 맞추어 두개골 전체를 울리는 통증은 2년 전과 같이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이제껏 모든 통증 중 두통이 가장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생체기나 상처 등은 아무리 크고 깊다 할지라도 쑤시거나 아리거나 따끔거리는 것으로 사람의 심기를 건드린다. 그것은 봉합하고 단단히 묶어 고정시켜놓으면 잠시 잊혀지고 조심스럽게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일 최고조의 게이지로 지속되는 두통은 손하나 까딱하는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사람이 생각이나 자각 따위를 할 시간 조차도 주지 않는다. 악마 중에 악마이자 아주 파괴적인 속성을 가진 고통인 것이다. 종류를 막론하고 고통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몸 어느 부위나 다를 바 없겠지만 말이다.

 

여튼 이번의 증상은 2년 전의 것에 비해 강도도 약했고, 그 부위별 통증도 다르게 왔다. 처음에는 편도가 부은 뒤 주름진 곳 모두 고름이 차올라 그 어떤 음식도 섭취하게 힘들게 되었다. 그 때쯤 두통과 비정상적인 심장박동도 시작되었는데, 나는 증상이 시작된지 열 두 시간쯤이 되었을 밤 10시쯤, 무모하게도 차를 몰고 10분 거리의 큰 공원으로 나가 무작정 걸으며 이 통증을 이겨보려는 꽤나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두어걸음을 걷자마자 나는 제자리에 한참을 쭈그려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말로 표현 못할 두통이 나의 머리를 망치로 세게 두드리는 통증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근처 편의점을 향하여 다시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할 때에도 차로를 자주 이탈했을 만큼 위험하게 주행했다. 급한 대로 편의점에 들어가 타이레놀을 사 여러 알을 털어넣었다.

 

그 후 내가 어떻게 집으로 가 누웠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나는 두통 속에서 아득해진 정신을 붙들며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 열대야 가운데에서도 한기가 느껴져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어둠 속에 웅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추위에 떨며 땀은 비오듯 흘러 내가 누운 매트릭스를 전부 적셨다. 그 길고 길었던 새벽은 끙끙대며 내는 나의 신음만이 거실을 가득히 채웠을 뿐 다른 소음이 침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10여분 단위로 깨고 잠들기를 반복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악몽을 꾸었다.

 

4시경 부터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병원이 여는 시간을 기다려 신경외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열은 39도 후반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의사는 냉방병일 것 같다는 다소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두통이 매우 심해 일상생활이 불가하다고 진통제를 신경 써 처방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그 말을 끝으로 내 몸은 입원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나는 2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이름 모를 링겔들을 여러 군데 맞으며 다시금 긴 시간으로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하는 일을 제쳐두고 약 세 군데의 다른 병원들을 더 방문했으며 각각마다 다른 진단명을 내놓기만 하는 병원들에 다시금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편도가 부었다는 이유만으로 편도선 약만을 처방해주었고, 그 즈음 나는 손과 발에 화상을 입은 듯한 통증과 함께 수많은 수포와 포진들이 생겨났는데, 피부과에서는 쉬이 병명을 진단하지 않고 바르는 스테로이드 연고와 항히스타민제만을 처방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소아청소년과 병원은 나에게 성인 수족구라는 병명을 내렸다.

 

 

 

이제는 나의 고통의 원인에 대해 더는 궁금하지 않다. 나는 처방받은 수많은 약들을 거의 먹지않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대신에 나는 이번의 통증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 다행이었다는 점에 감사했으며, 고통과 죽음의 연관성에 관하여 다시한 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그 고통의 길을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 자체는 단절이자 끝이며 마무리인 동시에 우리 중 그 누구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뜨거운 난로를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쉽게 난로에 손을 갖다댄다. 우리는 호되게 경험하며 당해본 것들 외에는 두려워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을 설명하거나 그것에 대해 과장되어 박힌 인식 등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매일 밤 잠이 들며 죽음과 매우 흡사한 경험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때문에 '죽음' 그 자체에 한해서 내게는 그것이 안식이자 모든 것의 완료, 종결로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나'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련이 깊은 '남'의 죽음을 더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죽음 뒤에 내게 닥쳐올 삶의 난이도와 사무치는 외로움 등이 더욱 괴로우며 두려워할 만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더불어 죽음에 앞서 우리의 신경이 살아있는 한 느끼는 모든 고통들은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것들이다. 금번의 통증을 오롯이 느껴오면서 또 한번 자각하게 된 것은, 육신의 한계점에 다다를만한 고통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고와 존엄성마저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릴 만큼 속수무책의 악마와 같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죽음을 불사할 정신력이 뒷받쳐준다면 그 질긴 고문의 현장에서도 기계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뭇 사람들의 예시 또한 한편으로 적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있었다.

 

그 기나긴 고통의 끝자락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죽음'이라는 존재는 오히려 두 팔을 벌려 환영할만큼 반가운 친구인 것이다. 때문에 죽음이라는 관념에 대하여 불필요한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끝을 바라보며 통증의 바다로 뛰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꺼져가는 생명을 어지럽게 꼬인 호스들로 연장하며 버틸 바에 서둘러 종착역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 나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언젠가 수명에 가까워졌다는 자각이 들만큼 세월이 흘렀을 때가 오면, 죽음을 염두에 둔 그 어떤 가치로운 행위들마저 칭송받아 마땅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게는 아직 꺼져가지만 남아있는 불씨가 존재한다고 느끼기에 이 모든 통증의 과정이 두렵다기보다 굉장히 짜증이 난다. 나에게 조만간 같은 통증이 와도 내 육신의 반응으로 뒹굴며 신음이야 하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맞닥뜨리고야 마는 경험이 쌓여갈 수록 그것 자체와의 만남은 의외로 괜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젠가 나에게 죽음을 가져다 준다고 했을 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아까운 마음만은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즉, 정리하자면 고통은 견딜만하나 죽음은 아직 아깝다.

 

그러나 인생사 허무하지 않은 구석이 어디 있겠는가. 나 또한 특별한 존재가 아닌 하나의 나뭇잎과도 동등한 개체일 뿐이다. 때문에 앞으로 나를 향하여 마주해 올 어떠한 종류의 병들과 통증, 고통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언제든 오시라. 필요시에는, 아니 하늘의 허락이 있을 때에는 죽음의 신을 함께 모시고 오라. 그 날은 내게 이 세상에 계약 종료를 고하는 평강과 축제의 밤이 되리라.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부유하게 되는 날, 중요하다고 세뇌되었던 모든 것들이 평등한 위치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후회도, 원망도, 어리석었던 과거도 모두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이며, 오직 좋았던 추억과 사랑했었던 마음만을 간직한 채 진정한 안식과 자유로의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