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t to the Paradise

 
<여사제 타프티 상세 정리>

 

- 1장에서 11장까지 -
 

1.  소개
 
여사제 타프티의 소개 : 3천년 전 이시스(고대 이집트의 여신) 신전의 사제.
 
나는 ‘자기 자신 사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나의 의견도 사실 나에게 이식된 의견이고, 생각을 통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나는 ‘어리석고 보잘것 없는 존재'가 맞다.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며, 마치 양파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 잠이 들었을 때 보았던 꿈의 세계 뿐이다. (참고로 꿈의 세계는 허구가 아니며, 환상이면서도 실존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실제'는 이전과 앞으로도 없을 단 한번, 바로 지금 찰나에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현실과 삶의 특성은 움직임과 변화이다.
나비가 알을 낳아 애벌레부터 다시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이 나의 실체(영혼의 삶) 또한 변화의 변화를 거듭해 왔다.
 
꿈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하자면, 꿈과 생시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1.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나는 잠들어 있으므로 어디에 있든 무력하다.

2. 꿈과 생시 모두에서 현실은 마치 영화 속의 한 프레임처럼 움직인다. 나는 앞을 보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3. 꿈과 생시 모두에서 나는 프레임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이 때까지 나는 주의가 지금 이 순간의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었기에 현실을 통제할 수 없었다.

 


2. 두 개의 스크린
 
나는 잠들어 있고, 꿈과 삶의 통제가 가능한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나에겐 두 개의 스크린이 있다. 외부 스크린과 내부 스크린이다. 나의 주의는 항상 외부 또는 내부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으나, 가끔은 그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고 그 사이에 있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생각에 깊이 빠져있을 때면 주의는 내부 스크린에 완전하게 연결된다.
반대로 주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는 내 자신은 잊혀지고 무의식적인 행동이 주를 이루는데, 이것이 외부 스크린에 연결된 상태이다. 
내부, 외부 스크린에 주의가 연결되어 있는 상태는 모두 잠들어 있는 상태이며, 무의식의 상태로서 아무 힘이 없이 자기자신과 주변의 그 어떤 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꿈 또는 생시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주의를 내부 또는 외부 스크린에서 의식의 중앙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두 스크린 사이의 중간에 있는 점에 주의가 있다면, 주변 사건과 자신의 생각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내가 두 스크린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그 누구도 나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주목이나 집중 같은 것을 강요받으며 나의 주의를 외부 스크린에 고정시키도록 길들여져 왔다.
동시에,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 자신이 불행한 존재라는 비참한 생각에 빠져 유일한 도피처인 내부 스크린에도 고정시켜 왔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는 나는 속고, 화내고, 놀라고, 빼앗기며, 동시에 떳떳하게 맞서지 못하고 내면의 콤플렉스를 이기기 위해 발버둥치기만을 계속 하다가 허겁지겁 성공을 뒤쫓아 간다. 
그러나, 무의식의 상태에서 나의 효율성은 5~10퍼센트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늘 패배자로 살아오게 되었다. 



3. 꿈 속에서의 산책
 
잠에서 깨어나 질문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주의는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가?’
깨어난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의식의 점에 있게 되며, 다음과 같은 답을 할 것이다.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 현실이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한 시간 만이라도 의식의 상태에 머물러보도록 해 보자. 아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단, 컨디션이 좋을 때 해야 한다.)
‘나는 현실의 꿈 속을 산책할 것이다.’ 하면서, 회사든 학교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산책을 가 보자.
더 큰 효과를 보려면 산책로나 쇼핑몰, 놀이터와 같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 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의식을 활성화시킨 후 가게를 둘러 보자. 점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둘러보며, 점원에게 무엇을 질문하기도 하며 그의 반응을 관찰해 보자. 그저 잠들지만 않으면 된다. (누군가와 대화하기 전에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를 되뇌이며 주의를 의식의 중심에 두자.)
전에 볼 수 없던 호의적인 태도로 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스크린 속에 있다가 영화관으로 걸어 나온 상태에 있는 나를 마치 다른 세상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에게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하나 그 실체도, 호기심과 호의를 가지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는 사실을 내비치지만 말아라.
 
그 사람들에게 있어 나는 반딧불 같은 존재이며, 에너지가 특별히 빛나는 존재임을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4. 현실로의 첫 외출
 
나는 영화 속에서 걸어나온 것이며, 다른 연기자들은 외부 시나리오에 연결된 채 꿈 속을 헤메듯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꿈 속으로의 산책을 단행할 때마다 내가 다시 스크린에 연결되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될 것이다. 그 때의 나는 개인으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도, 또한 나 자신을 소유하지도 못하는 지점에 있다.
그 상태의 나는 바로 어느 영화에 연결된 시나리오의 소유로서 그에 따라 움직이고 휩쓸려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 주의를 통제하기 시작할 때부터 시나리오는 나에 대한 힘을 잃게 된다.
 
잠의 꿈 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힘도 쓸 수 없다.
꿈 자체에서 자각을 일으키는 자각몽(한 단계)을 넘어 두 단계 높은 상태인, 생시에서 자각을 일으키는 것 또한 가능하다.
잠들어 시나리오에 이끌리고 있는 자들은, 자신을 인식하지도 못하며, 의지와 행동에 대한 자유도 없다. 영혼조차 없는 거푸집과 마네킹에 불과하다. 
마네킹이 만일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나야.”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5. 주의 감시하기
 
주의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을 소유할 수도 없다.
 
나의 자아는 곧 주의이며, 내가 소유하지 못한다면 시나리오의 소유가 된다. 꿈 속이든, 생시든 시나리오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이다. 
꿈은 생시이고, 생시는 꿈이다. 즉, 생시는 생시에서 꾸는 꿈이고, 일반적인 꿈은 꿈속에서 꾸는 꿈이다.
주의를 통제하면서부터 나는 자신만의 의지와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는 능력을 얻으며 영화 속에서 살아난다.
생시에서 이것을 계속 시도한다면, 꿈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곧 얻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꿈 자체는 가상이므로 현실에서 그런 능력을 마스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을 방해하는 유일한 것은 계속해서 외부, 내부 스크린에 주의를 연결하려고 하는 나의 ‘습관'이다. 
그 모습이 내가 한참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척도인 것이다.
단 실패해도 낙심하지는 말자. 그저 계속해서 주의를 중심으로 되돌려놓으며 주의를 감시하자.
주의를 의식의 중심에 두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일어나는 사건에 대응하는 나의 능력에 있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든 잠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차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저 가볍게 살짝 일어난 사건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도 주의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두 가지의 활성체를 가지고 있다.
외부 활성체 : 어떤 일이 발생하자마자 깨어나는 것. (예시: 길을 걷던 중 주변에서 나의 시선과 관심을 끌었을 법한 일이 발생했다. 그 때에도 시선과 주의를 집중시켜도 그에 대한 통제력은 잃지 않도록 하자. 즉, 주의를 의식의 중심에 유지하자.)
내부 활성체 :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깨어나는 것. (예시 : 어딘가로 가려고 하거나, 대화 직전,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주의를 의식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마치 무술을 배우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연습해야만 완전하게 마스터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내가 주의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나의 인생도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
다만, 내가 이러한 의식과 힘을 얻게 되었음을 타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지 말아라. 잠든 주변인들을 깔보거나 거만하게 대하지도 말아라.



6. 현실 선택하기
 
먼저 이러한 깨어남으로의 산책, 외출 전에 주변인들에게 동정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꿈에서나 생시에서나 내가 안다는 사실을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는 바로 지금, 단 한번의 찰나에 존재하는, 과거에서 현재로 여러 필름의 여러 프레임들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이 말은 즉,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직 실제를 본떠 만든 순간의 복제품인, 영사기에 의해 비춰진 프레임이라는 뜻이다.
영화 필름 보관소에는 과거에 일어난 일, 앞으로 일어날 일, 일어날 뻔 했던 모든 일들이 저장되어 있다. 
 
과거와 미래는 비물질인 정보이다. 
마치 에테르(빛을 파동이라 생각했을 때, 이 파동을 전달하는 매질로 여겨지는 가상의 물질)와 같이.
꿈의 세계는 과거와 미래에 일어났거나, 일어날 뻔 했던 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 등이 모두 실현 가능한 단일한 영화필름 보관소와 같다.
단 한가지 불변하는 것은 생명체의 영혼이다. 나의 자아, 곧 영혼은 프레임을 보거나 현실 속 필름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현실은 무생물체이나, 생명체는 살아있는 존재이므로 현실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다시 말하자면 마음대로 현실을 선택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프레임이 어떤 필름을 따라 어떤 방향으로 이동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즉,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실제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어쩌다 보니 이미 일어나버린(일어나고 있는 중인), 실제이다. 이것은 바꿀 수 없다.
나는 내가 직접 선택하지도 않은 영화 필름 속에서 시나리오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살고 있었다.

 

7. 의도의 땋은머리

 

프레임을 통제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또한 이미 일어나고 있으므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미래, 즉 다음 프레임들이 흘러갈 필름만을 선택할 수 있다. 

 

통제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주의와 의도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1. 주의를 통제하는 것은 앞서 다뤘듯, 꿈 속에서 깨어나는 나의 자각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2. 반면 의도를 통제하는 것은 나의 행동을 담당한다. 실행하기 위해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 행동을 하게 될 시 의도가 실제로 실현된다.

 

하지만 나의 의도는 현재 프레임에 꼭 달라붙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은 그 프레임에만 관련되어 있고, 그 안에서만 실현된다.

 

스크린과 같이 의도에도 두 개의 중심, 외부 중심과 내부 중심이 있다.

 

1. 내부 중심은 두개골의 이마 부위에 있으며, 단기적인 의도(주로 일상적인 기능)와 관련되어 있다. 

 

- 마치 우리가 집중할 때 미간을 찌푸리고, 근육이 긴장되는 것처럼 현재 프레임 속 일차원적 행동을 하도록 도와준다.

 

2. 외부 중심은 땋은 머리의 끝에 있다. 

 

- 땋은 머리란, 긴 머리를 땋은 것과 비슷한 에너지 다발이다.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환각 기관이며 우리 모두에게 있다. 다만, 머리처럼 아래로 축 늘어져있지 않고 등뼈 쪽으로 내려가며 살짝 위쪽으로 솟아 있는 모양새이다.

- 외부 중심은 두 날개뼈 사이 지점에 있으며, 등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 있다. 

 

외부 중심의 통제원리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

주의를 땋은 머리의 끝에 옮겨놓고, 나의 삶으로 끌어다 놓고 싶은 사건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미래 프레임을 비추면 이루어진다.

 

나는 현재 프레임에만 익숙해져 있고 얽매여 있다. 

눈 앞에 것을 보기 위해 외부 스크린에 몰두하며, 거기에서 보고 듣는 것들로 인해 수많은 고민과 걱정을 내부 스크린을 통해 쌓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의를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설령 시나리오를 만들었더라도 그에 따라 움직이거나 실현시킬 수가 없다.

미래 프레임은 의도의 외부 중심으로만 비출 수 있다.

 

 

8. 땋은머리 사용하기

 

1. 잠에서 깨어나 의식의 점으로 들어가라. 여느 때와 같이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라고 자신에게 되뇌이자.

2. 땋은머리를 활성화시킨다. 땋은머리가 있는 곳을 느껴보자. 땋은머리에 주의를 집중하면, 땋은머리가 활성화되며 등에서 조금 위로 비스듬히 올라온다.

3. 땋은머리에서 주의를 놓치지 않은 상태로 미래 프레임을 상상한다. 생각이든, 말로든, 스크린에 그리든, 원하는 방법으로 현실을 선택한다. 

 

땋은머리를 활성화 할 때 눈은 살짝만 떠지면서 마치 빛을 내는 것 같을 것이다. 

이전의 나는 그저 외부에 있는 영화를 관람하고 몰입만 해 왔다면, 지금의 나는 내 자신의 영화 필름을 직접 상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부 스크린으로 아무리 꿈과 소망을 쏘아보낸 들, 그 효과는 제자리 걸음과 같이 미미하다.

그러나 내가 의도의 외부 중심을 사용하여, 말과 생각과 형상을 상영할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가령, 오늘 하루의 필름에 길한 사건과 불길한 사건 두 개가 있다면, 프레임이 성공적인 영화 필름을 따라가도록 해 보자. 잠에서 깨어나 땋은머리를 활성화시킨 후, 그 느낌을 놓치지 않은 채로 원하는 것이 실현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 뒤, 땋은머리 느낌을 놓아주고 평소와 같이 행동하자. (조금 더 확실히 프레임을 실현시키려면 그 프레임을 영사기에 여러 번 비추면 된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내가 느끼는 현실감이다.

평범하거나 습관적일 때 우리는 현실감을 느낀다. 이에 대해 9장에서 조금 더 알아보자.



9. 행동의 환상

 

이 방법의 성공 여부는 내가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이제껏 나는 세계관이라는 틀 안에 부어지는 것들만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꿈 속에서 믿을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까다롭게 평가하려는 태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가능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의심하는지에 따라 프레임을 움직이는 능력이 달라진다.

사소한 기적은 나에게게도 쉽게 주어진다. 나의 그 경혐이 곧 틀이 되어 방해한다.

나는 복잡한 프레임도 통제하기 위해 이 버릇을 뜯어고쳐야 한다.

 

나는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영화 필름을 따라 시나리오에 이끌려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 필름은 ‘삶’을 뜻하고, 시나리오는 ‘운명'을 뜻한다. 

가끔 운명을 내 손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않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훨씬 나쁜 상황이다. 

내가 보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모두 환상이다.

 

게임 속 NPC나 캐릭터들이, 자신들이 게임 속에 있으며 내가 그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던가?

답은 이것이다.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삶'이라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나 꿈 속 마네킹들도 자신들이 하는 행동의 환상이나,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행동의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 또한 주의가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었고, 의도는 현재 프레임에 머물렀기 때문에 나의 동기와 행동은 전혀 내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나의 행동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그 가운데 원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것을 이루려고 애를 썼으며 더러는 이루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들 역시 시나리오에 이미 쓰여있던 것이며 나의 역할이 주제를 전환한 것 밖에는 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현실은 나를 꽉 붙잡은 채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내가 어디에 있으며,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라는 질문이 주어졌을 때 내 자신과 환경을 자각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영원의 아카이브에 저장되어 있는 영화 필름 속에 나만의 마네킹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의식은 다른 마네킹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마네킹은 현재 프레임에서 살아나 나 자신이 된다. (꿈 속에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마침내 환상을 떨쳐내고 눈을 뜨는 순간, 영화 속에서 온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현실 속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카이브에서 영화를 고르듯, 나만을 위한 영화를 직접 고를 수 있게 된다.



10. 덫에서 벗어나기

 

나는 아직 질문이 주어질 때만 나 자신을 자각할 뿐, 내 의식은 늘 잠들어있고 외부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인다. 아주 잠깐 나를 자각하는 능력으로는 시나리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나를 방해하는 것은 크게 3가지이다.

 

1. 내가 영화 속 등장인물임을 모르는 무지함

2. 달팽이의 더듬이 같은 반사심리

3. 모든 것을 실현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는 틀

 

나는 습관과 상상의 통제에 의한 혼수상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를 달팽이로 만드는 것은, 현실을 직접 선택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뭔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습관이다. 

결과가 나올까? 안나올까? 될까? 안 될까? 의 수동적 태도는 현실을 더듬어보다가 뭔가 사소한 사건이라도 생기면 얼른 더듬이를 숨겨버리는 습관인 것이다.

따라서,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말고 직접 현실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습관과 상상은 예전의 습관과 생각이 형성되었던 방법과 똑같이 만들어진다. 

바로 끝없는 반복이다. 

 

또한, 현재 프레임이 보여주는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다가올 프레임만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할 때, 다음 세 가지 활성체 중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판단해보자.

 

<다가올 프레임 비추기 알고리즘>

 

1. 나는 “기대”에 있는가?(뭔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며, 뭔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가?) 

2. 나는 “의도”에 있는가? (어디론가 향하거나 무엇인가를 하려고 의도하고 있는가?) 앞뒤 가리지 않고 그것을 하려 덤비는 중은 아닌가?

3. 나는 “문제”에 있는가? (해결해야 할 어떤 일이 발생한 상태)에 있는가? 부산떨고 있거나 해결되기를 바라는가?

 

3가지 중 어떤 상황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판단한다.

 

다음 3가지 활성체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속한다. 그저 현실을 선택해야 한다.

 

1.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고 되뇌이며 잠에서 깨어난다.

2. 땋은머리를 활성화시키고, 그 느낌을 유지하며 현실을 선택한다.

3. 땋은머리의 느낌을 버린다.

4. 중요한 사건이라면 프레임 비추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11. 수선하기

 

기대, 의도, 문제가 생기가마자 곧바로 땋은머리를 활성화하여 다가올 프레임을 비춰야 한다.

특별한 변수없이 실현될 것이 거의 확실한 일들도 선택해야 한다. 생각으로, 말로, 영상으로 한번 그려보면 더 좋을 것이다.

끝없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는 나의 달팽이집을 새롭게 수선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이 직접 현실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내 두눈으로, 여러번 목격하기 전까지는 믿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통제를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 잠에서 깨어나 주의를 통제하는 방법을 배운다.

- 땋은머리를 사용하는 법, 형상으로 그리는 법, 그리고 의도를 계발하게 된다.

- 능동적인 태도로 전환하여, 결과적으로 외부 시나리오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로 나의 현실을 직접 선택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각각의 개별적인 프레임을 영화 필름의 여러 부분으로 자유롭게 섞여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나는 똑같은 마네킹의 몸이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존재가 살아 숨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화 속에 있으면서도 영화의 순차성에서 분리되며, 나의 프레임속도가 현실 프레임 속도와 일치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영화의 스토리를 전개하는 시나리오로부터 떨어져 나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땋은머리의 조작은 현실이 돌아가는 속도로부터 나를 분리해준다. 이 원리로 나는 영화속을 자유롭게 거닐게 된다. 

 

다가올 현실은 무한대인 가능태에 존재하며, 영원의 아카이브에 저장되어 있을 뿐 결말도, 주인도 없다.

즉, 다가올 현실은 아직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선택하는 누군가가 존재할 때에야 그에게 귀속된다. 

현실이 나에게 귀속되길 바란다면, 그저 가지라. 그저 선택하라.

나의 주의는 이미 질질 끌려왔던 현재 프레임에서 떨어져 미래를 향하고 있다. 

추종은 추월이 될 것이고, 수동적 기다림은 능동적 영향력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수선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의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경험에 일치하는 것만 성공할 것이다. 

내가 현실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것은 미꾸라지처럼 쉽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틀을 고치는 것은 만들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해야 하며,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습관을 들여가며 고쳐야 한다. 

습관이 될 때까지 꾸준히, 차근차근 연습하자.


 


 
외부와 내부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는 커넥터를 떼어버리고 그 중심에 의식을 두면,
내가 3인칭으로 보이며 나의 가장 가까운 근방부터 시작하여
광활한 저 먼 곳까지 나를 조망할 수 있다.
이 순간은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과
외부에서 모든 것이 생동감있게 움직이며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동시에 전부 파악되면서 '깨어난 나'가 활성화된다.

이것은 트랜서핑에서 이야기하는 '지켜보는 자'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실의 주도권(통제권)을 깨어있는 '내가' 쥐게 되면
시끄럽고 복잡한 마음의 손아귀에서 탈출하게 됨과 동시에
함께 따라 흔들리고 있던 펜듈럼과의 진자운동에도 균열을 일으켜 독립될 수 있다.

그로써 나는 낡은 습관인 불만과 불평을 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을 '유용함'으로 전환하는 긍정적 회선에 올라타게 되며
가능태 공간 속 '빠른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