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들엔 후회가 남는다. 

나는 좀 심한 편이다.

어느 유명인이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낭만닥터 김사부3에 나온 좋아하는 대사라면서.

 

'과거가 없는 지금은 없다.

지금을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된다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모든 일들과 사건, 나 자신까지도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오묘하면서도 따지자면 참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야 나는 당장이라도 꽤나 서늘했던 한양대 근처의 레스토랑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머니의 차를 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당시 사정사정하여 친구가 몰던 그랜져를 하루 빌렸거나

그도 여의치 않았다면 그냥 당당히 걸어 갔을 것이다.

내가 그 날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검은색 또는 어두운 브라운 계열의 코트와 구두를 신을 것이다.

그날만큼은 점심 후 헤어숍에 가 근사한 머리로 셋팅을 완료하고,

백화점에 들러 싸구려 털목도리 두 개가 아닌,

조 말론 샤워크림 한 개나 14k짜리의 작은 팔찌를 샀을 것이다.

그녀는 로즈골드색 또한 잘 어울렸을 것이다.

 

"노래, 틀어도 괜찮아?"

내가 그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한번쯤 물어봤을 것 같다.

그녀가 차에 올라타고 차가 출발할 때, 바로 그 때.

미리 저장해 둔 usb의 곡들은

Steven Curtis Chapman의 We will dance,

Peter Gabriel의 The book of love,

이루마의 Chaconne 2

등등등 정도가 되겠다.

혹은 내 홈피에 지금 흐르고 있는 음악도 괜찮다.

 

그 날의 대화들은 여전히 겉돌기만 할 것...

 

그러나 나는 때가 되면 말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말하지 못할 것 같고,

앞으로 잘 보기 힘든 사이가 혹시라도 된다면

후회가 좀 오래 갈 것 같아서.

너를 많이 좋아했다.

햇수로는 당시 기준으로 7년이 넘어간 시점,

당신도 알고 있었겠지.

장면 장면에 대한 묘사와 설명,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소개해 나갈 것이다.

본인이 들어있는 회상과 에피소드라면 그녀 또한 굉장히 흥미롭게 들을 것.

 

주변에서는 짝사랑이라고들 그러던데

난 사랑 까지는 아니다.

내가 널 뭘 안다고 사랑하냐.

그런데 많이 좋아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 묻는다면 예스.

 

어떤 답을 구하거나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

수십일을 고민해봐도 좋고

몇 시간만에 "난 아니야." 거절 의사를 밝혀도 괜찮다.

저리 치워두고 일단 공부하고 붙은 뒤에

얘기해 줘도 난 너무 좋다.

확실한 답을 들으면, 나도 주변을 빙빙 맴돌지 않을 수는 있잖아.

너에게 고민할 가치가 있는 것일지,

괜한 시점에 꺼내어 혼란스럽지는 않을지

뭐 여러가지 생각이 든 건 맞는데 

네가 얼마 가지 않아 시험에 붙을 것도 알고 있어서.

그 때 가서까지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더 멀어진 인연 때문에

매미처럼 맴맴맴 울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리고 나는 이미 그렇게 타이밍을 놓쳐버린 사례가 있는걸...

- 고3 졸업 직전, 마음을 표현하려 했으나

다른 친구에게 고백했던 네 이야기

 

너도 무척 잘 되겠지만

"난 나도 내가 무척 잘 될 거라는 걸 알아."

 

그 뒤에 집으로 데려다 줄 때까지의 코스와 동선, 대화들은

크게 의미 없다.

그 날은 트렁크에 있던 선물을 꺼내느라

집에 이미 들어갔던 너를 다시 호출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야지.

나는 차라리 작은 화분모양의 아이스크림 디저트가 나왔을 시점에

너에게 꺼내 주겠다.

 

"답은 꼭 주기로 해."

 

그 답을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에둘러 들었기 때문에

불쾌했다.

혹은 와전된 면이 있지는 않을까,

그것이 백 퍼센트 너의 진심일까? 의구심도 들었다.

나는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나에겐 너의 눈빛,

너의 입술을 통해 직접 듣는

너의 진심이 필요했다.

 

만약, 그 진심을 직접 만나 들었다면.

아무리 가혹했을지라도

그것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후에 내가 하게 될 선택들...

순간의 결정들까지도 모조리.

 

이는

내가 미국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길로 향했던 순간보다도,

뉴질랜드의 학교를 가 놓고 3일만에 탈출하던 새벽보다도,

이상스런 교회들을 전전하며 해야 할 것들을 뒤로한 수많은 날들보다도,

가장 후회로 남는 일이다.

 

"답은 꼭 주기로 해...!"

 

이 말을 건네지 못한 것,

그 결과는 나에게 

다시 8년이 다 되어가도록

지독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2015.9.21   오늘은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처럼 많은 준비를 하지는 않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통화를 마치고 한동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얼굴은 굉장히 화끈거렸다. 내가 이 아이의 인생에 등장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부디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었으면...... 기적은 일어날까? 기적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서 멀리멀리 사라져가기를... 어쨌든 10월에 보기로 했다. 11월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 선택은 너의 몫. 선택은 그녀의 몫.

 

당시의 나는 이미 마지막 만남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선택은 너의 몫이라 한다는 건,

나의 마음도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내가 혹시 그 날 마음을 꺼내 놓고도

단기 기억상실에 걸려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Dum Spiro Spero

-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

 

무슨 희망?

어떤 희망?

 

언젠가 당신과 잘 된다는 그 희망?

 

애석하게도 나도, 당신도 결혼하여 각각 아이까지 있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 대해 잘 모른다.

나는 어쩌면 인생 속에서 가장 근사한 한 예술작품을 보고 난 뒤,

영영 잊지 못하고 있는 걸수도.

이건 순수히 나의 미적 감각에 따른 기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졸업 후 몇 번의 그녀와의 식사에서

나에게 크게 흥미가 없는 여자와의 대화가 얼마나 맛없을 수 있는지 경험했다.

아마 많이 양보하여 억지로 사귀었어도

내가 관계를 유지해 나갔을 수 있었을지가 의문이다.

 

하지만 나의 미련은 다른 쪽 단면에 있다.

만약, 그녀가 나를 굉장히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 뒷면에 포장되어있는 행복감이 궁금해 그동안 허우적대며 살아온 것이다.

그것은 영화 속 대사에 등장하는 사랑의 모양이며

모두가 열망하나 결국엔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은 가졌을 것이라 부러워하거나

그 존재가 시작부터 없다고 애써 부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무형의 환상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아니,

단 몇 주, 몇 일이라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것은 흘러가버린 과거를 향한

미칠듯이 애절한 미련일 뿐,

가질 수 없는 것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객기어린 어린아이의 칭얼댐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Dum Spiro Spero 라는 문구를 여전히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내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세상이 나에게 결국은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 줄 것임을

믿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믿는다고도 안 했다.

나는 그걸 믿는 것을 넘어서 알고 있다는 블러핑도 안했다.

나는 믿기로 결심한 단계다.

 

때문에, 펼쳐질 현실을 고르는 법을 터득하며

다소 터벅터벅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한 나에게

이 말은 꽤나 힘이 된다.

 

그녀 뿐만이 아닌 내 삶에 무수하게 펼쳐져 있는

정리하고 싶은 영역들,

정리되지 않은 구석 구석에

굳이 내가 하나씩 손을 들어 바꾸어 보려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스토리로 정렬되어갈 그 희망을

나는 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혹은 정리되지 않은 그 광경마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나 자신의 변화를 희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후회.

 

중학생이던 시절 여학생이 내게 달려오며 인사를 하고,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가,

내 뒤의 아이가 인사를 받는 순간

왜 그랬을까...하는 그런 재미나고 웃픈 후회부터,

 

인생 속 거대하고 굵직한 선택의 후회들까지.

 

그리고 오늘 떠올리게 된

나라는 존재의 8할 이상을 구성하게 되었을

단 하루, 그 날의 장면에 대한

꼽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유일한 후회까지,

 

나의 생애는 지금껏 후회 투성이였다.

아니, 모두의 생이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라고...

 

어쩔래?

 

바꿀 수 없잖아...

 

대신에 다가올 앞으로의 삶은

우리 스스로 절대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지레짐작 평가해서도,

그럴거야 단정지어서도 절대 안 된다.

 

그냥, 나는 알게 되는 순간을 원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관측하는 방향으로 "어차피" 흘러갈 것과

좋은 때에 좋은 사건이 내게 일어날 사실을.

 

이것이 단순한 자기위로나 합리화로 들리는가?

 

사실 말이다,

과거도 굉장히 신기한 일들이 가득했고

지금 이 순간도 감사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으며,

내가 현재껏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은 아닐까

한번 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수도...

 

다가오고 있는 향후의 가까운 미래는

내게 어떤 황홀한 순간들을 선사해줄지

기대하고,

아니 먼저 맛보기로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좋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