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비롯한 타 종교도 마찬가지,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한 거였다.



우리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써 주된 대화들이 그쪽에 관련되어 있고, 많은 양의 시간과 비용을 교회에 소비한다. 거대한 양의 십일조 금액을 헌금봉투에 꾹꾹 눌러적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이분들은 진심으로 믿고 있구나...' 라는것을 절감한다. 그러게, 나는 이 '믿음'이라는 부분에 회의를 느껴 기독교를 탈출한 사람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타 종교도 마찬가지,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한 거였다. 말도 안되는 내용인데, 그냥 믿는 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기독교의 성경은 특히 더 '믿음'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믿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확인 가능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주위 사람에게 믿으라고 권고할 이유도 전혀 없지 않겠는가. 내 앞에 너구리가 한 마리 있는데, 내 옆 친구에게 "너구리가 있다는걸 좀 믿어! 못 믿겠어? 그럼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 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니까 말이다. 둘러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분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 아니, 어떻게 한 명이 없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통계학적으로, 확률적으로도 이보다 낮은 확률은 없지 않나. 본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의외로 이 간단한 부분에 커다란 맹점이 있다. 아, 물론 개개인으로 확인할 수 없는, 증명해 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야 무수하게 많다. 직접 눈으로 보았다든지, 귀로 음성이 들렸다든지, 그보다 좀 더 일반적인 것은 마음으로 음성이 들리는 경우들이다.(사실 이 음성 듣기 현상도 로렌 커닝햄 목사 열풍 이후로 활성화 되었다. 그러고 보면 종교도 유행을 탄다.) 나도 그러한 체험을 해 보았기에 그들을 무턱대고 사기꾼이나 소설가로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그것조차 내 안에 있는 다른 나만의 자아를 본 것이었거나, 내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상을 마주한 것이었다. 혹은 내가 생각해낼 수 없는 제 3세계의 것들을 마주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정녕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는 역시 불확실한 물음표로 남아있더라는 것이었다.


강신주 박사님의 강연중에 어느 사람이 이런 사연을 보내왔다. "신이 보여요."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더니, "점집에 갔는데 도사가 눈을 피하고 제발 가달라고 했어요." 라고 한다. 그 말에 박사님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건요, 본인 눈이 사나워서 그래요. 뒤돌아 서 보세요. 이 분 눈 강해요, 안 강해요. 옆에 분이랑 비교해봐요. 강하죠. 점쟁이들 사이에서도 '기'라는건 존재하거든요." 그 말에 그녀는 한번 더 이렇게 응수했다. "그치만 귀신이 보이는건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보였고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제가 보이는걸 어떡해요." 박사님은 그 분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 "가져오세요. 내 앞으로. 그 신을 좀 데려오세요. 그러면 내가 그 신을 죽여버릴거예요. 그러면 당신도 자유롭게 되겠죠. 세상에 헛것을 보는 사람들은 많아요. 몸이 허할 때 약물이나 의학의 도움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본인 선택이지만, 적어도 그 본것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말자구요. 알았죠." 


나도 머지않은 과거에 깊은 신앙생활을 해 본 사람으로써(부끄러우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신앙심이 있다는 이들에게 요청하고 싶다. 신을 한 번만 내 앞으로 데려와 달라고. 당신이 본 이야기 말고. 당신이 들은 이야기 말고. 직접 너도나도 보고 들을 수 있게 모셔와 달라는 말이다. 내가 짧은 인생 참 수많은 집회와 모임들을 깊은 산골부터 시작해 저 넓디 넓은 바다 근처 기도원까지 참석해 보았으나, 그들 모두 '하나님'을 모셔온다고 해 놓고, 그 말과 달리 아무것도 모셔오지 못했다. 그들이 몰고왔던건 여러 현상들 뿐... 함께 그 분의 이름을 부르자고 했지만 결국은 우리들의 축제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악기나 여러 말들을 동원해 격앙된 분위기를 연출시키면 여러 군데에서 울음이나 기이한 현상들이 터져 나오고, 심지어 몸의 여러군데가 조금씩 낫기도 하면서, 바로 이것이 신이 오신 증거가 아니냐며 자위했다. 그러나 나는 볼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신을.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나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영원한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넣는다는 신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 신이 진정 존재하는 것이 맞다면 우리는 한없이 불행한 존재일 것이다. 세상의 꽃들을 보건데,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개에 그려진 무늬의 정교함을 보건데, 내가 믿는 신은 그런 분은 아닐 것 같다.


기독교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진리'라는 용어를 써 가며 확신에 가득한 눈으로 자기의 신념을 진리인 양 이야기 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축하한다고. 당신은 인생의 '진리'를 벌써 만났으니... 당신의 남은 인생은 참 재미가 없겠다고. 진리는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겠거니와, 우리의 일생은 죽을때 까지 진리를 탐구하기에도 참 모자른 시간이 아니던가. 아무리 구해도 쉽게 찾을 수 , 얻을 수 없는 것이 진리인데, 진리 탐구의 매력은 거기에 있는데, 그러나 그들 스스로는 진리의 매력을 그렇게 추락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진리를 만났다고 자신있게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직 제대로 증명조차 되지 않은 어느 한 종교, 그 속에서도 여러 교파와 종파 가운데에서 한 곳, 바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진리라고 외치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더욱 환멸을 느끼곤 했다. 


실제로 교파나 종파나 강조점이 다른 옆 동네 교회를 두고 '생명'이나 '구원' 따위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그 교회의 본질을 완전히 몰살시키고, 자신들의 교회의 가치를 치켜올리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 나는 비난받는 그 옆 동네 교회에도 직접 찾아가 보았는데, 옆 동네 교회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로 비방을 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두 목사들 중 누구의 말을 따를지가 참 모호해진다. 한 쪽을 선택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맹목적이고도 무턱대는 '믿음'이 정말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좁디 좁았던 그 종교의 세계에서 한발자국 나와 보니, 이기심으로 철철 물들었던 내가 보인다. 내가 성경을 아이처럼 믿어버렸다면, 나는 당장에 길거리에 나가 걸어다니고 있는 수많은 맑은 눈망울들을 붙잡고 회개하라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다그쳤어야 맞다. 아니면 더욱 효율적인 전도 방법을 향해 내 일생을 던져버리고 그에 관한 고심이 시작되었어야 하는게 맞다. 왜냐하면 불쌍한 모든 사람들은 지금 '영원한 고통' 속으로 비탈길을 내려가듯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 말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조금 있으면 죽을 불치병에 걸렸는데, 내가 그 병을 완치해줄 백신 알약들을 손에 쥐고 있다면, 당장에 오늘부터 큰 대형 천막을 치고라도 보는 사람마다 그 알약을 나누어 주지 않겠는가? 다같이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기심으로 철철 물들은 아이였다. 나는 교회 안에서 행복했으나, 바깥 사람들을 향해서는 눈을 감았었다. 


따지고 보면 너도, 나도, 우리들 모두, 실제로는 믿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지옥에 갈거라는 걸. 만약 우리가 그것을 믿고서도 너무나 태연하게 교회나 나오면서 세월을 보내는 중이라면, 우리는 정말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러한 걱정은 없어보였다. 일요일은 그저 우리끼리의 모임의 장이자 짝짜쿵을 하는 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지에 나가 계시는 선교사들이 상대적으로 더 존경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목사의 아들인 내 친구로부터 선교사의 안락하고도 여유 넘치는 실생활에 대해 또한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어느 착한 노부부가 지옥에 갈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낙태를 통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기들이 지옥으로 떨어질거라는 사실도, 어린 시절에 눈을 감는 아프리카 대륙의 아이들도 모두 지옥에 있을거라는 생각은 못하겠다.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해준 조상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듣지도 못한 채 죽어갔던 수많은 조상들이 지옥에 있을거라는 것 또한 믿기 어렵다. 대만에서 만났던 마음씨 좋았던 청소부 할머니가 단지 손목에 염주를 찼다는 이유로 곧 있으면 지옥으로 직행하실 운명이라면, 나는 참 암울하고도 비극적인 세계에 태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얼마나 슬픈가. 이 현실을 도피해 자살을 하자니 또 지옥행이라 자살도 못하고, 그저 교회가 시키는대로 믿자니 내 마음이 편치 않아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또 교회들마다 그 방법론 또한 다 다르니 어느쪽을 따라야 할지 참 막막한 경우가 한 둘이 아니고. (차라리 기독교를 믿겠다면 성경 한권만 사서 집에서 혼자 믿는 것이 더 정수에 가깝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어느 착한 노부부가 지옥에 떨어질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