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석이형의 기일이었다. 나는 오늘도 몸의 여러 군데 통증을 느꼈지만 미친듯이 일만 했다.
순간 순간이 고통이었으나 이미 버린 육신, 이미 버린 삶이라 생각하니 마음만은 편한 느낌이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오늘 반드시 혜화역에 갔을 것이다.
나는 수년전 형의 기일에 학전소극장 앞에 가 참이슬 클래식을 따라 놓고,
나홀로 여러 잔을 홀짝이고 돌아섰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취기가 돌아서였을까, 아니면 형이 고맙다고 등이라도 한 대 쳤던 것일까.
내게는 돌아서는 그 길의 순간 별천지가 펼쳐진 듯 몽환적이고도 예민한 지각에서 오는 행복을 느꼈다.
마약 한 대를 맞으면 그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그 후로 어떤 술자리에서도 그러한 취기를 느끼지 못했었다.
형에게 기대어 내 상태를 고해본다.
나는 2년차 직장인이며 남들이 여기기에 굉장히 쉽게 다닐만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또래에 비해 연봉도 꽤 높고, 집에서는 10분 거리이며, 매일 같이 여섯시도 안되어 퇴근한다.
내 자리에 어느 누구를 갖다 놓아도 나름의 시행착오를 거쳐 만족하고 지낼 것이다.
예상하는 바 광석이형과 술잔을 기울였어도, 지극히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는 광석형은 나에게 계속 다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석이형이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짓밟은 꿈이 있으며 그 현실을 온몸으로 환영하자 다짐했던 나 또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특유의 아집으로 인한 짙은 우울감 속에 매 순간을 산다는 사실이다.
내 몸과 마음을 버리다시피 살아가는 것은 금방 내 생명이 꺼지기만을 바라는 것과 같다.
나는 형의 인생을 아주 조금 들여다보고 형의 선택이 참 아쉬웠다.
형의 선택으로 인한 대가는 형이 치뤘고 아주 깔끔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다른 면에서 나 또한 선택을 참 잘 못했다. 그리고 평생을 뒷처리 하며 살아간다.
내가 대가를 치루는 동안 내 생명도 형처럼 꺼져가고 있을까? 부디 이 벌칙의 끝이 세상과의 작별이 아니길 바래본다.
하지만, 작별이라 해도 좋다. 뭐든 좋다.
교도관의 입장에서 수감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십 수년째 늘어놓는 죄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