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감미롭게 울려 비치는 어느날 오전에 나는 숲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에 벌써 아카시아 잎이 물들어 있고 푸르스름한 숲 사이로 노란색의 작은 잎들이 떨리는 금빛 물방울처럼 흔들거렸다.

 나는 가을이 시작되는 자그마한 표시로, 빨갛고 은회색이 나는 버섯,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아 초록색 가시가 돋힌 밤송이 속에 박혀 있는 불그스름한 밤알들, 그리고 꽃이 피는 돼지나물과 토끼풀로 둘러 싸인 채 앉아있었다.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게 아니라 아주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몇 해 동안을 계속 수채화만 그리고 난 다음에 나는 최근에 갑자기 스케치에 빠져 버렸으며, 그 후로는 밤에 가끔 그 꿈을 꿀 정도로 이 새로운 일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나는 화판을 무릎에 올려놓고서 한 조각의 숲을 내 도화지 위에 스케치하였다. 내 앞에는 거대한 뱀이 기어가는 듯 오래된 밤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고, 그 사이로는 밝은 갈색의 아카시아 나무줄기가 똑바르고 가느다랗게 뻗어있다.

 그 나무줄기 위에는 나뭇가지가 서로 뒤섞여 있고 그 아래에는 양치식물과 나무뿌리들이 그물처럼 엉켜 있다. 그 나무들 사이 한 중간에 약간 허물어진 암벽 지하실 입구가 있는데, 담벽을 이룬 두 개의 기둥 사이로 서까래를 엮어 만든 문이 있고, 그 서까래 뒤로 바위 굴이 검고 깊게 뚫려 있다. 그것을 그린다는 것은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과제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내가 스케치하는데 방해되는 이유는 못 되었다. 

 우리가 똑같은 일을 언제나 반복한다는 것은 지루하고 정신을 좀먹는 일일 것이다. 경찰관이나 여권국 관리들은 모두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해 동안 반복되는 짜증스러운 일을 마치 첫번째이기라도 한 듯이 완전히 긴장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끈기있게 개개의 여권을 기록하고 통제한다. 

 나는 양치식물과 나무줄기 그림자의 선을 적당히 그려 넣었다. 나는 두껍게 뒤엉킨 나무줄기와 두 개의 돌기둥 사이로 산속의 요정들에게로 통할 듯한 입구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깊은 암흑이 깃든 이 심연을 흰 종이 위에 연필로 검게 그려 넣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그림자의 선을 긋고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림배경이 갑자기 변해 있어 나는 깜짝 놀랐다. 서까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짙은 지하실에서 아름다운 촛불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촛불은 조금있다가 꺼지고 그 지하실에서 키가 크고 바싹 마른 사나이가 기어올라왔다. 

 나는 여러 번 스케치를 했었던 이 옛 암벽 지하실이 누구의 것인지를 몰랐었다.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지하실에서 기어나온 사람은 몬타놀라에 사는 늙은 치오 마리오였다. 그는 문을 아직 닫기도 전에 나를 알아차리고는 펠트 모자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테씬의 나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스럽고도 우아한 예의를 지키는 친근감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그는 뼈만 남은 갈색 얼굴로 온화하게 미소 지으면서 정중하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가까이 다가와 도화지를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테씬 지방에서는 이렇게 정중한 예의범절이 나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이 남쪽에서의 생활을 가볍고도 명랑하게 해주는 몇 안되는 일에 속한다. 우리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내가 다시 도화지 위에 몸을 굽히고 스케치를 계속했다면, 그는 더 이상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나의 일에 존경을 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걸어가서 악수를 하고, 포도와 염소들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그는 자기 지하실에서 포도주를 한잔 마시자고 나에게 권하였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가 오전에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전혀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지하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오래되어 둥글게 된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그 노인이 주위를 거금거리더니 촛불을 끄집어내어 불을 붙였다. 교회당처럼 아름다운 벽돌을 쌓아올린 지하실을 자랑스럽게 구경시켜 주었다. 주요 통로는 30미터쯤 산 속으로 뚫려서 튼튼한 벽으로 잘 싸여 있고, 그보다 훨씬 뒤에서 인공적 아치가 끝이 났으며, 통로는 모래와 자갈길로 훨씬 깊이까지 뻗쳐 있었다.

 나는 지하실의 그 벽과 시원한 냉방을 칭찬하였다. 포도주를 마셔보라고 다시 한 번 권했으나 내가 받아들이지를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금 조그만 촛불 빛을 받으며 천천히 황금색의 숲 속 아침 햇빛 속으로 걸어나왔다. 우리는 거기에 한동안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리오는 외관상으로 볼 때,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는 살아가기가 아주 곤란했던 가난한 농부였다. 옛날에 테씬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거의 그러했듯이 그도 미장 일을 배웠고, 젊은 시절에 오랜 세월동안 일을 찾아 키일과 제네바와 프랑스 등 타향에 가 있었다.

 그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그는 아버지의 얼마 되지 않는 땅을 상속받았다. 그는 근면한 생활과 절약으로 약간의 산을 샀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자신의 손으로 수십 년간 개간하여 초원과 포도원을 만들었다. 소 한 마리와 염소 네다섯 마리, 옥수수와 메밀을 심은 길쭉한 밭, 나머지는 밤나무와 포도를 재배하였다. 그는 기나긴 세월을 매년의 수확에 따라 때로는 검소하게 또 때로는 보다 풍족하게 살아갔다. 

 

 마리오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마을에 정착하여 어떤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이방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스케치나 하고 수채화나 그리는 것으로는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를 하며, 산보를 하고 조그만 카네이션과 용담꽃 다발을 집으로 들고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끔씩 나와 이야기를 나눌 뿐, 그 이외에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내 생활과 내 일을 비밀이 되어 있다. 겉으로 볼 때, 그는 산보나 하는 낯선 사람을 악의 없는 무위도식가로나 간주할 만한 단순하고도 순진한 농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맞는 말이 아니다. 실제에 있어서 마리오는 내게 낯선 존재가 아니며, 나와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마리오는 마을에 살고 있지만, 그의 땅은 마을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곳에다 그는 수십년 전에 오두막을 하나 지었다 .그 오두막은 아주 낡아 거기에 포도넝쿨과 나무짤기가 올라가 있었다. 오두막 옆에는 습기찬 작은 골짜기에 조그만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서늘한 곳에 그는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조그만 장소를 마련해 놓고 벤치와 돌로 된 탁자를 세워놓았다. 봄이 되면 아카시아 꽃잎이 떨어져 내리는 그곳에서 어느 한 친구와 함께이든, 아니면 혼자서이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포도주를 음미하며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즐겨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가을에는 잘 삶아진 식용 버섯으로 만든 요리를 즐겨 먹으며, 훌륭한 포도주를 즐거이 마신다. 이러한 모든 일을 그는 아주 현명하게 행하고 있으며, 노동 이외에 쾌적한 시간을 많이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1백그램의 버지니아 담배를 정확히 1주일을 피운다. 그는 언제나 신선한 담배를 피우기 위해 결코 그 이상을 사는 법이 없다. 일요일과 축제일에도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만든 포도주를 마실 뿐만 아니라, 동네 집에서 피에몬테스 포도주를 반 리터나 1리터를 마시기도 한다.

 전에는 나이가 같은 동료들과 공놀이를 자주 했는데 지금은 이러한 것을 모두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조용하면서도 건전한 인생의 향락에 이런 욕망과 더불어 그의 재질과 취미가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마리오는 그 외에도 전부터 마을의 보수적인 음악협회인 '필하모니'에서 호른을 불었다. 취주 음악과 시골 축제의 파티에 대해서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이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서 특히 좋아하는 것이 또 한 가지가 있다.

 30년 전에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더 낡은 오두막 앞면을 그는 금년에 새로 단장을 하고 석회칠을 하였는데 벽에 겉칠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를 않았다. 그는 화가인 페트리니를 초청하여 담벽 위에 베들레헴 마굿간의 성스런 가족을 그리도록 했다. 마리오의 집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복숭아나무 사이로 부드럽고도 밝은 마돈나와 고요한 갈색의 요셉, 성스런 아기와 구유 곁에 있는 순한 동물들이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리오가 내 인생을 올바로 상상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또 나 자신이 그의 고된 막일과 절약과 검소함으로 가득찬 인생에 대해 몹시 피상적인 상상만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는 내가 그의 심오한 취미와 즐거움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 두 늙은이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정확히 느끼고 있다.

 1주일에 정확히 1백그램의 버지니아 담배를 피우는 것, 훌륭한 식용 버섯 요리를 먹은 다음 졸졸 흐르는 시냇가의 나무 아래 놓인 돌 탁자 앞에 앉아 있는 것, 일요일에 마을 음악회에서 호른을 연주하는 것, 그리고 담벽 위에 그려진 성스러운 마돈나 그림을 보는 기쁨을 누리는 그를 나는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선생님"

 마리오가 내게 말했다.

 "인생은 가혹합니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저녁에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일요일에 얻은 여가를 음악으로 즐기는 내 인생은 모든 것이 잘 되어 간다고 봅니다."

 우리는 굳은 악수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캔버스 위에 몸을 굽혔다. 이것이 실패작이 된다 하더라도 마리오의 지하실 문이 그려진 이 그림은 내게 한없이 즐거운 기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