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헤르만헤세(Hermann Hesse)

 

 깊은 밤. 그대는 침대에 누웠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거리는 고요하고, 정원에서는 가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간다. 그 어디에선가 개가 짖어대고 있고, 어느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는 한 대의 마차가 지나간다. 그대는 그 소리에 주의깊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 흔들거리는 소리로도 그것이 스프링으로 된 마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대는 상념 속에서 계속 그 마차와 함께 달려간다. 마차는, 모퉁이를 돌더니 갑자기 속력을 내어 질주한다. 성급하게 구르는 마차는 곧 거대한 고요 속으로 바퀴 구르는 소리만 남겨둔 채 차츰차츰 사라져 버린다.

 그 다음에는 때 늦은 보행자가 나타난다. 그는 재빠른 동작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그의 발소리는 이상스럽게 텅 빈 거리에 메아리친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다시 문을 닫는다. 또다시 거대한 고요가 찾아든다. 한 가락의 조그마한 생명의 소리가 들려나온다. 그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아득히 멀어져간다.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잠잠해 버리고, 아주 나직한 바람소리와 양탄자 아내에서 흘러 내리는 모르타르 입자 소리가 점점 뚜렷해져서 그대의 감각을 자극하는 시간이 몰려온다. 시간이 자꾸 흘러가는데도 잠은 오지 않는다. 다만 피로감만이 두 눈과 상념들 사이로 미세한 장막을 친다. 그러면 그대는 끊임없이 흐르는 피가 귓전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점점 고통스러워지는 머릿속에서 끓어오르는 미세한 생명의 소리를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사방에 흩어져있는 혈관에서 규칙적이긴 하지만 혼잡해진 듯한 맥박의 고동소리도 느끼게 된다.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거나 일어나서 서성거리다가 다시 누워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그대 자신에게서부터 헤어날 수 없는 무수한 시간들 중의 하나이다. 여러 가지의 생각들과 상념, 회상의 동요들이 그대의 내면을 지배하게 된다. 지금 그대에게는 예전처럼 이러한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거나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타향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고향과 어린 시절의 집들, 그리고 정원이 아련하게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가 자유롭고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년시절을 보냈던 숲들과 마음껏 장난을 치며 뛰놀던 계단까지 생각이 난다. 또한 지금은 낯선 것 같기도 하지만 주름진 눈가에 사랑과 근심, 그리고 어느정도는 나무라는 빛을 띤 부모님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에게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고독이 엄습해 오고 그 위에 자꾸만 다른 영상들이 겹쳐진다.

 

 이런 시각, 어떤 감정에 진지하게 사로잡힌 기분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젊은 시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사랑을 거부하고 호의를 무시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그 누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 놓은 행복을 반항과 자만심으로 인해 놓쳐버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경외심을 손상시켰거나 경멸한 말을 하고, 추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친구들에게 고통을 한번도 준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제 이들 모두가 그대 앞에 서서는 아무 말없이 조용한 눈길로 그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그대는 그들 앞에서 그리고 그대 자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대는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뇌, 그리고 쾌락으로 가득찬 밤들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바로 이 침대에서 잠들었던가 하는 생각에 잠길 것이다. 그리고 오늘밤처럼 그대 자신을 과묵하고 꾸밈없는 동료로 생각하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으리만큼 오래 되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대는 이제껏 분별없이 무의미하게 살아왔으며, 최근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고, 말하고, 듣고, 웃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이 느껴지며 낯설어져서 그대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그대의 유년시절의 파란 하늘과 이미 오래전에 잊혀진 그대 고향의 추억들이 연이어 꼬리를 물 것이다. 그리고 벌써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대에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현실의 존재가 된다. 

 

A winter scene with figures skating on a frozen river (1885) by Nils Hans Christiansen

 

 잠은 자연의 가장 값진 보시(布施)중의 하나로써 그것은 그대의 친구이자 영원한 동반자이며 조용한 위안자이다. 계속되는 불면의 고통을 아는 자, 반 시간정도 열벙처럼 졸다가 겨우 잠이 드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모두가 진실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나는 자기 생애에 있어서 단 한번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인간을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천진스러운 영혼을 가진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마비되어가는 우리의 빠른 인생에 있어서 영혼이 자신을 의식할 수 있는 시간, 이를테면 감각의 생활과 정신의 생활이 밀려나고, 영혼이 진실되게 회상과 양심의 거울 앞에 마주서게 되는 시간이란 거의 없다. 이러한 일은 아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체험할 때에만 일어날 것이다.

 어쩌면 죽음에 임박한 병상에서나 어머니의 관 옆에서 혹은 길고도 고독한 여행을 하고 난 후에 집으로 돌아온 처음 몇 시간 동안에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보통은 늘 방해와 혼탁함 속에서 진행된다. 바로 여기에 잠 못 이루고 지새운 밤들의 가치가 있다. 

 이러한 밤들에 있어서만이 영혼은 특별히 회부의 충격 없이도 올바른 곳으로 갈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비록 놀라움이나 두려움, 비극으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낮 동안에 영위하고 있는 정서생활은 그다지 순수하지가 못하다. 

 우리는 언제나 감각의 활발한 움직임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이성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섬세한 조화를 이루어 간다. 반쯤 졸고 있는 영혼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은 이러한 예속과 억압상태에서 여러 날, 여러 달 동안 부자연스런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육체는 잠들고 영혼만의 시간인 밤이 찾아오게 된다. 근심스럽게도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현실의 사슬을 풀어버리고 생명감으로 넘치는 영혼의 충만감에 놀라게 될 것이다. 때때로 우리 인생이 형식뿐만은 아니라는 점, 우리가 우리 내면에 모든 외적인 것에 의해 작용되거나 변화되지도 않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우리 내면에서 속삭이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는 것 또한 유익한 일이다. 진실된 자와 그 어떤 신앙을 가진 자는 기꺼이 이러한 목소리에 경의를 표하고, 심오해진 견해를 지닌 채 그러한 시간들을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병으로써의 불면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쓸데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미처 이야기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을 기꺼이 읽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잠을 이루게 하지 못하는 상태가 가져다주는 내면의 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에 있어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는 예민함과 섬세한 관용을 나타내는 인간에 대해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은 몹시 괴로워했음에 틀림없어.' 라고 말한다.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데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 섬세하게 생각할 수 있고 관용을 베푸는 일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부드럽게 관찰하고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사물을 신중하게 바라본다.

 영혼을 깊숙이 꿰뚫어보고 인간적인 모든 약점을 선한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의 고독한 정적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사고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도 여러번 밤을 뜬눈으로 새하얗게 지새우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면에 대한 또 하나의 가치는 다른 관계에서도 더욱 상세히 관찰될 수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사물에 대한 경외심의 집합을 의미한다. 즉 검소한 인생에 향기를 쏟아부을 수 있는 경외심의 집합체이다. 

 잠 못 이루는 시간에 침대에 누워 가만히 모든 것을 상상해 보라. 시간은 묵묵히 지겨우리만큼 천천히 흘러간다. 처음 치는 종소리와 다음 시각에 울리는 종소리 사이에는 견디기 힘든 넓고도 검은 심연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자주 한 마리의 쥐가 나무를 갉아 대는 소리, 마차가 삐그덕거리며 굴러가는 소리,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 분수가 흘러 넘치는 소리, 그리고 바랍소리와 가구가 내는 소리 등을 듣는다. 우리는 그것들에게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그 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고독과 영원한 고요 속에서 그리움에 가득찬 마음으로 옆을 스쳐가는 모든 생명의 입김에 바짝 붙어 있다. 우리는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무게와 생긴 모양, 말들의 피로함이나 마차를 끄는 힘을 어렴풋이 추측해 본다. 그리고 그 마차가 달리고 있는 골목길의 정확한 거리를 알아맞히려고 노력한다.

 그게 아니면 치솟아오르는 분수에 모든 생각을 집중시킨다. 우리는 환자가 자신을 문병온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부드러운 음악인 양 경청하는 마음으로 분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줄기로 가득찬 분수가 아래로 떨어지고 수조(水槽)보다 유연하고 불규칙적으로 흘러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 끊임없는 속삭임 속에서 하나의 리듬을 찾아내어 박자를 맞추고 흥얼거려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분수가 혼자 노래하는 소리를 음미해 본다.

 우리는 마치 꿈을 꾸듯, 시냇물과 강물을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을 생각하고 새로운 생성과 사멸과 다시 영원한 생성을 생각한다. 그 너머에서 몽롱한 사상의 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며 복잡하게 헝클어진 듯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그 모습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하나의 분수에 귀를 기울이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건의 논리성에 대한 경탄과 베일로 가려진 인생의 최후의 비밀에 대한 경외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러한 밤 시간과 같이 인내심있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분명 고통 속에서 덕망을 창조해냈음에 틀림없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괴로움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적절한 시기에 치유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나 경박한 모든 사람들과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가끔씩 그들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찾아와서, 내면 깊숙이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밤이 되었으면 한다. 

 

 River landscape in winter - Frits Thaulow(1847 -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