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종교에 매료되는가?

 

전 세계 인구의 80퍼센트가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가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종교에 의해 이러저러한 혼란과 소동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지만, 

인간은 동굴벽화를 그리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신을 열망한다. 

인간의 뇌가 종교를 추구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일까? 

종교는 인간의 뇌에 어떤 만족을 주는 것일까?

 

○ 답을 추구하는 뇌와 종교


뇌는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막연한 것보다 분명한 것을, 불균형하고 비대칭인 것보다

균형과 대칭 상태를 좋아한다.

컵과 접시는 나란히, 공구들은 제자리에 있길 원한다.

어떤 이야기든 반드시 결말이 있어야 하고, 질문에는 답이 있어야 하고, 의심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답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죽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사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등등.

 

종교적 믿음은 이런 질문에 답을 주고, 완결된 결말과 질서를 제공한다.

 

뇌는 의심하는 것보다 믿는 데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뇌는 상상하고, 믿고,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 평등을 추구하는 뇌와 종교 


인간은 평등주의적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평등한 듯 뛰어 놀던 어린아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서로의 권한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업무와 위계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퇴근 후 기진맥진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종교 안에서는 사장과 직원이 평등해진다.

같은 신앙 안에서 함께하는 동안 현실세계의 위계질서는 잠시 사라진다.

물론 다음날 이 둘은 각자의 권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 안에서 한두 시간 동안, 이 둘은 전적으로 평등하다.

그것은 우주의 가장 위대한 힘(즉, 신)이 인정한 평등이다.

일반적으로 종교 모임에서 느끼는 이런 평등의 신호는 가족관계에서도 작용한다.

아버지들보다 어머니들이 종교 활동에 더 적극적인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어머니의 행동을 제지하기에 앞서,

집안에서 그 어머니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 공감을 추구하는 뇌와 종교


인간의 뇌는 사회적이다.

뇌는 완전히 독립된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자기 자신이 실제로 육체적 고통을 겪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그대로 반응한다.

전두피질, 후두정엽 영역에 분포하는 거울 뉴런 때문이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행동처럼 느끼고,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뇌는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들이 신중하게 동료를 택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은 바로 이런 타인의 영향,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같은 신을 믿어’, ‘우리는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뇌의 작용 때문인 것이다.

 

○ 평안을 추구하는 뇌와 기도


기도하는 사람은 덜 긴장하고, 마음이 더 편안해지며, 개인적 자신감이 더 커진다.

기도하는 동안 뇌를 스캔한 영상을 보면 감정, 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과 사고, 연상, 인식 기능을

담당하는 하두정엽이 활성화된 것을 볼 수 있다.

기도는 매우 조용히 이루어지지만, 뇌는 무척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뇌가 활성화되어 감정 조절과 사고, 인식 기능, 기억력이 향상된다.

따라서 기도는 신을 만나는 행위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자신의 뇌와 마음을 달래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또한 기도는 고통을 줄이는 좋은 약이 되기도 한다.

고통을 느끼는 시작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와 같은 종교의식은 운동처럼 열심히 반복해야만 그 효과를 지속시킬 수 있다.

긍정적인 효과가 단기에 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식을 마친 사람들이 다시 골칫거리로 가득 찬 현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 뇌의 위안과 인간의 선택


인간의 뇌는 분명히 종교에 의해 위안을 얻는다.

최소한 종교를 갖고만 있어도 뇌는 위안을 얻는다. 종교적 믿음은 자존감을 줄 뿐 아니라,

놀랄 만한 대담함과 창의력을 이끌어낸다.

종교만큼 인류의 지성과 예술을 자극하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던 것도 없다.

또한 종교는 결혼, 출산, 자녀 양육 등 심리적인 동요가 발생하는 인간의 삶 곳곳에 개입하고,

그들의 삶을 후원하고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고, 혹은 도피하고 종교에 극도로 빠졌을 때,

인간이 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했을 때,

얼마나 절망스러운 상황(불신, 원망, 미움 등)과 결과(전쟁, 테러, 살인 등)를 가져오는지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믿음은 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어떤 믿음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인간의 뇌가 하나의 믿음을 선택하여 각인시킨 이후

그 믿음을 바꾸는 일은 열정적 관계의 연인을 바꾸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은 뇌의 창조물, 뇌과학이 밝혀내는 믿는 뇌의 메커니즘(God s Brain)

 

뇌는 신을 만들고, 신은 뇌를 만족시킨다

세계 성인 인구의 80%가 신앙인이며, 그들이 종교활동에 쓰는 시간은 하루에 104억 시간이다.

왜 이렇게 엄청난 시간을 종교에 쓰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은 뇌를 만족시킨다. ‘신’은 죽음에서부터 충동을 억누르는 연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삶의 고통을 다스리거나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뇌 속에는 신과 관련된 그 무엇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사후세계, 지옥, 천국, 악마, 천사, 그리고 교만과 우월감이라는 이 놀라운 관념을

뇌 말고 무엇이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우선 상상하고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도들은 내세(또는 천국)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면죄부를 돈으로 샀다.

오늘날 한국, 미국 등지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종교단체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다.

 

천국이나 구원이 있다는 설정은 대단히 유혹적이다.

내세의 삶이 약속된다면 사람들은 억만금이 든다 해도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아마도 종교의 가장 강력한 대표 상품을 들라면 ‘내세’가 아닐까?

 

종교가 매혹적인 ‘구원’을 이야기하며 유혹할 때 사람들은 종교적 믿음을 간절히 갈망한다.

믿음은 우리가 자주 무시하는 뇌의 ‘편견’에 의해 지속된다.

편견 때문에 뇌는 자신의 믿음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증거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뇌는 불편함을 느끼면 스스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만약 그 불편함을 오랫동안 해소하지 못하면, 뇌의 주인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마법사의 저주를 받은 호주 원주민이 스트레스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이른바

‘부두 데스(voodoo death)’가 그런 경우다. 우리의 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종교는 도덕규범을 뇌에 주입한 후 신도들에게 스스로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하게 하고,

규범을 어기는 자는 죄의식으로 고통받고 회개를 갈구하게 만듦으로써 이들이 뇌의 위안을 찾아

매주 자발적으로 성당이나 교회에 나오게 만든다.

 

○ 신은 뇌를 위안해준다(brainsooting)


신은 뇌가 정말 궁금해하는 존재의 원리와 이유 혹은 사후세계에 대해 설명해주고, 

불편함을 해소해주며, 만족감마저 준다. 

미래 혹은 내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삶은 뇌에 스트레스를 준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휴일, 휴가, 운동, 잠, 오락, 마약, 알코올 같은 것들에

의존하지만 일시적일 뿐, 이때 종교가 손짓한다.

그리고 말한다. 내세의 삶이 있으니 의심을 풀라고. 믿음으로써 구원 받으라고.

 

이렇듯 종교는 ‘믿음’을 분비한다. 종교활동을 하는 동안, 사람들의 뇌는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샹그릴라를 경험하는 듯한 초월적인 느낌을 받는다.

종교는 뇌의 생화학 체계 자체를 바꾼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기능이 아닌가?

 

○ 우리가 교회나 절에 가는 이유, 기도나 명상, 영적 체험을 하는 이유


종교의식, 기도, 명상 등 종교활동은 뇌의 화학작용을 일시에 변화시킨다.

예로, 기도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감정·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과 사고·연상·인식 기능을 하는

하두정엽이 활성화된다.

기도는 매우 조용히 이루어지지만 뇌는 강렬하게 반응한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뇌가 활성화되어 감정 조절과 사고 인식 기능, 그리고 기억력이 향상된다.

따라서 기도는 신을 만나는 행위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자신의 뇌와 마음을 달래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이 부흥회나 종교의식을 빈번하게 실시하는 이유는 사실상 신도들의 뇌를 달래고

지속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강렬한 정서적 변화를 일으키는 종교 부흥회와 종교의식은

사회적 뇌 영역들(전두피질, 전두대상피질, 해마, 편도, 소뇌, 뇌섬엽)을 활성화시켜

신도들의 감정과 기억을 지배하며 내세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복종을 가능케 한다.

 

신앙인들은 뇌를 안심시키고 뇌에 활력을 주면서 뇌에 영향을 미치는 종교활동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것은 주로 세 가지 수단 즉, 종교적 교류, 의식, 믿음을 통해서다.

‘종교적 교류’ ‘의식’ ‘믿음’이라는 삼총사는 신앙인들의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확실히 줄이는, 일종의 클럽하우스 역할을 한다.

온화하고, 편안하며, 반복적인 종교적 교류는 뇌에서 불길한 공포감을 없애준다.

이때 전두피질, 전운동피질, 해마 같은, 타인에 대한 ‘마음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거울 뉴런이 작동한다.

 

“우리는 똑같은 신을 믿어” “우리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교회 친구와

분위기에 뇌가 쉽게 압도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또한 종교의식은 신체를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종교의식은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뇌에 집중되는 것을 분해한다.

무엇보다 종교의식은 혈압을 떨어뜨린다. 연구에 따르면,

혈압 감소 효과는 식물 가꾸기나 애완동물 보살피기를 할 때도 발견된다.

이 때문에 빡빡한 도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화초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듯 신체에 미치는 종교활동의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신앙은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된다.

이와 더불어 종교적 믿음은 복잡한 인간 존재와 사회적 삶을 단순화하는 데 확실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믿음은 삶의 복잡성 때문에 초래된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명료함과 정신적 질서의 실제 근원이 무엇이든 간에, 부산하고 혼란스러운 삶에 대한 성스러운 설명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종교의식이 신체를 편안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게 믿음은 뇌를 편안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런 종교의 작용 때문에 매주 교회나 절을 찾아 뇌의 위안 효과를 연장하려 한다.

종교활동을 하면서 "신과 하나 됨을 느낀다…

일상생활의 그 어떤 것도 이렇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구체적인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은 종종

논리와 경험적 타당성이 약한 종교를 신봉하거나, 자신의 종교가 진실되고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렇듯 종교활동을 하는 동안 뇌 신경회로의 활성화와 신체-정신적 변화,

기도나 명상, 영적 체험의 진실, 종교적 메시지의 뇌 위안 효과와 ‘믿는 뇌’의 작동 메커니즘 등

인간의 신앙 욕구가 뇌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또한 일상의 근심과 공포를 다스리기 위해 인간이 어떻게 종교를 활용하는지,

현대 의약품과 치료법을 쓰지 않고도 종교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건강과 장수에

도움을 주는지 등 뇌가 종교의 원천임을 뇌과학으로 규명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의 진정한 ‘구원’이란 사실상 초월적인 것이라기보다 ‘생물학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종교적 열정과 믿음에

‘뇌’가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새로운 발견이다.

 

 

○ 세계의 모든 종교는 '믿음'과 '위계질서'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신학자와 신경과학자는 믿음에 주목하고,

사회학자들은 위계질서, 즉 종교가 가진 매우 위계적인 성향에 주목한다.

가령 종교의 기능을 불평등한 현실과 대면하는 것(에밀 뒤르켐) 또는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카를 마르크스)으로 해석한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지닌 상부구조적 문화 특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종교의식은 사회조직 내에서 복종과 지배관계를 구축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간주된다.

 

"종교는 영감,경외,공포,신비의 근원이다.

종교는 헌신,연민,희생,복종,자원,시간,노동을 요구한다.

종교만큼 인류의 모든 예술을 자극하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햇던 것도 없다.

종교는 중세의 가톨릭 교리에 반기를 든 학문과 예술마저도 자극했다.

종교는 위안을 주는 영원한 내세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면서,

동시에 그 열정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지옥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또한 종교는 비신앙인들을 불안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임종 시에 종교에 귀의하도록 만들기도 한다."(40쪽)

 

진화론의 눈으로 종교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다음 세 가지 입장으로 구분된다.

 

첫재는 에드워드 윌슨처럼 종교가 인간 집단이나 개인의 생존에 순기능을 한 결과 선택되어 진화했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처럼 종교가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반복된 행동에 의해하나의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전달되는 밈(meme)으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인류학자 라이오넬 타이거와 신경과학자 마이클 맥과이어는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종교에 접근한다. 이들은 모든 종교는 인간 뇌의 산물이며,

이런 종교가 다시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종교가 존독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종교, 무신론과 유신론, 자연주의와 신앙주의의 충돌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종교적 믿음을 그저 망상으로만 간주할 수 없는 이유는

믿음과 상상력이 우리에게 미치는 실질적인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뇌는 상상하고 믿고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기본적으로 뇌는 의심하는 것보다 믿는 데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일단 뇌가 뭔가를 상상하면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을 현실로 취급해야 쉽게 행동으로 옮겨진다.

상상은 선택하게 하고

이런 행동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인생은 혼란과 동요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혼란과 동요는 뇌에 스트레스를 준다.

뇌는 믿음을 분비하여 고통을 없애고 편함을 추구하게 된다.

종교는 바로 그런 위안의 역할을 한다.

모든 종교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스토리가 뇌를 즐겁게 한다.

종교적 스토리는 경전, 신, 교리, 행동규범들로 구성된다.


"종교적 믿음은 자부심과 사회적 효능감을 높여주며,

관계를 촉진하고, 한 집단 내에서 신뢰를 제고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이 특별한 뭔가는 마친 넒은 공간을 특별한 냄새나 향, 분위기로 가득 채우는 마법의 에어로졸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의 이 특별한 뭔가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기처럼 대단히 포괄적이고

비구체적이지만 아주 쉽게 느낄 수 있고 영향력까지 있기 때문에 거의 영적이다"(96쪽)

 

 

○ 뇌가 상상한 것이 현실이 된 경우는 많다.

 

문서에 따르면 런던, 프랑스, 세일럼, 매사추세츠에서 합법적인 마녀사냥이 있었다.

수많은 법정에서 마녀로 고발된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일이 실제로 무자비하게 자행되었다. 

최근에도 새로운 UFO 목격담, 새로운 음모 이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는 수십여 종의

가짜 치료법들이 나오고 있다.

 

종교적 권위가 높은 사람은 속이는 데 유리하다. 

특히나 자신의 메시지가 ‘신’에게서 왔다고 전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반대로 위계구조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믿기 쉬운 위치에 있다. 

이들이 그렇게 기꺼이 믿는 것은 기만에 대한 경계를 일시 중지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과 호혜 관계를 형성하면

기만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설마 신이 속이기야 하겠는가?

 

첫눈에 데이트 상대와 적을 알아보고,

고통스러운 혹은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고통과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전두피질, 후두정엽 등 영역의 거울 뉴런 때문이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행동처럼 느끼고, 타인에 대한 ‘마음읽기’를 가능케 한다.

 

“우리는 똑같은 신을 믿어” “우리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교회 친구와

분위기에 쉽게 이끌리는 이유는 이런 거울 뉴런의 작용 때문이다.

 

종교적 믿음과 행사가 계속 반복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해마와 전전두피질은 기억의 강화와 저장을 관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 영역이 다시 편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중요한 사실은,

기억은 감정의 영향을 받으며, 매우 감정적인 순간에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매우 연극조로 거행되며 편도를 활성화하는 종교 부흥회 같은 종교행사가 이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sd1776/220079581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