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원을 본 적이 있을까? 

국화와 장미 예쁜 사루비아가 

끝없이 피어있는

언제든 그 문은 열려 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사람의 마음 속엔 하나씩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개나리가 끝도 없이 만개한 정원, 누군가는 철쭉꽃이, 장미가, 백일홍이, 금불초가 끝도 없이 펼쳐 있는 넓은 정원일 것이다. 누군가의 정원은 꽃이 거의 피어있지 않고 닫혀있을 수도 있다. 이 노래를 부른 당사자의 정원은 국화와 장미, 그리고 사루비아가 피어있다고 한다.


 국화의 꽃말은 색에 따라 다르다. 빨간 국화는 진실, 노란 국화는 짝사랑·실망, 하얀 국화는 성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장미 또한 빨간 장미는 열렬한 사랑, 노란 장미는 영원히 질투하는 사랑, 흰 장미는 청순함과 순결함을 뜻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루비아의 꽃말은 불타는 마음, 정열 등이며 '나의 마음은 불타고 있습니다'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요약해 보자면 그의 정원에는 누군가를 순수하게, 그리고 진실로 짝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 사무치는 그리움의 정도는 언제나 열렬히 불타오고 있는 것이다.




[나의 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조각구름과 빛나는 별들이 

끝없이 펼쳐있는 

구석진 그 하늘 어디선가 

내 노래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사람마다 하나씩 가진 하늘도 그 종류가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의 하늘은 하루종일 먹구름이 끼어 간간히 세찬 비가 내릴 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햇살이 창창한 오후 두 시쯤의 하늘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하늘은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함박눈이 종일 쏟아지고 있을 수도, 누군가는 아침 일찍 태동을 준비하는 태양을 머금은 새벽 하늘일수도, 누군가는 검푸스름한 어두움이 쌓이기 시작하는 노을진 저녁 하늘일수도 있다.


 이 사람의 하늘은 아주 맑은 밤하늘이다. 조각구름이 보이는 밤하늘에 별들만이 끝없이 수놓아 있는 하늘 그 어디에선가, 어느 한 사람을 향하여 부르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한다. 


 이 노래의 제목은 '너에게'이다. 직접적으로 2인칭의 '너'를 지칭한 제목으로서 그 한 사람을 향하여 묻고 또 이야기해 줄 것이 있는 노랫말인 것이다. 이 사람은 묻고 있다. 

[넌 알고 있는지...?] 

 나의 정원이 너를 향해 활짝 열려있고, 나의 구석진 하늘은 그 어디선가 널 부르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음을 너는 알고 있을지 사무치는 그리움의 마음으로 묻고 있다. 그러나 그 노래의 주인공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의 어릴적 내 꿈 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네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 오면 

내 여린 맘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줄게.]


 모두의 어린시절은 찬란했다. 우리는 하루종일 여치와 방아깨비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내일이면 무너질 놀이터 모래성을 쌓으면서도 지치는줄 몰랐고, 다가올 날들은 그리 걱정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꿈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자신만의 이야기로, 혹은 직업으로, 자기만의 가능성으로, 각자마다 모양도 색깔도 다르게 꿈이 있었다. 지금은 사그라들고 형체조차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그 꿈은 참 아름답고 찬란했다.


 이 노래에서 그러했던 꿈은 곧 아름다운 가을 하늘에 비유된다. 가을에 바라본 하늘은 사계절 중 가장 높고 청명하다. 그렇게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과 손을 잡고 온다 한다. 가는 시각은 아마 [고요한 달빛으로]라는 가사에 비추어볼 때 깊은 밤중일 듯 싶다. 가을의 밤하늘, 그 하늘은 복수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하늘에 담겨진 조각구름과 수많은 별들, 간간히 떨어지기도 하는 별똥별까지도 모두 함께 온다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사실은 가사에는 '내게 오면'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 창가에 은은한 달빛이 이미 도착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왜 '고요한 달빛'으로 왔을까? 때로는 작열하는 햇살로, 혹은 집채만한 파도를 일으켜 세우는 바람으로 간다면 더욱 그를 인식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누군가를 애달파하는 그 마음은 모두가 잠이 든 밤 중, 어쩌면 그 사람마저 잠이 든 한밤 중에 소리소문 없이 찾아왔다 이내 떠나가는 말없는 달빛에 가장 잘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마음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조차 그 사람이 놀라 떠나갈까 두려운 마음과, 절대로 거절당하기만은 원치 않는 마음과, 그 사람에게 손톱만큼의 그 어떠한 피해라도 끼치고 싶지 않는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내 여린 맘으로'의 가사에는 후에 이어지는 '피워낸', '꺾어줄게...' 등의 가사로 보아 나무에 비유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문득 도종환 시인의 '여린 가지'라는 시가 생각난다. 


여린 가지

                       도종환


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

둥치가 굵어지면 나무껍질은 딱딱해진다

몸집이 커질수록 움직임은 둔해지고

줄기는 나날이 경직되어 가는데

허공을 향해 제 스스로 뻗을 곳을 찾아야 하는

줄기 맨 끝 가지들은 한겨울에도 푸르다


모든 나무들이 자정에서 새벽까지 견디느라

눈비 품은 잿빛 하늘처럼

점점 어두운 얼굴로 변해가도

북풍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가지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엄동에도 초록이다

해마다 꽃망울은 그 가지에 잡힌다


 여린 가지는 줄기의 맨 끝에 달려있어 허공으로 끊임없이 제 살길을 찾아 스스로 뻗어나고 자라야 한다. 줄기에서 멀어 영양분도 제일 닿지 않아 고달프다. 그러나 언제나 꽃망울이 달리는 곳은 그 여린 가지 끝이며 그 색깔은 엄동설한 중에도 초록이다. 


 이처럼 그의 마음도 여린 가지처럼 혹독하고 위태로운 나날을 겪으며 꽃망울 하나를 피워냈을 것이다. 그 여린 가지 하나를 꺾어 너에게 준다 한다. 그 꽃망울 달린 가지에는 차가운 눈보라와 바람을 견디어 낸 수많은 새벽의 시간들이 담기어 있다. 받는 이는 그 시간들을 알기나 할까? 아마 달빛과 함께 창가에 굴러떨어진 여린 가지를 보고, 그 꽃망울이 보잘것 없어서, 혹은 가지가 생각보다 너무 가늘고 여리기 때문에 이내 창밖으로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은 오로지 그 사람의 몫이 되는 것이다.


 '너에게'라는 곡은 김광석의 곡 중 내가 어쩌면 가장 사랑하는 노래일 것이다. 그의 곡들을 내 안에서 순위매김 할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너무나 어렵게 더 좋아하는 곡들을 꼽으라면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함께 '너에게'를 꼽을 수 있다. 이 곡은 '김형석'씨의 작사이며, 1집 앨범의 타이틀 곡이다. 나는 1집앨범에 실린 버젼은 그닥 좋아하지 않고, 수많은 영상들 중 딱 하나의 저화질 영상에 남겨진, 노영심 후배의 짓궂은 부탁에 당황해 하며 "하도 오랜만에 해서 잘 될지 모르겠네요..." 하면서 세상에서 최고로 잘 부르신, 1절과 2절을 바꿔 부르시고 도중에 음이탈도 한 번 나셨던... 이 영상 속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영상은 보고 들을 때마다 나를 짧은 시간에 정원으로, 가을 밤하늘 별들 사이로, 달빛이 비추이는 창가로 여행시켜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