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


Q: 현대엔지니어링 직원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리틀 히어로’로 선정된 기분이 어떠세요? 


A: 제가요? (웃음) 제가 특별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소심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겁내지 말아야 해요. 영웅을 찾는 것 자체가 좋지 않다고 봐요. 내가 만나는 사람을 오히려 ‘작게’ 봐야 내가 커지니까요. 바깥쪽에 큰 것을 두지 않고,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을 두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본인 스스로 영웅이 되는 거예요.


Q: 그래도 특별히 현대엔지니어링 임직원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뭘까요?


A: 아무래도 같은 공학도 출신이라서가 아닐까요? 공대생의 미덕, 심플함 때문에요. 공대에서 철학과로 전공을 바꿔서 대학원에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들어보고 다 걷어내면 꼭 필요한 말은 100 중에 1 정도더라고요. 근데 공대생은 기질 상 100을 말해야 하는데 50만 말하죠. 근데 이게 저한테는 더 좋았어요. 제 강의나 글이 실용적이에요. 남들보다 말을 적게 하되 해야 할 말만 하는 거죠. 


Q: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열심히 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A: 지금까지 30권가량의 책을 썼는데 그중에서 10권을 쓸 때까지 아무도 알아봐 준 사람이 없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그걸 찾아서 10년을 꾸준히 하면 그걸로 세상이 알아줘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좋아하는 일이 돈이 되지 않으면 중간에 그만두죠. 사람들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요. 하지만 애정이 있는지를 물어야 해요. 그걸 적성이라고 하는 거죠. 영혼 없이 일하면 10년을 일해도 중간 이상을 못해요. 그게 슬픈 거죠.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대충 좋아하지는 않잖아요. 집중과 애정의 문제예요. 애정이 없으면 세상은 획일화돼요. 모두 다 돈이 되는 걸 따라가니까요.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잘 생각해 봐야 해요. 그게 가장 소중한 거예요.


Q: 정작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잖아요.


A: 그걸 찾는 건 아주 쉬워요. 머릿속에서 원하는 게 있으면 먹어보고, 해보면 돼요. 그런데 원하는 걸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안 움직이는 사람들이에요. 최소한 먹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맛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잖아요. 그저 생각만으로 원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인생은 책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진짜 연애를 해보고, 뭐든 직접 경험을 해봐야 알아요. 그런데 안 하려고 하죠. 다들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Q: 그런데 원하는 걸 하면 돈이 따르지는 않죠.


A: 소득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하죠. 여행 못 간다는 사람들은 돈을 모아요. 여행 가고 싶은 사람들은 그냥 가버리고요. 특급 호텔에 갖출 것 다 갖추고 떠난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못 떠나요. 돈은 왜 벌어요? 먹고 살려고 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막연한 거예요. 뭘 한다기보다는 사실은 불안한 거죠. 


Q: 저서를 보면 초창기에는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다가 이후에는 서양철학에 집중하시는 것 같아요.


A: 그렇지 않아요. 인문학은 고유명사의 철학이에요. 동서양의 차이가 아니라 개개인이 다른 거죠. 그런 걸 체계나 무리로 구분하려고 하는 건 권력이죠. 인문학의 주어는 ‘나’예요. 주어가 ‘우리’로 시작되면 사회과학이고요. 각기 다른 ‘나’가 모였을 때 제대로 된 우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노자, 김수영, 마크 로스코 등 다양한 소재로 글을 썼지만 강신주는 같아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걸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야 힘이 있다고 보고, 그런 글이 좋다고 생각해요. 10년 전 공부한 것들을 지금도 얘기하고 있다면 게으른 거죠. 내년이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철학자에 빠져있을지 저는 그게 궁금해요.


Q: 〈감정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로 너무 많은 책을 쓰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던데요.


A: 질투하는 거예요. 어떤 책도 허투루 쓴 건 없어요. 책을 많이 써온 만큼 생산력과 속도가 높아지는 거죠. 개인적으로 굉장히 조바심이 나요. 내가 볼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글을 쓰다 죽고 싶거든요. 딱히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Q: 집필하는 과정은 어떤가요?


A: 마라톤 종주랑 비슷해요. 보통 자료 준비에 가장 오래 걸리고 준비가 끝나면 한 달 안에 집필하지요. 이틀 정도 하루 10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써요. 그러다 보면 머리가 과잉되고 잠이 안 와요. 그럼 다음날 산에 올라요. 돌아오면 몸이 녹초가 돼서 겨우 자게 되죠. 이런 과정을 한 달 동안 반복해요. 힘들지만 몸은 튼튼해져요. 어느 날 제 다리가 아주 강건해져 있으면 책이 끝난 거예요.


Q: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사람의 멘토이신데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으세요? 


A: 자극, 각자가 생각할 수 있는 자극이요. 소크라테스가 ‘산파술’이라는 말을 했죠. 저는 산파고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산모예요. 저는 사람들이 제 얘기를 듣고 자기만의 고민, 자기 생각의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을 따르라는 게 아니에요. 일으켜 세우고 싶은 거지 제게 기대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Q: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시잖아요. 정작 교수님은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A: 고민은 딱히 없어요. 무료하거나 재밌거나 둘 중 하나죠. 다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섭다고 느끼는 걸 이겨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몇 년 전에는 스토커가 무서웠어요. 강연장에 와 있는 스토커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그들에게 말을 시키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아이러니하죠. 사람들은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에 지배를 받아요. 그러니 공포심이 들면 이기려고 노력해야 해요. 회사를 그만둘 때, 이별할 때, 부모가 돌아가실 때. 이런 공포를 극복할 때 성숙함이 드러나요. 


Q: 무서운 것들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나요? 아니면 시간이 해결해주나요?


A: 수치스러운 걸 알아야 해요. 비겁하게 숨거나 피하고, 남들에게는 이렇게 살라고 조언하면서 정작 내가 그러지 못하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을 해야죠. 사람들이 제게 힘들거나 도망가고 싶은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요. 그러면 ‘너의 힘을 증명할 때가 왔다. 최선을 다해라’고 말해요. 물러서지 말라고요. 누구나 자신을 증명해야 할 때가 와요. 어머니임을 증명해야 할 때 오고, 사랑하는 사람임을 증명할 때도 오고, 또 효도를 증명할 때도 오죠. 평상시에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두려울 때 해내는 것이 진짜죠. 이런 위기를 겪으면 숨길 수 없는 자기의 민얼굴이 다 드러나요. 그리고 새로운 위기가 왔을 때의 민얼굴이 과거의 위기 때보다 좀 더 낫다면 자신이 성숙했다는 걸 알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