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바닥과 세면대에서 피를 본지 오래되었다. 병원에 갈 때는 늘 치욕스럽다. 돈을 내고 의사의 혀로부터 나오는 일시적 안정감을 사 온다.


누군가와 함께 산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십수명이 함께 잤던 군복무 시절(약 2년)을 제외한다면... 나는 누군가와 한 지붕 아래서 밤을 보내고 잠자리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게 된 지가 어언 10년도 훨씬 넘었던 것이다.


나는 타로카드의 수비학이 설명하는 소울넘버 2번의 사람으로, 언제나 극단과 극단을 오고 가는 굉장한 불안정 속에 살고 있다. (나는 나의 소울 넘버를 계산해 본 뒤로 타로에 대해 어느정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상태유지나 균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질감들의 향연 속에서 오히려 나는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나의 삶은 극단적이었다. 지금 또한 한 극단의 끝까지 와 있다. 


나는 암기 지능이 뛰어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저 평균의 사람이 두 번 보며 외워지는 것은, 나도 똑같이 두 번 내지 세 번 보면 외워지는 정도에 속한다. 

하지만 분명 어느 부분에서 포괄적인 통찰은 있다. 설령 이것이 나만의 선입견에 불과할지 몰라도 마치 대상의 모든 시제와 작동원리가 알아지는 그 순간에는 어김없이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무언가를 인식하거나 배울 때도 항상 끝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대신 대상의 수가 적어 남들처럼 만물박사가 되진 못하였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가장 혐오하며 고통스러워했던 장소인 본가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가장 사랑하면서 가장 어려워 하는 나의 부모와 다시 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제 적어도 두 분을 상대하는 법에 있어서는 성장을 거듭하여 비교우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만큼, 두려움이 앞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겉으로 비치지 않는 마음 속 고통은 변함없이 예견되고 있다.


내가 충분히 혼자 살 여력이나 의지가 있음에도 11년 만에 부모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한 가지의 것 때문이다.


아버지는 수화기에 대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진심어린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에 대한 어떤 간섭도 하지 않으마. 집에 돌아와 제대로 된 밥을 먹고 건강을 찾자꾸나.


나는 혼자 식사할 수 없는 인간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지켜본 결과, 나는 스스로 식단을 관리하고,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음식을 먹으며 건강을 유지시킬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다.

나는 무엇인가를 적당히, 꾸준히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미쳐가는 사람이다. 

나는 담배도 다 죽어갈 때까지 피었고, 과음, 과식 또한 끝까지 했으며, 또 다른 날은 잎사귀와 녹차로만 끼니를 떼울 만큼 극단적인 식생활을 해 왔다.

그리고 나는 매우 건강이 나빠졌다. 나는 삶의 의지가 강한 편이 아니므로 이것이 큰 기삿거리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떨리는 목소리 몇 번은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내가 마흔이 넘어까지 살아있다면 분명 나에게 건강한 끼니를 지어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거야."

광석이형이 추천하는 삶의 방식을 나는 의도적으로 외면했으나 다시금 젊은 날의 생기를 찾아 떠나고픈 마음이 일렁인 것이다.


나는 이와 상관 없이 새해 들어 거의 모든 흡연자들이 하듯 야심찬 금연의 계획을 세웠다. 

나는 요즘 졸업을 앞둔 요즘 몇 주간 힘에 부치도록 발품을 팔아 내가 매진할 한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내가 다시 부모의 곁으로 돌아가 다 무너진 건강을 잡아보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마지막 퍼즐조각을 완성시키고픈 마음이 들었다.


분명 내 마음은 거절하고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밀어넣을 생각이 있다. 


오늘도 커다란 기구는 내 몸 안으로 들어와 나를 휘집고 다녔으며 나는 몇 번의 피를 흘렸고 불어난 약들은 종류별로 책상 한 구석을 전세내어 차지 했다.

부모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안 것일까. 그 분들은 나의 건강을 이야기하며 돌아오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