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저무는 마지막 날 광석이 형이 나온 영화를 다시 보았다. 


작년 밤 부천에서도 비슷한 시간에 이 영화를 보았었지. 그 때는 훨씬 많은 관객들이 있었다. 그 때의 영화는 부천의 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세상에 처음 선보이충격적인 형의 이야기였다. 나를 비롯한 관심있는 관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고 감독 이상호 기자도 나와 여러 분들의 질문을 받아주셨다.


영화가 다듬어져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어언 하루. 광석이형의 마지막 진실을 함께 밝히자 외치는 이 영화는 여러 단편영화들 틈에 끼어 정식 개봉관도 아닌 별관에서 자정에 열려 있었다. 이 곳 말고 서울과 전국 여러 등지에서 간간히 고개를 내미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만. 


내용 자체가 그 때와 달라진 것은 많이 없었다. 다만 조금 변경된 스토리 구성의 순서와, 형의 음악이 전보다 훨씬 덜 쓰였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한 두 명의 추가 인터뷰, 특히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거의 매회 등장하시는 유성호 교수님의 얼굴이 등장할 때는 꽤나 반가웠다.


주절대고 있는데, 사실은 많은 말이 쓰고 싶지가 않다. 


그저 이 한 마디 하고 싶을 뿐이다.


개새끼.


이 개새끼야.


이제껏 내 일기장에 욕설이 등장한 경우가 없었지. 어디 나도 모욕죄로 고소해 보시지. 그럼 나도 눈 돌아가서 그대와 끈질기게 싸울지도 모르지. 나는 살 의지가 많이 없는 사람이거든.


이 영화는 그년의 부도덕성, 악랄함, 잔임함, 인간 쓰레기 말종과 같은 모습을 아주 낱낱이, 세세하게 그려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99%의 심증일 뿐이다.


이상호 기자와 형의 동료, 친구들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 1%는 바로, '물증'이다.


'물증'은 영화 중후반부, 이상호 기자가 광석이 형의 친형 김광복씨와 함께 형의 부검 소견서를 확인하러 검찰에 들렀을 때 세상에 공개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년은 자신 외에 김광석의 친족들까지도 이 소견서를 보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이것이 이 나라에서 가능한 일인가? 김광석의 친형도 보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피가 섞인 사람은 보지 못하고, 피 한방울 섞이 지 않은, 현재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는 그 자만 볼 수 있었다. 오히려 형의 피를 손에 들고 뚝뚝 흘렸을, 그 떨리는 손에서 형의 핏값을 찾아 되물어야 할 한 사람, 죽은 형의 찌꺼기로 평생을 호위호식하며 먹고 사는 그 사람만 볼 수 있었다. 


영화는 물증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막힌 후로부터 답답해진다. 그년이 돌아가신 광석이 형의 친아버지께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이고 섬뜩한 폭언을 한 통화 내용은, 작년에 처음 들었을 때는 손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화가 났지만 이번엔 그러려니 했다. 영화 전반을 통틀어 그 인간이 어떤 종류의 짐승인지 확인한다면 관객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오로지 궁금했던 것은 그 부검소견서였다.


저번 부천 영화제에서 발길을 돌리며 쓴 글에도 나는 멈추지 않겠다고 썼다. 

별로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삶과 생활에 집착한 형을 봐서라도 좀 더 살아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살아서, 결국 살아서 이 진부한 말 하나쯤, 진실을 밝히자는, 이 진부한 말 하나쯤은 이뤄 보고 싶다.


9개월 영아 살해, 위장 결혼, 미국 여행 중 공연 하루 전 날 고교 동창과 바람(행방불명), 돈 천만원에 늙은 할아버지에게 폭언, 뻔뻔스런 거짓 인터뷰....... 아, 잘 보았다.


어디, 남은 날도 그 작은 입으로 밥알들 오물조물 씹어 넘기며 살고 있어 보라. 서슬퍼런 눈동자가 여럿 있는 것 같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