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죽은 사람들의 영상을 보다가 다섯시가 훌쩍 넘어버렸네.
나야 뭐 먼저 간 사람들 흠모하면서 사는 일을 이젠 어떤 명처럼 여기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나의 특성이야. 나는 죽은 이들과 참 친해.
그런 점들로 볼 때 나도 오래 살 운명은 못 된다고.
오늘은 노무현 아저씨 영상만 주구장창 봤네.
이 분 참 그리워......
요즘 같은 때... 참 그렇지...?
영상을 보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 분. 그 시절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 과분했다는 거야.
다섯 살 짜리 어린 애한테 오만원 권을 줘 봐라. 물고 찢고 밟고 놀겠지.
그리고 두 번째 들었던 느낌은, 저 분은 정치판에 들어오시면 안 됐어.
찬바람 쌩쌩부는 남극에 가슴에 불을 하나 품어안고 들어오셨는데.
그 남극에서 도대체 누가 불을 들고 있을 수가 있나. 도착하는 즉시 꺼져 버리지. 그래도 어떻게 버티셨어. 그 지독한 끈질김....
그리고 그 인간성이 어디 안 가는 거야.
맹수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되었겠지.
그런 허허로운 모습들. 바보같은 모습들이 가볍게 보이고 놀림 대상이 되었지. 언론도 국민들도 공범이야.
그래서 과분했다고 얘기하는 거야.
저 사람의 저 수준을 알아보지 못하는 레벨.
저 사람이 품은 대의와 진심이 안 보이는 레벨.
얼마나 많은 담화를 했고, 기자회견을 했고, 연설을 했냐.
단 몇 번만 봤다면 저 사람이 어떤 눈동자로 말을 하고, 어느 수준의 역량을 갖췄는지가 알아지고도 남았어야 정상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놀리고 무시했었지.
그러니까 저 분은 그런 곳 따위에 계시면 안 됐어.
본인도 못 이기고 스스로 가셨잖아. 마지막까지 멋졌던 거지. 어찌보면 그냥 일관성이지.
그는 누구 때문에 죽은게 아니야. 자기에게 화가 나고 자기에게 실망해서 죽었던 거야.
자기 스스로 뚜렷했던 그 어느 기준에 금이 갈 때......
박근혜가 자살을 하겠나? 과연 하겠어?...... 저 사람이 ?
본래 멋있었던 사람은 끝까지 멋있는 거고
처음부터 병신은 끝까지 병신인 거야...
나는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어느 시점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실망을 하게 되었는데
금방 회의로 바뀌어버리고, 포기에 이르게 됐지.
제목만 바뀌는 일들의 반복이라는 자각이 든 뒤로는...
나는 그 어디에서도 진보나 전진을 볼 수가 없어. 후퇴만 있을 뿐이야.
나는 이 나라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볼 수 없어. (정치에만 국한하자면)
나는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아.
내 성격 탓인데... 바뀌지 않을 일에 투자를 아예 안 하는 특성이 있거든.
두 번째 이유는 내 곁 사람부터 잘 챙기자는 마음이야.
말도 알아먹을 귀가 있는 사람에게 해야 소용이 있고
시위도 집회도 적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는 들을 사람에게 해야지.
이번 일이 터지고 가만히 보면서 가장 많이 혼자 속으로 되뇌였던 말이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몰랐던 것처럼...'
나는 실제로 실망도, 놀라움도, 분노도 없어.
굳이 정치나 현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참 답답했던 MB정부 5년을 끝마치고
저 이상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온 집 지붕을 뛰어다니면서 예언을 하고 싶었었지.
일을 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보다, 아예 나라를 말아먹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지.
솔직히 TV토론만 봐도 알 수 있었잖아...
뭘 이제와서 새삼스럽게들... 왜 그러는지......
일찌감치 박근혜가 연설문 읽는 것이 뭔가 이상해보여 이 곳에 글을 썼더랬지. 벌써 3년이 다 되가네.
내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세계 속에서 사는게 너무 빡빡하기 때문이야.
소위 말하면 탈출 욕구 같은 거지. 회피라고도 할 수 있겠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이 공간에 툭 떨어진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나는 웅크리고 음악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리지.
꼭 음악이 아니어도 괜찮어. 영화같은 창작물에서 본 어느 환영 속이나 책에서 본 어느 스토리 가운데 머물러 살 때가 많아.
그리고 내 꿈도 그거야.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떠나(?) 사는 것...
어디 은둔하거나 칩거하면서 살다가
심심해지면 음악 하나 툭 들고 나오고 그런 삶.
음악(물론 가사가 없는 순수 음악)은 말을 하지 않지.
하지만 백 마디 천마디의 말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과 느낌을 주지...?
셀 수가 없을 정도야.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별들과 빛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나가는게 수백만개야.
말들 가운데는 진실이 없어. 진실이 담긴 말들은 몇 개 안 돼.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그토록 한 마디 말에 목말라 살고 있는 걸까.
차라리 선율의 작은 움직임으로 찰나에 전할 수 있는 말이 수천배는 더 많을 거야.
사회관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도 사랑해라는 말에 정말 사랑의 정수가 진심으로 들어있을 경우는 극히 드문 거야.
나는 요즈음 음악을 아주 많이 듣고 살아.
이동 중에 항상. 혼자 있을 때 거의 항상.
대중 가요는 이제 내 핸드폰에 아예 들어있질 않고...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들어.
클래식이나 미니멀리즘, 작은 피아노 가곡 등이야.
이제 가사가 붙은 가요나 팝은 아예 내 안중에서 떠난 듯 보여. 당분간은 근처에도 가지 못 할 거야.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으며 사용되는 악기의 정체와 규모를 파악해.
악기들 하나하나씩을 집어 내. 수 백번을 들으면 더 잘 들려. 얼마나 재미있는 과정인지!
다음엔 이 연주자가 곡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들어 봐.
그러면 그 곡이 본디 태어난 감정선과 주파수가 맞아드는 순간이 있어. 작곡가가 의도한 감정 위에 내 감정까지 곡에 실리게 돼.
음악을 듣는 행위의 정점은 여기라고 봐.
다음은 내가 가능한 악기를 골라 내 연습해. 내겐 주로 피아노가 되겠네.
하지만 항상 아쉬워. 내가 쳐보고 싶은 곡들은 꼭 단 바이올린 몇 대나 금관악기 하나라도 라도 필요한 협주곡 들이란 말야...
정말 이 부분에 아쉬움을 늘 마음 가득 가지고 살고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쉽다고 생각할 정도야. 구해볼까 라는 생각도 있어.
하지만 이내 접어. 그리고
직장을 가지고, 여유가 생기면 한 번 구해보지...라고 타협해.
나는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음악에 관한 한 책을 읽기 시작한지 근 한 달쯤 되었는데
이상하게 버스 안에서 집중이 더 잘 되고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듯 해서 신기해.
그런데 정말 이제 대중교통 안에서 책을 펼쳐 읽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더라. 어떻게 한 명도 없을 수 있을까.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환멸을 느꼈다는 이유로 여러 사안들에 귀를 닫고 있는 건 아니야. 아니, 요즘들어 부쩍 더욱 많이 듣고 있어.
나는 표창원, 문재인, 안희정, 정청래같은 사람들을 응원해.
언론 등지나 사회 일선에서 뛰는 김어준, 도올, 법륜스님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응원해.
나는 촛불에 회의적이지만 그들의 메세지에는 동의하고 있어.
나는 다른 방법으로 걷고, 도울 수도 있어.
우리 모두가 어떤 큰 신들의 놀음판에 놓여져
사건들은 누군가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우린 그저 말들의 역할을 하면서 어떤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서로 아옹다옹 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사그러드는 날엔, 나도 다시 거리로 나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