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나는 가벼운 시험 하나에 떨어졌다. 그 이후로 그것이 너무나 큰 상처가 되어 나를 옥죄었는데 오늘 이 시간까지 나를 놓아주질 않는다. 이게 대체 무엇일까? 이까짓게 뭐라고 나를 하루 넘게 붙잡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나는 어째서 이런것 따위에 매여 고생중이지? 황금같은 하루를 아무것도 못한 채 허공에 날려버렸다. 이유라도 알고 싶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마음을 지긋이 좀 바라보았다. 멀찍이 떨어져 서서. 마음이 어떻게 요동치고 있는지, 마음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가만히 들어보았다. 아... 그렇구나...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실패의 경험이 많이 있다. 이것은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어 내 인생에 치울 수 없는 비석과 같은 것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사람들을 하나 만날 때 이 무거운 비석을 가슴 한가운데에 떡하니 안고 만나니, 늘 마음이 무겁고 금방 힘이 든다. 이 실패의 경험은 내게 상처이다. 상처의 특징은 건드리면 굉장히 아프다. 공기중에 쓸리기만 해도 아픈것이 상처다. 의도되지 않았던 타인의 행동이나 말도 나의 상처에 쓸리는 것만 같다. 마치 블랙홀같다. 관련이 없는 것도 이것 저것 자석처럼 다 빨아들여서 점점 더 큰 상처를 낸다. 일종의 자해인데, 무의식중에 굉장히 빨리 일어난다.
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건강하다. 아마 자의식과 자존감이 나보다는 월등히 높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기본 베이스로 가지고 있는데 혹 그들이 실패를 해도 이 베이스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여기에 추가로, 굉장히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그들은 어느 행동을 해도 실패하거나 미움받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도 있다. 그렇게 가진 기반 위에서 그들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그 영향으로 성공의 횟수도 더욱 늘어가는 순환고리를 밟게 된다.
그러나 한 번 실패의 늪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비슷한 실패의 경험이 오면 '난 원래 이래...' 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나, 말투도 왠지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것의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기분이 쉽게 상한다. 그러니 자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나 유대감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고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가는 가운데, 무너진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되어도 실패할 확률은 더 높아지게 된다. 그렇게 실패하면 또 "역시..."라는 말과 함께 강한 자기확신을 심어주며, 이들은 그렇게 악순환을 탄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불행한 사람? 죽을 때까지 불행할 거예요. 지금 행복해 보이는 사람? 늙어 죽을 때까지 행복해요. 사람이나 환경은 그렇게 쉽사리 변하지 않아요. 지금 불행한 사람들은 있죠.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해야 돼요. 죽을만큼 노력해서 그 불행에서 나와야 돼요." 그 말을 듣고 깊은 공감이 되었다. 아까 말했듯 모든 어두운 것들은 블랙홀 같아서, 그것을 비롯한 주변의 다른 어두운 것들까지 끌어들이는 속성이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실패는 실패를 낳고, 우울은 더 큰 우울을 낳고, 좌절은 계속된 좌절을 낳곤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그 실패를 딛고 다시 한 번 과제를 향해 돌진해 들어갈 때에야 성립되는 말이 아닐까? 단순히 저 문구로 실패를 포장해서 두 번, 세 번 거듭된 실패를 해도 괜찮게 되는 상태는 정상이 아닐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실수라는 걸 도무지 하지 않고 모든걸 너무나도 능숙히 잘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도 실패의 경험이 있었겠거니, 아프고 쓰라린 실패의 경험들을 발판 삼아, 성공의 어머니로 둔갑시키는 과정이 몇 번씩은 있었겠거니 여기고 나도 그렇게 가야 한다.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실패가 왔을 때 그 속에서 하루 종일 다운되고 우울해 하는 것 보다는, 빨리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부족한 부분을 캐치하고 그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고 메꿀 것인지 궁리를 들어가면서 그 단점을 메꾸어 다음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습에 돌입해야 하겠다. 모든 시험은 대개 끝이 없이 다음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를 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면, 그만큼 시간이나 물질의 손해가 막대할 수 있지만 그런 것에 아까워하면 정신적 스트레스 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 진정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빨리 성공해서 지금의 이 손해를 갚아야 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붙들어 매는 것이 좋은 듯 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낮은 성적이나, 대학 입시의 실패나, 외국 유학의 중도 포기 등으로 능력이나 의지력이 부족한 인간 + 주류 사회나 상류층 사회에서 거절당했던 사람으로 인식이 박혀있다. 그러나 그랬던 지난날이 있을수록 더욱 이를 악물고 그 단점들을 고쳐나가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내 앞에 놓인 여러 시험들을 통과하기 위해 그저 매진하고 달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성공의 기억들도 끄집어 내거나, 쌓아가야 한다. 가령, 쉬운 시험들을 보기좋게 통과함으로써 작은 성공의 기억들부터 다시 쌓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최근 원하던 종류의 군대에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그리고 운전면허 필기도 기왕에 볼 거 하루 전에 조금 공부해서 100점으로 붙었다.
뭐든지 좋은 쪽으로 마음을 내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시험에 떨어졌으면, 조금 더 확실하게 익힌 상태에서 붙을 수 있겠구나. 혹은 붙지 않아도 좋고, 붙어도 좋은 식으로의 마음도 괜찮다. (다만 이런 마음은 시험 후에 가지는 것이 좋다. 시험 전에는 의욕의 저하를 불러올 수 있으니까.) 마음관리를 잘못해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의외로 상당한 만큼, 요즘 내 마음을 지키는 움직임들이 스스로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