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도서관 문헌실에서 졸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즈음 친구가 요상한 표정을 하며 툭 던져준 책. 자기 딴에는 책 표지의 '섹스'를 보고 내가 당황하겠거니 하고 예상한 짓궂은 장난의 일환이었으나, 이 책을 든 순간부터 나는 책 속에 묻어나는 깊은 통찰력과 피어나는 공감대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급기야 앉은 채로 끝까지 다 읽어버리게 되는데...


2. 시대 상황이 그렇고, 온 지구적으로도 아직은 그렇다. 섹스는 꼭꼭 숨겨야 마땅한, 공공연히 이야기 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수치스러운 것. 그러나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이 세상 모든 음악, 미술, 영화, 공연을 아우르는 수많은 예술활동과 경제활동의 숨은 기원은 '섹스'였던 것을. 이성이 커피숍에서 다른 이성을 만날 때 둘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따위를 이슈로 떠들고 있으나 머릿속 궁극적 목적은 또 역시나 '섹스'인 것을. 우리의 탄생 역시 한 명도 빠짐 없이 '섹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사랑'과 '섹스', '남녀' 등등의 감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들을 삶의 중심 기운으로 여겨왔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그 에너지 만큼 폭발력 넘치는 기운을 다른 어떤 것 에서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도 이 전제로 출발한다. 


3. 책을 넘기다가 놀랐던 것은 저자의 '통찰력'이었는데, '섹스'와 관련한 삶에서의 여러 이슈들을 무서우리만치 낱낱이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해 준다. 필요에 따라 진화생물학과 심리학 등 여러 분야를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또 하나 놀랐던 것은 무서울만큼 앞서가고 있는 저자의 현대적인 생각들이다. 나만 끙끙대며 가지고 있었던, 그리고 강신주 선생님으로 부터 전수 받았던 몇 가지의 시각들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가령, 결혼과 사랑을 분리시켜 보는 시각, 거기서 출발한 도덕주의적 결혼관습에 대한 비판적 관점, 섹스와 사랑을 분리시켜 보는 시각 등을 발견할 때는 동지(?)를 만난 기쁨, 든든한 지원군을 발견한 느낌에 무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3-5. 여기부터는 책의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나름 정리해 보았다. 


4.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았다. 젓가락으로 밥상을 마구 쳐도 어머니는 따뜻한 미소로 웃어주었고, 조금만 배가 고프면 나의 작은 얼굴은 바로 어머니의 가슴팍 속에 묻혔다. 그러나 점점 커 가며 어머니의 젖 대신 텁텁한 닭고기를 먹게 되었고, 점점 부모님이 나를 쓰다듬는 것도 줄어들어, 이제 다른 사람과는 손으로 하는 악수 말고는 몸 어느 구석으로도 교감을 나누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성인이 된 우리 속에서도 여전히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고픈 욕구, 자신의 살 냄새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욕구가 살아있다.


5. 우리를 흥분시키는건 어쩌면 키스 자체가 아니라 키스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비로소 허락 받았다는 느낌 말이다.




6. 우리는 사춘기 이후로 점점 분열되어 가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 보이는 평범한 모습의 자아. 정욕을 품는 내밀한 모습의 자아로. 그 전에 우리는 거실에서 이모와 로보트나 인형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던, 분열되지 않는 '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7. 우리가 사람들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매력적인 사람들에게 매료당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진화생물학의 논리에 따르면 아름다움에 끌리는 이유는 아름다움은 곧 '건강함'을 보장(상징)하기 때문이다. 강한 면역체계와 넘치는 스태미나를 가진 '건강한' 사람은 짝을 이루면 생명력 강한 자손 생산할 가능성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작 이것뿐인가?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라고 하며 얼굴을 통해 내면적 특징을 직관적으로 파악해 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일깨워 준다. 즉, 우리에게 있어 섹시함은 내면적 행복의 약속과도 같은 것이다. 


8. 또한 보완의 메커니즘으로 끌리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데 자기가 갖지 못한 똑부러진 성격이 얼굴 한 곳에서 나타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그녀)에게 끌린다. 우리 스스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머릿속에서는 '아름답다'. '섹시하다'고 인지하지만 사실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약점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희망과도 같은 것이다.


9. 이제는 섹스에 대한 욕망과 사랑에 대한 욕망이 평등한 지위를 갖고 도덕적 허식을 걷어치울 때다. 사랑과 섹스는 누구나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욕망이며, 동등한 가치와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사랑이든 섹스든, 상대 이성에게 그 욕망을 갈구하기 위해 억지로 거짓을 꾸미는 일은 없어야 한다. -로멘틱과 에로틱에게 평등한 지위를-에서. (p.111-112)


10. 거절당하는 상처는 가슴이 무너질 만큼 아프다. 자신의 육체적 매력뿐만 아니라 자아 전체에 대해서 퇴짜를 맞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거부당한 느낌. (p. 114)


11. 거절의 이유는 훨씬 더 단순하고 덜 우울하다 - 거절의 이유가 무엇이든, 상대는 단지 우리의 몸에 흥분을 느끼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런 거절은 이성의 힘이 닿지 않는 무의식과 억압된 잠재의식에 따른 판단이므로 이성적으로(의지력을 발휘해서) 바꿀 수 없다. 이런 점을 인식하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면 된다. 사소한 불운의 하나로 인정하면 그만이다. 우리 자신이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다. 망상증까지 더해지면 더욱 안된다. (p.115)


12.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발기불능은 지나친 존중이 병이 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파트너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해 불쾌감을 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발기부전 치료제가 잘 팔리는 시대적 현상은 현대사회 남성들의 집단적 갈망을 대변해준다. (p.152)


13.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견지에서 본 그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완벽함의 화신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것. (p.156)





14. 현대의 연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관계에 모범적인 실천 방법을 응용하거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고 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감정이 피어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집착하는게 아닐까? 더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그리고 끊임없이 하는 것만이 서로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지켜줄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p.164)


15. 그러나 또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성적 충동은 어느 정도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 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내버려 두다간 자폭하기 딱 좋으니까. (p.183)


16. 탈선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오히려 이치에 어긋나고 부자연스러운 반응이므로, 이상할 뿐만 아니라 심오한 의미에서 볼 때 '잘못된'것으로 볼 수도 있다. 외도의 가능성을 전혀 즐길 줄 모른다면 그것은 심각한 상상력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 인간이, 이 지구에서 할당받은 애처롭도록 짧은 시간에 대한 심술궂은 태연함이자, 우리 몸이 가진 영광스러운 육욕적 본성에 대한 푸대접이나 마찬가지다. (p.200)


17. 큰 잘못은 도덕주의적 결혼관습에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욕구에 대해 성적으로, 감정적으로 평생의 해결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 그러한 말도 안되는 희망을 품게 하는 결혼제도의 비상식적인 야심과 고집이 진짜 문제다. (p.203)


18. 과거의 사람들은 사랑, 섹스, 가족에 대한 욕구들을 따로따로 구별지을 만큼 현명했다. 가령 12세기 프랑스 프로방스의 서정시인들은 낭만적인 사랑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아픔을, 만나고 싶어서 속만 태우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또 몇 마디 말이나 짧은 눈빛 교환이 정신에 기운을 복돋워준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런 소중하고 가슴 절절한 감정을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 목적들과 결부시키고자 하는 바람을 겉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즉, 가족을 꾸리고 싶은 바람도, 심지어 열렬히 사랑하는 이와 성관계를 갖고 싶은 바람조차도 내비치지 않았다.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