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 왔다. 플랜카드엔 여러 사람의 이름과 함께 나의 이름이 있었는데 그닥 큰 의미나 감동은 없었고 그러려니 했다.

교정의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귓가에 음악 소리가 들려오며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 즈음에 나는 어떤 사실 하나를 발견했는데 아마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영혼을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심장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으며, 그 사실이 나를 무척 행복하게 했다. 

나는 여러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았고 그들은 내게 앞다투어 많은 이야기를 했으며 수많은 것들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서 있는 채로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노신사까지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계단을 계속 내려오는데 정장을 차려입은 어느 매력적인 여자가 내게 다가와 인터뷰를 했다. 

"영혼을 따라 사는 삶이... 피곤하진 않으세요?"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대답했다. 

"피곤해요. 졸라 힘들고, 내가 왜 일을 사서 고생하나 싶을 때도 있고... 근데 있잖아요. 해야 되는게 있어요. 사회에서 정한 그런 거 말고. 진짜 내 영혼이 해야 되는 거(웃음 - 나는 여기서 웃었다.). 그걸 해야 가슴이 뛰고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행복한 거. 안 하면 미련과 후회로 오히려 내 영혼에 진한 후유증들이 남는... 그걸 하며 사는 거거든요."

얼마나 고대해 왔던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을!

나는 말하며 스스로가 대견했으며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인터뷰를 마친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OO님은 멀리서 처음 뵙고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마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가깝게 느껴져왔는데, 이제 드디어 제가 근처로 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더 알아야 할게 많은 수수께끼같은 사람으로 남네요. 제가 만약 더 가까이 간다면 OO님이 우주에 있는 행성들처럼 영영 더 멀어질까봐 이쯤에서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가만히 들으며 아주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자라고 생각하였다.


뒤이어 아까 소개받은 사람 중에 키가 작고 백발인 어느 노인이 등장했다. 

보자마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이다. 

"노인공경!"

당사자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관계자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중엔 나의 어머니도 있었다.)

나는 그만큼 거침없었다. 사회적 지위나 권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혹은 그 높낮이에 상관없이 유머나 해학으로 다가서는, 효나 예 사상을 너머 흐르는 그 어떤 가치를 홀로 따르며 사는 당당하고도 녹슬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가 되어있던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을 당황케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백발의 노인과도 어깨동무를 하며 친해지며 꿈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