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아! 단도직입적으로... 이름을 부르며 쓴다. 처음으로 내 일기장에... 네 이름이 등장하네. 내가 오랜 시간동안 일기를 적어오면서 너에 대한 이야기들을 쓴 적은 많지만 이렇게 이름을 부른 적은 처음이겠다. 통화 때 네 이름을 부르는데 네가 듣질 않더라. 마음과 마음이 나누어지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다가 끝났다, 그렇지 않니. 그 과정에서 내가 많이 상처를 입은 것 같아. 대성공이다, 예은아! 처절하게, 아프게, 난도질을 당했고 다시한 번 내가 했던 일들을 후회했어. 장난기 많던, 그 고등학교 때의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더구나. 조금은 섬뜩하게...... 친구들은 잘 있니. 


네가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다. 아마, 평생을 두고 보지 못한다에 무게를 싣는다. 너는 이제 내게 관심이나 신경을 두지 않고 살아갈 한 사람임을 확인했고, 내가 이런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도 알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영원히 그렇게 살아 가겠지. 그래도 혹시, 혹시 보고 있다면, 예은아! 내가 지금 쓰는 글들은 네가 느꼈던 이전의 나와 달리 일체의 계산이나 의도가 전혀 들어있지 않고 내가 눈보라 맞듯 온 구석으로 느껴 왔던 감정이 영글어서 터져 나오기 직전에 쓰는 글이니만큼 글의 순도가 높다. 예은아! 이 받을 사람 없는 편지는, 너라는 사람만을 독자로 두며 쓰는 편지임과 동시에, 네가 읽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아주 깨끗한 글이 될 것 같다.(더구나 제 3자는 읽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에) 이 편지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감정을 올곧게 잘 대변해 주는 글이 될 거야 ! 오롯이 서 있는 내 마음을 지금 볼 수 있겠니. 직시할 수 있겠니? 잘 읽으면 내가 보일 거야. 네가 지금껏 알던 모습과 많이 다른, 내가 보일 거야. 하느님, 기적이 일어나서 예은이가 이 편지를 읽게 되면 좋겠네요.



예은아! 나는 네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참 실수를 많이 했었어. 네 마음을 헤집어 놓았을지도 모르지. 네가 힘이 들 때 거들떠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아니, 오히려 다른 아이에게 신경이 팔려 너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멀리했을지도 모르지. 그래, 다 맞아!

예은아, 미안했다! 이 한 마디를 너를 만나 네 얼굴을 보면서 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그 뒤로 나는 널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고 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널 보고 싶어했던 이유는 미안하다는 이 인사 한 번 하려는 마음이었을 확률이 크다.

 


다 나의 실수였어. '실수'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니?

작정된 의도가 있었다면 실수가 아니고,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면 실수가 되는 것 같아.

마트에서 물건을 사서 나오다가 계산이 안 된 과자가 하나 들려 있어서 점원에게 들켰다고 하자. 그 사람이 원래부터 과자를 들고 나올 의도가 있었다면 그건 절도가 되겠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면 실수가 될 거야.

물론 세상은 두 경우 모두 똑같이 처벌하겠지만(우리는 사람 마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니까) 실수냐 아니냐에 따라 같은 사람이 참 다르게 보이지. 절도범으로 보였다가... 순진무구한 덜렁이로 보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졸업한 년도 2010년, 아니 그 전부터, 네가 가까워지고 싶다며 내게 싸이월드 쪽지를 보낸 그 2008년 어느 날부터 말이야......

지금까지, 

나는 널 아프게 하려던 의도가 전혀 없었어. 

추호도, 전혀 없었어.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너에게 쓰레기로 남았을 거고, 미친 개로 남았을 테고, 상황을 엿보다가 한번 구슬려 다시 한 번 너를 아프게 할려는, 욕망에 가득찬 한 재수없는 남자로 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야 어제 네가 했던 행동들이 도대체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아무 의도 없이 네 목소리가 그립고 궁금해 전화 걸었던 사람에게 할 행동들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마치 짜여진 시나리오가 있는 마냥 그렇게 척척, 나를 엿 먹였으니까.



우리가 고등학교 교정을 같이 거닐던 그 시간들부터, 졸업 이후 몇 번 만났던 그 날들,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 받았던 그날들 까지. 

나는 네 감정에 집중하거나 너를 읽으려 하지는 못했던, 오직 내 감정에만 충실했고 빨랐던 서투르고 눈치 없는 놈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의도적으로 너를 괴롭히고, 널 아프게 하고, 널 가지고 장난질 하거나 놀아보려했던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나는 네가 그것만 제대로 알게 된다면, 이 편지를 쓴 의도가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너는 어저께 나를 작정하고 찌른 듯 보인다. 의도를 가지고......

나는 그 점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제껏 의도를 가진 적이 없었지만 예은이 너는 어제 내게 의도를 가지고 들어왔다. 

멀쩡히 문자를 하던 번호로 걸자 다른 아이가 받게 한 다음, 두 번을 끊고

세 번째에 태연하게 받았었지. 아니, 그 전에 너는 내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었지.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잘 지내!ㅋㅋ' 

나는 이것이 너의 오랜만에 던지는 유머나 농담섞인 장난이 아니고 진짜였다는 것을 통화중에 알게 되면서 소름이 끼쳤지. 그건 예은아,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던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아니, 그만큼 네가 날 증오하고 미워하고 있다면 얘기가 되지!



여러 가지 사소한 사건들은 다 제껴 두고, 내가 왜 이 마지막 편지를 너에게 쓰고 있느냐면... 

첫째, 내가 감정을 좀 정리하려고. 둘째, 이제 너와 나와는 정말 끝임을 알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나는 어제 10분 남짓의 통화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너는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간 너의 목소리가 참 궁금했다. 나는 눈도 나쁘고, 말도 잘 못하지만 귀는 예민한 편이다.

나는 네가 나에 대한 정이나 그리움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나를 많이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한 귀에 알아버렸다. 


굉장히 매몰찼던... 어제의 너의 목소리 기억 나니? 예은아, 내가 어떤 의도로 네게 다가갔던 너는 그러면 안 되었다. 나에겐 진심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소량이라도 진심이 묻어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응대하면 안 돼. 그러면 상대가 휘청댈만큼 충격을 입어.

차라리, 정공법으로 정을 떼듯이 말하는게 낫다. 그러면 상대 쪽에서도 마음을 정리하기 쉽기 때문이야. 하지만, 속이고, 열심히 계산한 뒤에 불순한 마음을 품고 앞에서는 웃으며 이야기 한다면 그것만큼 모욕적이며 아프면서도 기분 나쁜 것 또한 없다.


너는 진심이 없었다. 유쾌함과 농담과 뻔뻔함만이 있었고 목소리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그 부분은 참 다행이다. 나는 네 목소리가, 좋은 줄만 알았던 고등학생 때의 그 상냥하고 은은했던 목소리가 그렇게 날카롭고, 우악스럽고, 경솔하고, 건방지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그래서 참 다행이다. 나는 네 목소리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착하고 어리숙했던 너는 없어져 버렸다. 대신에 겉은 더욱 철갑으로 방어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어떤 면에서 참 슬펐다.

네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이전의 김예은다웠던 그 모습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그 점이 슬펐다. 뭐가 그리 아팠는지 전보다 더 억세고 쓴 아이가 되어 돌아왔던 것 같아, 그 원인 중에 나도 들어있는 것 같아 슬펐어. 그리고 너도 결국 내가 보고 느꼈던 그 여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아서 슬펐다. (너도 물론 나를 향해 똑같이 그렇게 느꼈던 날이 있었겠지만.)



예은아! 

이번 4월 말의 문자와 전화에도, 나는 네 이야기가 궁금했을 뿐... 다른 의도가 없었다.

네가 불쾌했다면 그건 너의 착각일 수도 있겠고, 동시에 내가 더 이상 네게 접근하지 않고 비켜주면 끝날 일이야.

어제, 오늘 그 일이 이루어 졌다. 어쩌면 네 주변에서 찝적대던 남자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터는 중이다.


이제 마지막이 되어가는 것 같네. 내 마음에 있던 걸 많이 짜낸 느낌이다. 

예은아! 

이제 다시는 부르지 못하고, 않을 이름이라 많이 불러 보네.

전에 있었던 일...... 모든 것들... 낱낱이 내어 놓고 너와 얘기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는 꿈도 꾸고, 혼자서도 많이 그려 보았지만,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나는 무엇을 잘못했고 너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네 마음은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는지, 얽힌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얘기해보자 했지만 네가 거절했다.

네가 생각하는 이유야 어떻든, 네 주변 친구들의 말과 의견이 어떻든, 나는 오랜만에 네 목소리가 그리웠고 네가 궁금했고, 꽤 오랫동안 그래 왔다.


믿지 못하겠니? 이왕 이 홈페이지에 들어와 봤다면 너에 대한 나의 일기들을 쭉 읽어 보렴. 

내가 대충 찾아 보아도, 대 여섯개 정도는 있네. 

2013년 크리스마스 날, 네가 생각나 뒤척이면서 쓴 글이 있고, 

2014년 5월 19일에 엉뚱한 그 사람이라는 제목으로도 썼었지. 그리고 6월 4일, 8일, 14일 글들... 입대할 날이 가까워지면서 네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아. 

왜냐하면 방정리를 하면서 네가 줬던 수북한 편지들을 모두 읽어보았으니까.

그리고 최근에는 2015년 3월 28일에 너에 대해 추억하며 썼던 글이 있네.

읽어 보면 알 거야! 나는 너를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나는 그저, 오히려 너라는 아이가 소중했고, 궁금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여러모로 나의 서투름과 방종을 후회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혹시나, 만일에 이걸 읽었다고 해서 나에게 연락하지는 마. 이건 내 마지막 부탁이고 어쩌면 네가 연락하려 해도 내가 세상에 있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만. 다만 중요한 건 앞으로의 네 인생이야. 영어 선생님 한다고 했지 ? 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선생이 될 것 같아 일단 그 꿈은 접었어. 사실 직업은 뭘 해도 상관 없지. 다만 앞으로 네가 만나는 관계들 가운데에서 진심으로 사랑받고, 또 사랑하는 관계들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마음 속 깊이 염원한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나 비슷한 사람이라도 근처에 얼쩡대거나 얼씬하지 않기를, 그래서 네가 착각하거나 속거나, 상처받거나, 혹여나 누구를 미워하거나 하지 않기를(본인도 피를 흘리면서). 그저 네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져갔으면 좋겠어. 


그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기도드릴게, 예은아. 하느님, 예은이에게 진심이 담긴 눈동자들이 더러 찾아오게 해 주세요. 그 눈동자들을 발견하고 함께 사랑하며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