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상 음악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비록 특출나게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고 유수한 음대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피아노도 못치고 작곡도 작사도 못하지만 내가 마음을 따라 산다면 음악은 계속해서 내 손에 들려있을 것이다.
나는 꿈이 있다. 내가 젊어서 죽든 늙어서 죽든 내 손에는 녹슨 바이올린의 활이나 부서진 기타피크나 너무 오래되어 투박한 소리가 나는 하모니카나 진실된 음악가의 LP판이나 구겨진 오선지 몇 장이 들려 있었으면 한다. 내가 쓰러져 죽는 내 근처 머지 않은 곳에는 피아노 한대가 꼭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음악은 나를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해 주었다. 살면서 수많은 것들이 나를 스쳐갔고 배신했고 홀대했지만 유독 음악 만큼은(특히 피아노만큼은) 내게 따뜻한 친절을 베풀었는데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피아노 ! 내게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흑백으로 물들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피아노 없이는 내 인생을 수놓고 있는 여러 큼직한 사건들이 전혀 생겨나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끊임없이 피아노를 쳤고 그로인해 수많은 인간관계들이 시작됐다. 나는 외아들에 원최 말이 없고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 힘이 들었어야 할 아이였지만 내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쳤을 때 그들은 나를 향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었다. 그로 인해 나는 조금만 노력해도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피아노를 통해 단 하나뿐인 고등학교 선생님을 특별하게 만났고, 지금껏 평생 유일하게 남아있는 첫사랑도 서로 함께한 피아노 연주 덕분에 가까워졌다. 내가 몸서리치게 그리워하는 어떤 친구도 나와 함께 반주를 했었고, 내가 외국으로 갔을 때에도 나는 늘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낯선 타국에서 어떤 계산될 수 없는 환대와 호의를 입은 것만은 분명하다. 이처럼 나는 피아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살았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사람들은 내가 피아노를 치기 전과 친 후로 눈빛이 많이 달라졌다. 아니, 눈빛 뿐이었을까. 눈빛과 말투, 표정과 태도가 모두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인간관계가 피아노를 치기 전과 후로 나눠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피아노를 치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느 평균 이하의 매력 없는 남자였지만, 피아노를 한 번이라도 치고 난 후로는 뭔가 그들 마음에 쏙 든 것이 분명했다. 내게 있어서는 살아온 날들동안 만나온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했으니, 이것만은 과장된 표현도 아닐 것이다.
나는 살아갈 날 동안, 그리고 영원히, 피아노를 저 멀리 떨어뜨리고 살 수 없다. 나는 평생 이 물건을 모르는 체 할 수 없다. 도무지 그럴 수 없다. 어떤 도리와 같은 것이기도 하고, 신기한 것은 내가 피아노와 멀어질 수록 내 삶도 조금씩 조각나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이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기간 중에 있었거나, 피아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시기는 내부적으로도 심각한 피폐함으로 문드러지는 아주 연약한 순간을 거치는 중에 있었다.
그러나 어떤 숨이 막혀오는 문턱이나 혹은 거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을 때에도 내 손은 늘 건반 위를 걷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든 것이 방전된 것 같은 날에도 나는 늘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빈 강의실을 찾곤 했었다. 수업이 듣기 싫어 빠진 날에도 그 수업시간에 차라리 피아노실을 가곤 했었다. 아...... 그 날이 그리워진다! 신관 6층에 있는 그 한 편 남짓도 되지 않는 작은 피아노실... 음악학과 학생이 아니면 원래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지만 나는 뻔뻔하게도 그 곳을 자주 들락거렸지. 지금 내게 다시 그 시간을 허락해 준다면 악보를 수북히 들고 그 방에 오래 앉아 있을텐데.
과거의 모든 추억이 피아노로 연결되어 있듯, 앞으로의 내 모든 추억도 피아노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또 나의 작은 꿈 이야기를 써야 겠다. 나는 어느 카페에서 피아노를 갖다 놓고 연주회를 자주 열고 싶다. 나의 연주회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내가 출몰하면 앉은 사람들이 관객이 되는 형식으로...... 사람들은 자유롭게 떠들어도 괜찮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참 좋아한다.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함께 추억을 되짚어 보다가 또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그리고 또 마음이 내키면 기타도 집어들고... 관객이나 점원 중에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과 합주하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그 카페의 주인이 되는 그림은 못 그리겠다. 나는 경영 같은 것을 잘 못할 것 같다. 다만 내가 아는 사람이 차린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매출에 조금의 공헌이라도 할 겸 연주를 많이 하고 싶다.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낮에는 카페, 밤에는 칵테일 주점으로 변신하는 공간을 하나 창설하겠다고는 했다. 그래서 우선 음악 담당은 내가 하기로 내 맘대로 정했다.
나는 그 곳이 이름 없는 뮤지션들이나 홍대 근처를 누비는 꿈 많은 음악가들, 또 그림을 그리는 이들, 배고픈 예술가들이 꿈을 작게나마 펼쳐보이는 공간으로 활용됐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정기적으로 어떤 간단한 오디션을 거쳐 이름없는 그룹이나 공연팀들을 세우거나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몇 없는 관객 앞이지만 그들은 좋은 경험을 얻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관객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보고 들어주는 눈과 귀, 그 앞에서 노래를 하고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하고 신기한 일이다.
나의 집안을 몇 촌을 걸쳐 폭넓게 둘러봐도 음악과 관련되어 있거나 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오히려 외가 쪽에 운동, 체육 계열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몇 명 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 어머니도 음악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음악에 유전이 미치는 영향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겠지만서도 이런 환경에서 아닌 가뭄에 콩 나듯 내가 음악의 길로 나아가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왜 나는 이러한 영혼으로 태어났을까?
왜 내겐 이런 바람이 분 것일까?
이 바람은 어디서 불어온 것일까?
이들은 나의 용기를 시험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처음에 썼듯 내가 내 마음을 따라 산다면 나는 반드시 음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어느 직업을 억지로 갖고 남는 시간에 음악을 바치자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그 생각이 비겁한 타협을 이뤄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음악을 취미로, 부수적으로 하는 것이 부모님께도 효도하는 길이고 내게도 안정된 생활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 배로 피곤할 것이다.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악기를 들어야 하니까... 그리고 나는 하루의 많은 부분을 겉돌 것이다. 마치 지금의 나날들처럼...... 아니, 어쩌면 남는 시간에 음악을 하는 비율을 점점 줄이다가, 이윽고 지쳐서 음악을 손에서 놓아버릴 수도 있다.
나의 온 생애를 걸쳐 지울 수 없는 마음 한 가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 방면에 있어서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알기 때문에,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왔기 때문에, 나는 이 매력적인 맛을 포기하지 못하겠다. 나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사랑이 고프고, 또 그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나는 떨리는 그들의 눈망울들을 떨림으로 마주하고 싶다. 지금 어딘가에 살고 있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나의 이름모를 관객들 앞에 서고 싶다. 그들을 흐느끼게 하고, 가슴을 저미게 하고 싶다. 나처럼 그들 삶에 스스로 직면하게 해 그 고통을 안기고 싶다. 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남기고 싶은 나의 중심 소원이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떨림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어중간한 떨림이 아닌, 그들의 삶의 굵직한 이야기들로 남을 수 있는, 그들의 가슴 정곡에서 수만가지 감정이 피어오르는 그 떨림을 선물하고 싶다. 내가 만약 음악을 한다면 그런 음악을 하고 싶고, 내가 시인이 된다면 그런 시를 쓰고 싶고, 내가 작가가 된다면 그런 소설집을 내고 싶고, 내가 선생이 된다면 학생들에게 그런 모습이 되고 싶다.
내가 그 무엇으로 살든, 나는 가벼운 사람이 되기 싫다. 잔잔한 빛으로 지나고 나면 어떤 무거움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엔 그런 매력으로 반짝이는 사람들이 몇 있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남기까지 수많은 내공이 쌓여야 할 것이다. 나의 느낌으로 나는 아직 시작을 하지 않았다. 내겐 아직도 수많은 충돌과 박살, 나의 옛 것들이 산산조각 나는 삶의 어느 생생한 경험들이 남아있고 그것들을 지나가야 한다. 내게 자유가 주어지는 날 나는 아마도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내겐 아직 많은 여행지가 남아있다. 삶은 경험으로만 남는 것, 내가 걸어간 길 만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한계선, 그 진정성 속에서 음악도 나오고 시도 나오고 글도 나온다.
할 수 있을까?
내가 비겁해지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꿈들이 완성되지는 않아도 좋다. 어차피 자기완성이란 없는 것 같다. 사람이 부리는 욕심도 끝이 없고 많은 것들이 끝이 없다. 다만 죽기 전에 떳떳이 그리고 당당하게 나는 매순간 나의 삶에 마주했다고, 피하거나 다른 곳으로 도피하지 않았다고, 나는 일평생 나 자신과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나는 내 감정과 마음에 충실했고 진실했다고 홀로 되뇌이며 눈을 감을 수 있었다면 좋겠다.
훗날 손자 손녀에게 엄청난 스펙타클한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어낼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녹록지 않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 모든 것이 다 삶의 무게이다. 지나온 길만이 나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