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가 되었는데 갑자기 떡국이 먹고 싶었다. 이제 자취 생활도 4~5일 남았는데 한 번쯤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며 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데,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 슬리퍼로 한 번 미끌 하며 하얀 세상으로 들어갔다. 내 앞에 걸어가던 남자가 걸음을 잠시 멈추더니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비추는 가로등을 찍는다. 그렇게 내리는 눈을 좋아라 하던 그 남자와 가로등을 나도 마음의 사진기로 찍어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 늘 하던대로 하늘을 쳐다보며 감사를 드렸다. 망설임 없이 내 얼굴로 하얀 눈들을 쏟아 붓는 하늘을 향해 잠시 그렇게 있었다. 하루에 몇 없는 행복한 순간이 와서 그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선들이 있다. 무시해도 좋을 시선들이다. 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 나는 그들을 잊어 버렸거나, 저편으로 보내 놓았는데 그들은 나를 아직 보내지 못한 경우들이다. 아직도 연락이 오는 헤어진 여자나 나의 부모님 등이 그 예이다. 반대로 내가 아직 완전히 손을 놓지 못한 경우들도 있다. 나는 마지못해 보냈으나 너무나 쿨하게 나의 손을 놓고 훨훨 날아간 인연들이다. 모두가 절절해서 아름답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에 다른 그림이 채색되고, 지금의 순간들은 점점 잊혀져 갈 것이다.


밖에 하얀 떡 마냥 흰눈이 펑펑 내리길래 떡국이 먹고 싶었나보다. 아니, 어쩌면 빨리 한 살을 더 먹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들 신나게 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서... 그래도 달리 방도가 있을까. 또 엉덩이 한 번 털고 일어나 가야지. 나는 아직 살아있고, 세상은 이렇게 예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