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평가가 자행되는 이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자.

정신과 의사들은 단순히 '신경쓰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를 건네겠지만, 사실 우리네 사회는 너무도 수많은 눈길들과 찰나에 내려지는 평가들에 뒤범벅되어 있다.

사람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은 실험 결과 단 3초.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호감이 느껴지느냐, 반감이 느껴지느냐, 혹은 그냥 다가가고 싶지 않다고 느껴지는 무채색의 인상을 갖기 까지에도 우리 눈은 자동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 흔한 TV광고를 보면서도 모델의 외모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평가 한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저 친구 살 좀 쪘네." 

"야... 많이 늙었네."

"이쁘긴 이쁘다, 확실히."

이처럼 당사자 기준에 기분이 좋을 듯한 평가와, 그렇지 못한 평가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가끔 자살하는 연예인을 보게 된다.

그들은 직업 특성 상 보다 레디칼한 평가를 직접적으로 맞딱드리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모르고 하든, 아니든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일 뿐.

때문에 그들은 이미지가 나락을 가기 시작하면, 계약된 수많은 광고회사들에게 손절을 당하기도 하고 더는 방송에서 불러주지 않기도 한다.

쉽게 말해 일이 끊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돈을 벌 수 없다.

비호감, 불호를 넘어선 맹비난과 선입견, 심지어 거짓된 루머에 휩싸인 한 연예인이 자기 심리가 무너지고 괴로워하며

단 한치의 앞에 놓여진 생도 살아갈 수가 없어 스스로 자기를 죽이는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그 평가들이 집단으로 모여 거대한 구름을 형성하고 그것들이 단체로 공격해 올때의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단 한사람의 지인 또는 가족의 평가에도 하루, 아니 며칠, 몇 주가 무너지는 나를 생각할 때 

그것은 단순 나와 가깝지 않은 무지한 대중들의 반응이라 할지라도 견디기 쉽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다수의 매체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전 댓글에 신경 안써요."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자신이 그러한 취급을 당하는 것을 모르고 있든가, 혹은 대강 알아도 무시하고 있든가, 혹은 그것을 아는 채로 수많은 마음의 피를 흘리며 견뎌가는 중일 것이다.

이 세 가지에 속하지 않는 연예인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강한 멘탈을 소유한 당사자라 할지라도...

그 또한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예인 뿐만이 아닌 우리 평범한 인간들도 사실 그렇다고 생각한다.

 

1. 자신이 어떠한 평가(취급)를 받는 것에 있어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주변에서 자기를 두고 어떤 취급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2. 자신의 주류적인 평가에 있어 대충이라도 인식하고 있으나 애써 무시하며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혹은 긍정적인 심리와 마인드 컨트롤으로 자존감을 높이며 사는 사람),

3. 자신이 당하는 평가에 대해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선택과 자존감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

 

잠깐,

나는 이 글에서 그 평가들이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해당 평가(시선, 취급)들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한다.

그저 내가 말하는 평가는 대중의, 주류적인, 현 시대(우리나라 한정)에 공공연하게 당연시 여겨지는 평가들이라고 해 보자.

 

나는 무수한 그 평가의 내용 자체에 집중하고 싶지 않고, 우리가 그 평가를 자행하거나 혹은 당할 때의 처세법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을 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평가(취급)들을 내 인생에서 뗄레야 뗄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알고 있는 한 동생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보자.

그는 가끔 내게 연애상담을 했으며, 힘들 때 전화하여 본인의 상황을 털어놓거나, 난데없이 집앞으로 찾아와 전화하는 식으로 나를 믿고 내게 고민을 많이 털어놓는 편이다.

그 날도 그와 나는 어둑한 집앞 산책로를 걸으며 그가 좋아하는 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여자는 나와도 친분이 있는 동생이기도 했으며, 나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녀의 특성도 몇가지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를테면 그녀가 좋아할 만한 남자의 스타일이나 남자를 허락할 때의 기준, 성향에 따른 선택이 대충 어떨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던 중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남자 동생의 한 마디가 내 머리를 세게 강타했다.

나는 진심으로 크고 무거운 것을 머리에 맞은 듯하여 일순간 아무 말도 하기가 어려웠다.

 

"형, 나는 솔직히 걔가 받아줄 거란 확신이 있어요. 저 정도면 해볼만하고요, 거절하긴 어려울거예요."

 

나는 거기에서 웬만하면 흔히 얘기하는 '팩트'를 꽂는 타입이 아니다.

나는 직설적인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며, 그 누구와도 척을 두는 것 또한 싫어한다.

특히나 상담을 할 때의 자세로는 나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는데, 

상담하러 오는 내담자는 모두가 자신만의 답을 이미 가진 상태로 그것을 확인받으러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의 역할은 그의 말을 오로지 들어주며 그 안에서 그가 내린 답을 찾아내어 꺼내주기만 한다면, 그는 만족해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사실이다.

나는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내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대개 그들의 선택에 응원과 존중을 건네는 편이며

나의 연기력은 탁월한 편으로 그 누구도 내가 그들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 관계와 사람에 애정이 담긴 경우 나는 몇 차례 나의 마음을 슬쩍 꺼내보이며 반기를 들기도 하지만, 결과가 좋았던 적은 거의 없다.

이로써 나의 상담자-내담자에 대한 철학은 날로 견고해져 간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선택들을 겪어가고 책임져가는 과정 속에서, 혹은 우매함의 정도에 따라 몇 달 후, 혹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천천히 느끼게 된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들은 상황에서 일순간 정신을 얼른 차리고, 그의 말에 동조했다.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그는 흡족해하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의 충격은 생각보다 꽤 오래 갔었다. 

그 충격의 여파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 동생의 자기 객관화에 대해 너무도 확신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쉽게 말해 나는 그가 위에 서술한 3번 타입의 남자라고 생각해 왔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내 눈에 영특해 보였고 충분히 그럴만한 영민함은 소유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그 여자를 독차지 할 수 있을지 현실적이고도 실행 가능한 도움을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비교적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한 전문대에 억지로 진학했으나 한 학기도 못되어 자퇴를 했다.

그로부터 서른이 넘기까지 그는 무언가에 도전하여 성취한 적은 없고, 몇 번의 알바를 한 것이 전부이다.

그는 지금껏 운동을 해 본적이 없으며 체격이 왜소하고, 얼굴이 검고 퉁퉁한 편에 아토피와 같은 피부병을 달고 산다.

생김새는 각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으나, 대다수의 시각으로 본 결과 잘생기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그는 구직활동을 진심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공장 일을 하는 부모에게 얹혀 살고 있다.

그는 부모에게 자기를 왜 태어나게 했냐고 따지는 편이다. 그는 골초이고 혼술을 즐기며 패배감이나 우울감에 깊숙하게 젖어있다.

 

그가 흠모하는 여자 아이는 사교모임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며, 이미 몇 번의 대쉬를 받은 전적이 있으나 모두 거절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의 가치관에 따라 사회적 기업에 취직하여 매일 늦은 밤에 퇴근을 할 정도로 바쁜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그녀는 내가 아는 바 담배냄새와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싫어하고 본인의 가치관에 잘 맞는 성실하고 착실한 남자를 좋아한다.

그녀는 이미 한번 흡연자의 대쉬를 거절한 전적이 있다. 그녀는 적당한 키와 갸날프고 수려한 외모를 가졌지만, 무엇보다 마음씨가 굉장한 편인데 남을 배려하는 성격이 그녀의 최고 장점일 것이다.

 

나의 묘사에 있어 주관적인 면 또한 존재하겠지만, 이 둘에게 내가 기술하지 못한 커다란 숨겨진 비밀이 없는 한

이 상태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대쉬하여 그녀의 허락을 받아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며, 대답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러한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남자동생의 돌파구를 찾을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찰나,

그가 던진 그 한마디에 그만 속수무책으로 할말을 잊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한마디를 들은 후에 무엇이 그의 착각의 풍선을 부풀게 했을지 그 원인이 매우 궁금했다.

그 원인은 대화중 그의 말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 거의 모두가 다 이렇게 말해요. 너 같은 남자가 어딨냐고. 너 인기 많다고. 심지어 여자인 친구들(여사친)도 이렇게 말해요. 자기가 남자친구만 안 사귄 상태에서 너가 고백했다면 진짜 고민 많이 했을거라고."

나는 그가 자기객관화를 잊은 시점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몇 주 후 그녀에게 고백을 했으며 당연히 결과는 거절이었고,

그녀는 그 후 다른 남성을 만나 진지한 교제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직도 그 남자동생을 가끔 만나긴 하지만

우리 둘 중 그 누구도 그 여자아이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는 그 일을 통해 조금은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었을까?

그는 그 일을 기점으로 무언가를 알게 되거나 깨달은 것이 있었을까?

나는 물어볼 수 없다. 그 답은 그 동생 자신만 알 것이다.

 

 

수년 전, 나는 한심함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내 눈에 보기에 한심해 보이는 사람들을 두고 쓴 말이다.

그 글에서도 나는 동일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들어주고 웃으며 반응해주기만 할 뿐이라고.

그들이 괴랄하고도 헛웃음나는 그들만의 착각들로 엉뚱한 선택을 할 때라도

그 선택들이 나와 가족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영향을 주지만 않는다면

나는 궁둥이 붙이고 그들의 몸짓과 덩실거리는 탈춤들을 즐겨줄 의향이 있다고.

그렇게 썼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 누군가 내리는 본인만의 판단과 선택을 막고 지연시킬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뭐, 함께 펜션의 놀러간 나의 친구가 한겨울 오밤중에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며 수영복을 챙긴다면, 그런 원초적인 선택은 뜯어말릴 생각이 있지만...

본인이 선택적으로 쌓아온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그만의 착각, 거기에서 내려진 그만의 판단.

그 결과는 그만이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또다른 누군가를 만났다. 

나는 그와의 관계가 오래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의 순수성은 얼마만큼인지, 그가 얼마나 계산적이지 않고 진심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결여된 몇 가지를 빼면 굉장히 좋은 사람에 속하며 스마트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에게 나름의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애정은 내가 한심함의 감정을 숨기며 그저 빙그레 웃으며 바라만 보는 기타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애정과는 또 다른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나의 철학에 공고함을 더해준 선례를 맞딱드리게 되었다.

누군가의 선택에 무조건적인 응원을 하지 않고 나의 기준에서 나온 애정어린 걱정을 내비친다면 결과가 어떨지를 뻔히 알고도

나는 나로부터 발생한 애정에 기인한 말과 행동을 기어이 드러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는 점차 내가 내보이는 카드에 날이 선 반응을 보이게 되었고 결국 종국에 가서야 나는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또한 내 예상과 반대로 1번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허탈감은 사실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로써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전형적인 3번 유형의 사람이며, 이 또한 건강한 유형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3번 유형이기 때문에 나는 3번 유형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때에 따라 그를 도와줄 수 있으며, 

실제로 도움을 주게 된 경험들이 쌓여 있다.

 

그러나 그는 믿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 멋진 것처럼, 다른 사람도 자신을 멋있게 보고 있다는 확신 말이다.

그는 그를 아는 다른 지인들에게서 어떠한 평을 받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아마 많이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 또한 자신이 먼저 장벽을 쳤다.

(혹시) 남들이 자기를 멋지게 보지 않더라도 본인이 스스로가 멋있어 보이기 때문에 상관 없다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입으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멋있게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왜 그렇지 않은 가정을 굳이 먼저 하는지가.

아무쪼록, 나는 현재 상황에서 그가 멋져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을 스리슬쩍 전달했다.

 

그는 나와 헤어지기 전 연신 한 마디의 말을 반복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다양한 인생들이 있는 법이지..."

나는 그가 나에게 들릴걸 알고 있음에도 내뱉은 몇 번의 그 혼잣말이, 본인(자기자신)을 두고 한 말인지, 나를 두고 한 말인지 궁금했다.

누구를 두고 한 말이냐에 따라 그 의미는 꽤나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의 패턴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는 그에게 속지 않는다.

그는 두 번 정도 나에게 각기 다른 다단계 업체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꽤나 집요하게 한 적이 있으며,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때에도 나의 시간과 체력은 다소 손실되었지만 나는 잠깐동안 그와 손절할 생각을 했을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와 쌓은 시간과 거기에서 나오는 관계의 애정이 더욱 소중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한 번 당연하게도 현재 두 회사는 패망의 길을 걷는 중이며, 내가 들어갔다면 큰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패턴은 한동안 무언가에 꽂혀 열심을 내고 나에게 또한 그것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며 기본적으로 몇 주만에 다양한 이유들로 흐지부지 되어가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처음 몇 번은 그에게 흔들렸고 그에게 영향을 받아 휩쓸려 내가 해보지 못한 도전과 만남을 했지만 끝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패턴이 파악된 뒤로 나는 그가 전달하는 것의 진심과, 대화 과정에서의 즐거움, 배울점들만 얻을 뿐

그가 제안한 무언가를 같이 하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나는 반대로 현실에서 그가 걷는 걸음이 사회적 평가에 기준해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에 역으로 제안을 해 왔다.

내가 진학할 학교와, 몇 가지의 일들을 함께 시작하자고 다독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땀과 노력으로 얻는 더딘 수익보다 눈앞으로 당장 보게 되는 이익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그는 그의 특성 답게 나와 함께 출발하는 몇 개의 일들에서 며칠 정도는 열의와 의욕을 불태웠지만 이내 얼마 못가 그만두고 말았다.

그의 열정이 식는데 걸리는 시간은 나의 예상보다도 너무나 짧았다. 

나는 현재 내가 했던 몇 가지의 제안들이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 말 또한 그에게 이번의 만남에서 전달했다.

내가 파악하는 바 그의 특성은, 당장에 눈앞에서 금방 경험할 수 있는 짜릿한 시도와 도전, 쾌감 또는 빠르게 들어오는 돈 등에 훨씬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삶에 진한 향기를 남기는 이익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실제 세상에서 통용되는 경제이치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그의 선택들은 평범한 이들이 보기에는 응원 받기 힘들다.

때문에 그는 다단계 회사에도 크게 매력을 느끼는 특징을 가진 것이며

여행, 무모한 도전, 타국에서의 생활, 서핑 등등이 그가 택해온 삶의 선택들임과 동시에

평범한 직장생활에서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나오거나 반복되는 일 등에서도 쉽게 무료함을 느끼는 이유 또한 설명되는 것이다.

 

더불어 나는 이번 그와의 만남에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그를 마음속 깊이 응원해주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나는 그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지인 관계이다.

나는 그에게 어떠한 돈을 대 준적도 없고, 그저 만나서 맛있는 것을 사는 것이 전부다.

그 또한 내게 돈이나 그 어떤 내 소유물을 요구한 적이 없으며

그저 자기의 삶과 상태, 결정에 있어 멋지고 정당하다는 것을 응원받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내가 여기서 그에게 설령 그 선택과 그의 특성에 대해 왈가왈부 한들, 서로에게 좋을 것은 과연 무엇인가?

또한 그가 자기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인다고 착각하고 있다 한들, 

내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굳이 그의 모래성을 짓밟을 필요성과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말과 행동을 하여 좋은 점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설령...

그가 나 포함 재미없는 일을 지속하며 부모의 짐을 덜어주고

본인과 가족을 책임지는 삶을 이어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한심히 보고 있다 한들,

그런 그의 시선을 어긋났다고 고쳐줄 권리와 필요성 또한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취급 또한 본인이 쌓아온 기준에서 기인한 본인의 취급일 뿐인 것을...

 

Downtime (Dorian & Zayne)  -   Elizabeth Ravn , 2023. American , b. 1994 -  Oil on canvas, 40 x 50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