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남긴 말 중 유독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 뜻이 뭔지 잘 몰랐었다. 

그래, 문장으로 보면 뜻도 이해도 되는데,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긴 것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해 의지가 있는 것이라는 이 말을,

나는 어쩌면 현학적인 반어적 문장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이를 테면 '유독 밝아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뒤에 슬픈 얼굴을 가졌을 가능성이 많다.' 

따위 처럼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이 무엇인지 오늘 깊이 이해했다.

저 문장에 빠진 형용사 하나를 넣으면 이해가 쉽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 제대로 사는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제대로...

삶을 제대로 산다라는 게 뭘까.

제대로라는 단어가 참 신기하다.

"제" 대로. 본래 "제 것" 대로.. 본디 "제 생긴" 대로... "자기 대로".

제대로. 사전을 찾아보니 '마음 먹은 대로' 라는 의미가 있다. 

 

 제대로 사는 삶. 

 

나는 약 10개월 전 대기업을 때려쳤다. 때려치기 전 내가 하고 있던 일은 대형 마트 부서의 총무였다. 나는 당시 서른을 갓 넘긴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나이 어린 직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백 여명의 직원을 관리했다. 나는 정규직 입사자였고, 마트의 특성 상 캐셔, 청소부, 배송 기사 등 프리랜서 용역부터 비정규직, 계약직 등 수많은 직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트 본부의 사무실은 팀장과 총무, 회계담당 여직원 3명을 제외하고는모두 정규직이 아니었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는 겉으로는 그럴 수 없었겠지만 내면으로는 그들 위에 군림하며 일종의 우월의식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근태, 계획 등을 마음대로 정하고 조종할 수 있었으며 손가락 하나 잘못 놀리면, 그들의 근무 일지나 급여까지 들키지 않도록 쉽게 조정이 가능했다. 연봉과 대우 직급 등 거의 모든 것에서 20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원과 2년 차인 내가 차이가 났다.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도, 계약직 형님들도 모두 나에게 예의를 지키며 다가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실에 은근한 만족감이나 뿌듯함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와 같은 현실이 싫었으며 무엇보다 내 자신의 직장생활에서 가면을 써야 하는 삶이 괴로웠다. 30대가 되면 뭐 하나를 정해 놓고 살기들 한다고,광석형도 그랬다. 그런 면에서 어떤 이는 나를 보고 철없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맞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서 말하는 철이 도무지 들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곧 내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괴로워 남들이 부러워하고 선호할 만한 직장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래도 꿋꿋이 직장을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내가 유독 보통 사람들보다 그런 삶에 대해 괴로움을 느끼는 강도가 월등히 센 것인지, 아니면 그들보다 참을성이 월등히 부족한 것인지 둘 중에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지는 영원히 모르겠다.

 

단, 나는 향후 수십 년을 그 조직 속에 갇혀 내 삶의 거의 8할을 갇혀 보내고, 정신적으로 일정 영역에 있어 지속적으로 굳어져가며,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 날 만을 기다리는 그리고 술에 쩔어가는모두가 비슷해져가는 그 직장인의 모습이 너무나도 끔찍히 싫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곳을 뛰쳐나오고 나 혼자 일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그 곳에서 받는 연봉을 막 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똑같은 사람들과 지긋지긋하게 부대끼며 굽신거릴 필요도 없고, 내 수면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자유로이 조정할 수 있으며 현재 하는 일에 대하여 어느정도 만족하고 있다.

 

제대로 사는 삶.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죽음을 늘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모습대로, 자기가 생겨 먹은 대로, 자기 안에서 솟아나오는 그 무엇 그대로, 너무나도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안 살아도 되거나 그러한 자기 삶에 대한 열망이 대체적으로 적은 사람들은이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들이 이번 생에선 행복한 이들일 것이고 위너이자 승리자로 칭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타자가 정한 규범, 문화들과 누구에게 얼마나 받았는지도 모르겠는 남의 욕망들로 점철된 나 자신 속에서 내 영혼이 외치고 있는 바로 그것, 그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그 괴리감에 늘상, 언제나, 괴롭다.

 

그들은 특별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관리 대상이다. 혼자 있으면 죽는다. 내가 언젠가 글에서도 말했지......우리 끼리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고.

 

아주 척박하고 황망한 황무지에서도 내 것을 피어내기 위해 때로는 외로운 도전도 해야 한다. 남들에게 멸시와 욕을 들어가면서도 오히려 최면에 걸린 그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 누가 말리겠는가...

 

우린 철들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