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
내가 떠나온 방 - 강윤미
Sean Keating
2017. 4. 22. 23:02
내가 떠나온 방
강 윤 미
내가 떠나온 섬에는 내가 문을 닫아야 닫히는 방이 있다
그 방에는 내가 켜야 켜지는 등이 있고
내가 앉아야 완성되는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는 내가 잡으면 스르르 글씨를 써내려가는
연필이 있다 연필이 머뭇거리던 자리에는
내가 지워야 기쁘게 소멸해가는
다섯 살의 일기가 있다
다섯 줄의 일기 속에는 삼촌이 사준 곰인형,
강아지에게 눈 한쪽을 물어뜯긴 곰이 늙음을 포기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곰의 품에 안기면,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두려움이 있다
누군가에게 안기는 두려움,
두려움을 더 큰 두려움과 포개어 안고
나는 섬을 섬이라는 글자 속에 가두고 문을 닫는다
바닷물이 글자의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곧 범람할 듯
쏟아지지 않는 내 유년의 권태기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유년은
그림자가 비치는 방구석에 종이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
낡은 종이옷을 바꿔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