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20대의 연애관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그래서 혼자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나를 형성한다.
관계 속에 수많은 사회 집단이 발생하고, 그 속에 나 또한
존재한다.
연애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외로워서, 상대방이 매력적 이여서, 결혼을 목적으로,
연애를 통해 성숙하고 싶어서...
나에게 연애의 목적은 외로움도 아니고 연애를 통한
성숙도 아니다.
단지 결혼을 위한 연장선에 한 부분이거나, 상대방에 대한
매력에서 연애의 이유를 가져온다.
고독하고 외로워 하는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리고 수많은 관계맺음 중에서 ‘사랑’을
어떠한 관계보다도 우월하며 고결하다 생각한다.
고결한 관계맺음인 ‘사랑’은 시대를 불문하고
대화소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안주거리인 듯하다.
문제는 연애나 사랑을 다른 관계와의 비교에서
우월한 것으로 보기에 사랑을 추구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 보다 사회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러지 못한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것에 있다.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수식어나
비웃음의 호칭도 존재한다.
모태솔로나, 솔로의 아픔....
또한 보통의 사람들은 그러한 솔로들을
‘저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거 같아’ 또는
‘눈이 너무 높아’와 같이 ‘비정상적’인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롱은
당연한 것인가? 또 연애를 통해서 우리는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이쯤에서 내가 가지는 연애의 목적과
연애관에 대해서 쓰고 싶다.
사랑은 분명 사회성을 지닌 인간에게
가장 고결한 관계맺음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사랑’이라는 가치는 생존·번식의
이유에서 또한 중요한 관계맺음이다.
사랑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우리는 더 성장 할 수 있다.
사랑, 연애 필요하다.
그러나 20대 청춘에 흔히 하는 연애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절대적인 회의감은 아니지만 굳이 찾아서 노력하며
“꼭” 해야만 하는가? 라는 회의감이다.
기회가 있다면,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고 추억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보통의 20대 연애는 십중팔구 끝 맺음이 있기
마련이고 이별의 아픔이 존재한다.
내가 경험했던 3-4번의 연애에서 이별의 아픔을
겪었고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나를 보았다.
너무 고통스러워 하던 나를 위해 몸을 사리고 싶다.
하고 난 뒤의 후회보다 일을 행하고 한 후회가
더 낫다고 한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연애에 있어서는
그러고 싶지 않다.
20대 초반의 현재를 지나 언젠가 새로운
연애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가 ‘이별’의 끝을
맞이함의 두려움은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상실이라는 것은 잊기 마련이며
20대 후반이나 30대에서 또한 가벼운 만남이 존재하지만
20대 초반보다는 결혼에 대한 전제를 조금 더 생각
하는 나이이니깐...
그런데 20대 초반의 연애는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현재의 연애들은...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사랑을 확인하며
좀 더 외롭지 않은 20대를 위한 연애였다.
연애에 있어 감정싸움과 이성의 대립이 생겨남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는 가볍게 만나거나
현재의 외로움을 채워주기 위한 연애는 원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비생산적인 행위의 연속일 뿐이였다.
사랑과 연애 필요하다.
생물학적 이유에서든, 인간의 욕망에서든,
나를 위해서이든...
하지만 시시콜콜한 감정공유와 싸움이
가볍게 언제든지 이별로서 끝날수 있는
20대의 연애는 필요하지 않다.
연애를 통한 자기 성숙 또한 추구하지 않는다.
그에 따른 행복의 결과물 보다 아픔과 고통이
더욱 컸기에 다른 것을 항상 원했던 현재의 나 이다.
책을 읽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거나 하는 것을 더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