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창
그의 말은 마치 마법처럼 미지의 내 인생을 무지갯빛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의 애정과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를 향한 감성의 문이 힘차게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를 향한 감정이 명백히 사랑으로 바뀐 뒤로, 나는 큰 배를 타고 광대한 바다를 떠가는 듯 안락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편안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그랬습니다. 어느 날 그와 둘이서 도쿄 교외에 있는,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고풍스런 서양식 저택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곧잘 촬영하러 갔지. 예전에 미국인 선교사가 살던 집이야.”
그가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며 몇 번이나 전철을 갈아타고 낯선 역에 내렸을 때, 해가 완전히 저물기 시작하여 거리는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작은 간이역의 계단을 내려오자, 그 끝에 서 있는 한 그루 떡갈나무가 거리의 지킴이처럼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나타난 달빛 아래로는 구름 몇 자락이 보였습니다.
그는 “오늘은 도쿄의 끝에서 끝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말도 안 돼요. 계속 걷다 보면 질릴걸요”하고 입을 삐죽거리는 내게 그는 “아니, 질리지 않아. 당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우니까”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이 주변이 더욱 분위기 있어질 거야. 다음에 올 때는 빛깔 고운 단풍이 기대되는 걸.”
그가 뱉은 ‘다음’이라는 말이 모래에 스며드는 물처럼 천천히 흡수되어,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기쁨으로 내 몸속에 퍼져 나갔습니다. 이 사랑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있어 정말 좋다. 그도 이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 가을에 또 와요”하고 말한 나는 이 벤치에서 바라본 풍경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오늘 ‘사랑,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가타 게이코의 <당신이 나를 사랑했을 때>중에서 ...
김창완 아저씨가 진행하는「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랑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와 목요일마다 열리는 '짱구는 못 말려' 코너를 가장 많이 듣습니다. '짱구는 못 말려'는 아침창에서 장수하고 있는 코너 중 하나입니다. 청취자들이 직접 보낸 아이들, 혹은 조카들의 엉뚱하고도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아저씨가 읽어주는데, 남자 아이는 "짱구" 여자 아이는 "짱아"라는 애칭을 사용합니다. 이따금씩 아이들의 웃긴 에피소드가 나올 경우 아저씨조차 빵 터지며 웃으시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가끔은 그렇게 웃다가 숨 넘어가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사랑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너는 애덤즈 애플의 'One fine day'가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여러 책에서 가져온 구절들을 읽어주는 코너입니다. 듣다 가끔은 눈물도 짓곤 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김창완 아저씨는 내가 참 좋아할 만한 사람인 이유가 여러가지 있습니다. 우선 우리 아빠와 얼굴이 참 닮았습니다. 어떨 때는 아빠가 TV에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을 만큼 그렇게 똑같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목소리가 굉장히 좋습니다. 깨끗하고도 낮은 물소리 같은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열거나 밤거리를 걸을 때에는 고단했던 하루에서 묻어온 가시들이 씻겨내려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저씨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저씨가 김광석이라는 가수를 발굴해 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무명이었던 광석 아저씨는 김창완 아저씨 덕에 1988년 동물원 1집으로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김광석 아저씨의 대선배이자 내게는 더 큰 '아저씨'인 셈입니다. 그 외에도 아저씨의 산울림 시절 노래들과 아저씨 특유의 여유와 빈틈이 보이는 성격, 드라마에서도 간간히 보여주시는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들은 아저씨에 대한 애정을 그칠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