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자살 당일 뉴스영상(MBC)
(18:30초 부터)
9년전 겨울 김광석이 죽었을때, 신문방송은 연일 유명가수들의 연속된 죽음을 화제거리로 삼아 그 원인과 주변인들의 반응을 뉴스로 다루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죽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저녁뉴스에서 잠깐 얼굴을 비춘 김창완의 반응은, 그의 뚱한 표정만큼이나 뜬금없는 느낌이었다.
"아깝다는 생각 안 드세요?"
"아직은 그런 느낌 안들어요."
"왜요?"
"...모르죠."
88년 동물원 2집이 나올때까지 그는 동물원의 프로듀서로서 김광석과는 보통 인연이 아니었지만, 그를 추모하는 동료가수들의 공연이 줄을 이을 당시에도 그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심지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와 김광석이 적어도 같은 직업에서 종사하는 사람 이상의 멀지않은 관계였음을 생각하면 둘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런 침묵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흘러넘치는 의미의 달콤한 단어들이 만드는 역설적인 무의미의 향연 속에 휩쓸리지 않고, 소시민적인 삶의 감수성을 즉물적으로 표현한다는 면에서 둘은 어떤 접점을 갖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기억에 대한 그리움과 그에 반비례하듯 식어가는 열정, 매일 만나는 막다른 벽 앞에서 하루하루 조금씩 체념해가는 삶, 추억이나 사랑같은 일상의 모든 감정들이 딱정벌레 한 마리의 하루처럼 덧없음을 자각하는 어떤 깨달음. 어떠한 화려한 수사로도 미처 다 보여줄수 없는 그 막연한 상념들을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의 섬세한 떨림과 가장 단순한 몇마디 단어를 통해 드러낸것이 그들의 노래일 것이다.
한명은 너무 일찍 고인이 되어 이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다른 한명은 TV 드라마에서 그 순진한듯 노회한듯한 웃음을 흘리며 노래와는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있다. 김광석의 죽음은 아마 그가 다른 가수들처럼 약지도 못했고, 김창완만큼 냉소적이지도 못했던 탓일 게다. 그의 노래인생은 언제나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좌절을 강요하는 일상의 체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것이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에 대한 스스로의 회의와, 사양을 못하고 이리저리 벌려놓은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어느것 하나 쉽게 뿌리치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는 결국 그렇게 느닷없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다.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며 가끔씩 "흰종이에 아주 먼 나라 이야기를" 쓰면서 죽음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사랑은 물론이고 노래도, 죽음까지도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불신할정도로 그는 냉소적인 지성의 소유자다. 그가 조용히 노래와 멀어져 기약없는 침묵에 잠긴채 도시의 시간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김광석의 이름은 "더딘 시간 속에" 잊혀져 가고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거나 "전깃줄 위에 윙윙거리"던 친구의 지친 목소리를 대신 불러줄 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9년전 겨울 김창완이 김광석의 죽음 앞에서 내비친 그 퉁명스런 표정은 그의 육체보다 조금 더디게 시들어갈 목소리의 운명을 예감했던 그의 고인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을 것이다. 더 이상 살아서 노래부르지 못하는 이에 대한 애도따위는 다 부질없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