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한 독일 작가
이제껏 보고 들어온 것들이 구역질나는 속임수였지. 한 청년의 성장기가 불쌍하게 물들어 가고 있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 하오'] - '나무'의 가사다. 멈추지 않으면 된다.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도, 될 수 있는 한 반짝이는 것들을 많이 주워 담아라. 그들이 너라는 사람을 구성해 줄 페이지가 될 것이다. 넘겨도 넘겨도 끝까지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네가 무척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독일 작가는, 너보다 평탄치 못했다. 너도 이제 곧 겪을 수도 있는, 숱한 고된 정신적 괴로움들을 온몸으로 맞받아쳤다. 너처럼 신학교를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네가 영혼을 따라 산다면 이제 그와 비슷한 걸음걸이를 할 것이다.
그는 시계점의 수리공으로 일하다가 서점의 견습점원이 되어 문학 곁으로 오게 된다. 그는 쇼펜하우어를 좋아했고 릴케에게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병이 들었다. 9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으나 나중에는 그녀가 정신분열증에 걸린다. 셋째 아들도 병약해진다. 1차,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그는 히틀러의 나치즘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의 길을 걷다가 독일 문단과 국민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한다.
그는 정원을 가꾸기를 사랑했으며, 40대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내를 이어 자신도 정신의 병이 들어 스위스의 의학자 칼 융에게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기 실현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되고 '데미안'등의 작품을 짓는 초석을 발견한다. 그는 인도나 싱가포르 수마트라 등지를 여행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해외저자사전에 나온 마지막 문구가 가슴을 때린다. '그는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렇다. 그는 행복을 향해 끊임없이 추구해 들어갔던 사람이다. 그 사람의 걸음은 극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