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부치지 않는 마지막 편지

Sean Keating 2014. 5. 21. 03:17

떠나더라도 마무리를 좀 짓고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오늘은 오월답지 않게 날이 참 추웠습니다. 바람이 차가워서 그랬는지도요. 가만히 바람을 맞다 보니까, 어디서 왔는지 모를 바람에 훅 솟구쳐 흩어지는 어느 꽃잎들이 보이기 시작하데요. 근래의 내 마음과 닮아 있었는지도요? 소복이 쌓여있었지만 바람 한 번에 무심한 듯 날아가 버리지요. 의미를 찾으려 하지도 않고. 그저 꽃잎 하나 하나 제 갈 길을 찾아...그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일은 없겠죠. 당신을 향했던 내 마음이 그렇네요.


답장을 하지 말아달라는 약속을 지켜주어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행동 중 유일하게 고마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답장을 했어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입니다.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지난 달 말 경을 시작으로, 내 마음의 방 정리를 돌입한 듯 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구석진 곳, 후미진 곳 까지 쓱싹쓱싹 청소를 마쳤나 봅니다. 이제 더는 찜찜함이 남지 않습니다. 


나로써는 이 일이 신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드릴 제목이자, 내 인생 중 손가락 안에 꼽을 행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곧 사회와 격리되는 공간으로 들어가거든요. 몸의 고단함과 지루한 시간들이 넘쳐흐르는 그 곳에서까지 당신과 엮은 줄에 칭칭 감겨 고생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나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제자리 걸음과 시간 낭비이자 나의 지식, 감성 등 다른 경험들의 성장에도 저해 요소가 될 것입니다. 농담을 섞자면, 과도한 집착증을 가진 비정상적 환자의 반열에 합류될 위험 요소 또한 있었지요.


이제 당신은 내게 시와 노래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그 뿐입니다. 당신이 꿈에 등장할 수는 있어도 그 뿐입니다. 당신은 앞으로도 나의 무수한 웃기고 수준 낮은 예술작들에 등장할 것이며, 하지만 그 뿐일 것입니다. 당신은 수 없이 그래왔듯 나와 친구들 사이의 스쳐가는 대화 주제로 여전히 오르내릴 것입니다. 우리들의 대화가 모닥불 꺼지듯 꺼져갈 때 설레는 추억들을 불러내는 땔감 정도로 이용될 것입니다.


당신과 올바른 끝맺음을 하도록 도와준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불교입니다. 그들의 철학은 나의 괴로움의 근원을 '집착'으로 명료하게 못박아두었고, 인생에서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존재함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 받아들임과 인정함은 스스로 얽매고 있었던 밧줄에서 나를 풀어줌과 동시에, 많은 인생사가 지은 인연의 과보와 의미없는 확률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어 닥치는 일에 대해 더는 변명이나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도록 해 주었습니다. 


한가지 더 깨달은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었을 때에 과연 그것이 내게 좋을 것인가 하는 것도 미지수라는 것입니다. 마치 쥐가 쥐약이 든 치즈를 보고 "저 치즈 좀 먹게 해주세요." 하고 조르는 것 처럼, 내가 구하는 행동도 혹시 그런 모양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당장의 몇 분, 몇 초의 뒤 조차 확실히 모르는 나약한 내가 무슨 근거로 미래의 일에 대해 그리 집착하고 구하며 매달렸는지. 혹시 당신과의 엮임이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확실한 후회를 가져다 주는 큰 불행이었다면 어쩔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 없이, 당신은 언제나 내게 쌀쌀맞았습니다. 때로는 얼음 나라에 사는 냉동인간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당신은 많은 순간 당신의 이야기만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아주 작아 보였습니다. 나는 당신과 접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의도적인 밀어냄이었을지, 당신의 고유한 성격이었을지 잘은 모르지만 좌우간 당신은 그랬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은 내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았습니다. 어느새 고여있는 고름처럼 남더니 점점 썩어가는 듯 했습니다. 이제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정복심리 때문에 당신을 생각하는 것인지, 내가 영화에서 본 터무니없는 이상에 이끌려 그저 고집을 부리는 중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저 내게 선명해진 한 가지는, '집착'으로 변모된 어떤 것들도 내게 이롭지 못하고, 보기에 아름답지도 못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놓치고, 버리고, 잃었고, 밀어낸 인연들이 많습니다. 미묘한 인연이 출발하는 문턱부터 좌절된 경우도 있었고, 도중에 끊어진 경우도, 마무리 단계에서 정리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열정의 방전 또한 한 부분의 몫을 담당했겠지만, 그러나 그 곳들엔 언제나 당신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잉크처럼, 아무리 닦아도 닦아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렇게 서려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게 들어있는줄 알았던 경우도, 몰랐던 경우도 있습니다. 관계 도중 당신이 자꾸 밟혀 의도적으로 중단한 적도 있습니다. 혹은 정리되고 나서 되돌아보니 당신이 보여 화들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으로 얼룩졌던 옷고름들을 어서 풀어내고 싶어서 썼던 나만의 다짐과 일기, 편지들이 많습니다. 나 혼자 스스로 무수하게 결론 짓고, 다짐했던 순간들이지요.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지금의 내가 마침내 옷고름을 완전히 풀어내 버리기까지 작은 도움을 준 것만은 사실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이제야 나도 당신을 일정한 공간에 넣어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둡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여는 것이라, 문이 삐걱대고 잘 열리지도 않는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복하지 않으렵니다. 이루어지기 힘든 꿈에 갇혀 생활하는 헛된 날갯짓들을.

 

어리고 아직 다 성장하지도 않은, 민감하고도 여린 까까머리 고등학생에게 당신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무모한 꿈으로 가득 차 마음속에 거품만을 잔뜩 품고 살던 시절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의 세월이 흘러 약간은 커버린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우선 흘러가는 나의 감정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것. 둘째, 그러나 흐르는 그 감정에 당신을 갖다 붙이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는 겁니다. 즉 내가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라는 이 허무한 메아리의 반복에 작별을 고하겠다는 거지요.


이제껏 당신 외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신을 볼 때보다 가슴이 더 뛰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로써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보다 내 가슴을 더 뛰게 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당신을 상한선으로 두고, 그 누구도 침범하거나 초과할 수 없는 경계라 여겼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나는 손목이 가냘픈 어떤 한 여자를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세기와 강도는 어쩌면 당신의 것을 단숨에 넘어버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조금 웃기지만, 내 남은 생애가 몇 년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남은 시간 안에 내 인생을 던져버릴 만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꽤 불행한 인생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 행운이 내게도, 당신에게도 깃들기를 바랍니다.


혹 그 행운이 찾아오지 않아도, 당신이나 나나 평범하게 살아갈 수는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앞으로도 그런 큰 사건 없이 평범한 사람을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 내게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습니다. 나의 곁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게는 오선지가 있고 피아노, 기타가 있습니다. 우정과 함께 기우는 술잔들이 있고 진실된 의미 속에 스스럼 없이 오가는 흥겨움들이 있습니다. 과분한 느낌마저 듭니다. 내게는 이것들로 충분합니다. 남겨진 인생의 시간들을 버티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양입니다. 당신도 혹시, 근간을 흔드는 존재를 평생 마주치지 못한다 해도 부디 당신의 것들로 그 공백을 채워나가기 바랍니다. 그것은 슬픈 일이라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나는 얼마 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사랑니 한 개를 뽑았습니다. 나는 엄살을 싫어하고 고통에 무반응으로 대응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통증에 신경을 두지 않았지만, 통증이 가시고 음식을 반대편 이로 먹는 데 까지 정확히 4일이 걸리더군요. 이제 내일이면 나머지 한 개를 뽑아야 하는데, 회복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2주 정도 소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앓던 이를 뽑는 느낌, 사랑니를 뽑고 난 뒤의 느낌, 조용히 가지 않고 여러 고통과 걱정을 선물해 주고 간 모습까지 당신을 닮았습니다. 시기가 맞물려, 당신이라는 사랑니를 뽑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신이 이벤트를 기획한 것인지, 여러 소소한 정황과 요소들이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물론 작은 의미부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겠지만요. 가령, 강신주 박사님이 아주 좋아하는 시인 김수영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김수영의 기일과 박사님의 부친의 기일이 6월 16일로 같은 거지요. 강신주 박사님은 김수영을 당신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폭력적이었던 친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시집에서 처음 접했던 시인 김수영이 박사님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진정한 아버지로써의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두 분이 기일이 같다는 것이 따지고 보면 신기한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박사님은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즉각 김수영에 대한 책을 쓸 것을 결심합니다.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이 쓰여졌을 때 박사님은 비로소 몸의 아버지와 함께 김수영이라는 정신의 아버지도 훨훨 떠나보내게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아무 미련 없이, 시원하게요.


내게도 그런 것이 한 개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생일과 가수 김광석의 생일이 같습니다. 내게 김광석 아저씨란 당신을 잊게 해준 분입니다. 이 한 문장에 묵직한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답니다. 당신을 어느 것으로도 잊을 수 없을 때 김광석 아저씨가 나타났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읽어주지 못할 때 아저씨의 노래가 날 담담히 읽어주었고, 내 슬픔이 누구보다 가장 크다고 느끼며 살았던 시절 아저씨의 얼굴에서 그와 비교될 수 없는 슬픔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그 슬픔을 굳이 어필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 슬픔으로 나를 안아준 것 같습니다. 그 슬픔의 품 안으로 들어갔을 때, 노래도 끝나고 많은 것들이 끝나버린 것 같던 그 때에 아이러니하게 많은 부분들이 치료되고 회복되어 있는걸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당신을 지워갔습니다. 생일이 같았던 두 사람이 그렇게 내 마음에서 위치이동 된 것입니다. 당신이 앉았던 의자에서 당신이 일어나고, 광석 아저씨가 와 슬그머니 앉았습니다. 기타를 들고서요.



의미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의미없는 몸짓들이 있을까요. 의미가 없다고 하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을 것이고, 의미가 있다고 하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젖은 흙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의 움직임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도 뭔가를 하고 싶어서 움직였을테니까요. 하여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편지도(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지만 또 장담은 못합니다), 어떤 자그맣고 매마른 의미 하나만을 가지게 된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니 설령 그렇지 않아도 글을 쓰며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이제야 옷고름을 풀었다는 느낌이 들기에 이 편지는 내게 이미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며칠 전, 우연히 당신의 사진이 보였는데 처음으로 가슴이 잠잠했습니다. 당신에 관한 많은 부분들을 놓아주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보낸 편지에도 썼듯 부디 행복하기 바라고, 그것 뿐이면 됩니다. 


시험에 껌딱지처럼 붙어버리고, 계획한 많은 일들이 승승장구해서 바라는 많은 소원들이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만나는 날이야 있겠습니까만은, 혹 만나게 된다 해도 김광석 노래 어느 한 자락에서 함께 기억의 저편을 공유하는 것 뿐일 겁니다. 물론,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아저씨의 노래를 만난다면요.


아디오스.라는 말이 생각이 나네요.



안녕! 


2014년 5월 21일 새벽 세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쓰고 싶을 때 조금씩 쓰다 보니까 한 달 정도가 걸린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