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드디어 인강 완강

Sean Keating 2014. 3. 13. 22:36



참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인강을 처음으로 완강했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87강짜리... EBS 최태성 쌤 한국사 강의였다.


87강을 트는데 최태성 쌤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이 강의까지 온 여러분은, 이제,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87강 듣는거 쉬운거 아니거든요. 여러분들은 정말 대단한 일 하신거예요."

책상머리에 앉아 선생님이 밤 새워 정리해 놓은 키포인트들만 새 모이 받아먹듯이 받아적은 나보다는 선생님이 들어야 할 말씀 같지만서도... 이거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난 이제부터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 입시 실패 이후로, 어쩌면 패배감에 젖어 살던 나날들이었다.

'난 뭐든지 할 수 없다. 못한다. 해도 실패한다.'

고등학교 3년을 나름의 노력의 땀방울로 채워온 나로써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베베 꼬여갔던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살려면, 기왕 살기로 결정했으면, 처음 밥숟가락 드는 법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부터 내가 나에게 계획을 온전히 이행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도서관에만 가자. 가서 공부를 제대로 안 해도 되니, 일단 가기만 하자.'

'오늘은 운동을 풀코스로 안해도 되고, 기구들 한번씩 터치만 하고 오자.'

그래도 도착하면 온게 아까워서 목표량의 70% 이상은 꼭 하게 되었었다.


처음부터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었던 내게는 순도가 중요한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순도높게 공부했느냐', '얼마나 집중했느냐' 따위는 내게 중요한 것이 못 되었다.

'오늘, 일단 책상앞에 앉았는가'가 나의 중요한 화두였고 키워드였다.


처음 인강을 듣기로 마음먹은 2월 초, 

아버지와 단 둘이 목욕탕에 갔던 것이 기억난다. 탕 속에 혼자 들어가 앉아 내게 이렇게 혼잣말하던 것이 떠오른다.

'2월중으로 45강을 끝내고 3월 중순내로 87강을 끝내보자. 여기에서 네가 보이는 의지력에 따라 제대 후에 고시공부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

어쩌면 이것은 나에 대한 시험이었다. 

이 작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내가 내 스스로 2년 뒤 고시공부의 자격조차 박탈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또 하나의 의미는 부모님이었다. 

고시생활동안 마치 외국에서 차관을 빌려쓰듯, 그렇게 부모님의 재산을 갉아먹으며 공부할 터인데, 내가 부모님의 밑바탕에 믿음이라는걸 심어줄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나는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고, 점심을 먹고 세시가 되면 꼬박 헬스장으로 향했다. 

물론 2,3월 전체를 완벽하게 해낸 것도 아니다. 무너진 날도 있었고, 주말에는 또 쉬어주면서 했다. 

그래도, 그래도.

나로써는 큰 경사이고, 큰 일이다. 

내게는 참 대견스러운 일이다. 

계획이라는걸 해보고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던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


이제 다음주에는 내게 작은 선물을 주려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군에 가기 전 열흘 남짓간의 여행에서 난 또 어떠한 사건들과 마주하게 될지. 

무슨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풍경을 보고, 어떤 고생길에 맞딱드리게 될지.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을지. 어떤 노래가 내게 올지. 어떤 깨달음과 만나게 될지.


최땡땡, 오랜만에 장하다.